['현대 회장' 존속 모순 논란]

중앙일보

입력

현대가 31일 정몽헌 회장의 '현대 회장'직함 및 기능을 존속시킬 것이라고 발표하자 시민단체, 노동계를 중심으로 비난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현대의 회장제 존속에 대한 정부의 공식입장은 아직 표명되지 않고 있으나 정부가 총수 1인 지배체제의 종식을 목표로 하고 있는 이상 이 문제는 계속 논란의 대상이 될 것으로 보인다.

현대의 주장은 간단하다. 공정거래위원회의 대기업 기업집단 제도상 '현대계열'이 존재하고 현대계열의 대표기업이 현대건설인 이상 정몽헌 현대건설 회장이 현대계열을 대표하겠다는 것이다.

정몽헌 회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현대회장은 외부적으로 현대 계열을 대표해야 하며 회사간 업무조정이나 발전방향에 관한 업무를 수행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회장은 또 "현대 회장은 계열사 대표들과 만나 경영에 대한 권고를 하게 되지만 최종 결정은 각 계열사의 이사회가 내리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정회장은 자신이 대표이사로 있는 현대건설, 현대전자와 이사회에 참석하고 있는 현대종합상사, 현대엘리베이터, 현대정보기술, 현대아산 등 총 6개 계열사의 경영에만 참가하거나 관여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에대해 참여연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현대와 정회장의 약속 자체가 자기 모순에 빠져있다고 비난했다. 계열사간 독립경영을 하겠다는 현대가 왜 현대 회장이라는 직함을 유지하려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을위해 현대 회장이 필요하다면 한시적으로 존속시키겠다고 약속했어야 할텐데도 전혀그렇지 못했다는 것이 시민단체의 지적이다.

장하성 참여연대 경제민주화위원장(고려대 교수)은 "현대증권에 개인지분이 없는 정몽헌 회장이 이날 발표에서 현대증권 등 금융 계열사에 대한 경영계획을 밝힌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장위원장은 "현대의 지배구조개선 계획은 전반적으로 법 규정을 지키겠다는것 이상이 아니다"라면서 "오히려 현대가 국민들에게 정면으로 반발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민주노총 관계자도 "현대가 여전히 총수 1인의 그룹 경영방식에 미련을 가진 것으로 밖에 볼 수 없다"고 말했다.

현대는 이에 대해 "온갖 오해가 있을 수 있으나 현대와 정몽헌 회장은 31일 발표한 내용을 실천할 것이며 국민들도 시간적 여유를 가지고 지켜봐주기를 바란다"고말했다. 정몽헌 회장은 "현대 회장의 결정은 법적 구속력이 없는 권고사항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시민단체에서는 이 논란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정부가 분명한 입장을 취해야 한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정부가 총수 1인 지배체제를 혁파하기 위해서는 법과 제도에 따른 기업 지배구조만을 허용하고 '그룹 회장'과 같은 법적 근거가 없는 직함이나 기능의 폐지를 촉구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서울=연합뉴스) 박운영기자 pwy@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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