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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쇼크 … 오전 11시, 공포가 덮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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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8·8 증시’ 긴 하루 미국 신용등급 하락이 아시아를 강타했다. 8일 코스피 지수는 지난 금요일에 비해 74.30포인트 하락해 1869.45로 거래를 마감했다. 서울 명동 외환은행 본점 딜링룸에서 한 직원이 피곤한 듯 얼굴을 감싸고 있다. [로이터=뉴시스]


8일 오후 1시30분. 코스피 지수가 143.75포인트 떨어졌다. 사상 최대 폭이었다. 외국계 자산운용사의 펀드매니저 이모(41)씨는 휴대전화의 전원 버튼을 꾹 눌러 껐다. 그는 “아무 말도 하기 싫고, 해줄 수도 없었다”고 말했다. 그는 “아침부터 전 세계에 퍼져 있는 계열사 펀드매니저들이 ‘한국 시장이 도대체 어떻게 되는 거냐’고 물어왔다. 세계가 ‘서울 쇼크’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더 이상 해줄 말이 없었다”고 했다.

 ‘서울 쇼크’는 벼락 치듯 왔다. 출발은 괜찮았다. 코스피는 27포인트(1.4%) 하락으로 출발했다. 시간이 조금 흐르자 낙폭을 줄여갔다. 이씨는 안도했다. 차도 한잔 마셨다. 여유도 생겼다. 하지만 여유가 ‘날벼락’으로 바뀌는 데는 두 시간이 채 걸리지 않았다. 시간이 흐를수록 낙폭이 커졌다. 개인 투자자들은 있는 대로 주식을 팔아치우기 시작했다. 한국거래소는 오후 1시23분에 사이드카를 발동했다. 선물 가격이 5% 넘게 급락하면 프로그램 매매를 정지하는 장치다. 사이드카가 발동되기는 2009년 1월 15일 이후 처음이다. 이씨는 “어떻게 대응할지 아무 생각이 나지 않았다”며 “시간이 흐를수록 공포가 시장을 지배했다”고 말했다. 투자자의 공포감은 ‘공포지수’에 그대로 반영됐다. 한국판 ‘공포 지수’인 코스피200 변동성지수는 장중 45.00까지 급등했다. 2년5개월 만에 가장 높았다.

 스탠더드앤푸어스(S&P)의 미국 신용등급 강등의 여진은 8일(현지시간)에도 계속됐다. S&P가 미국 주택저당공사인 프레디맥과 페니메이의 무보증 채권 신용등급을 ‘AAA’에서 ‘AA+’로 낮추자 1.69% 하락 출발한 미국 다우지수는 장중 한때 3.3% 급락하기도 했다. 또 연방주택은행(FHLB) 12곳 가운데 10곳에 대해서도 똑같이 등급을 한 단계 내렸다.

김성봉 삼성증권 시황팀장은 “국내 투자자들이 패닉 상태였다”며 “매물이 매물을 부르는 상황이었다”고 돌아봤다.

펀드매니저 경력 20여 년인 안영회 KTB자산운용 부사장은 “리먼 사태 때, 9·11 때, 외환위기 때, 오늘 같은 날을 딱 세 번 겪었다”고 했다. 그는 “오늘 시장이 안 좋을 것으로 예측은 했지만 이 정도일지는 몰랐다”며 “펀드매니저도 오늘 하루 완전히 패닉 상태였다”고 혀를 내둘렀다.

 이날 한국과 아시아 증시는 공포로 답했다. 코스피는 장중 한때 7.4%가 급락했다. 오후 들어 낙폭을 줄였지만 한동안은 온통 공포가 시장을 지배했다. 2일부터 시작된 ‘공포 장세’는 시가총액 170조4906억원을 증발시켰다. 이는 삼성전자(111조9400억원)와 현대차(43조9000억원), LG화학(25조6000억원)을 합한 금액이다. 일본(-2.18%), 중국(-3.79%), 대만(-3.82%), 홍콩(-2.17%)도 동반 급락했다.

 세계는 미국 신용등급 강등 후 처음 장이 열리는 아시아 시장에 주목했다. 아시아는 신흥국이 밀집돼 있어 최근 가장 많은 돈이 몰리고 있는 지역이다. 세계의 이목은 그중에서도 한국에 특히 쏠렸다. KB투자증권 김수영 연구원은 “금융 시장이 가장 많이 개방돼 있고 수출 기업이 많은 한국은 세계 경제의 향방을 가늠하는 ‘리트머스 시험지’와 같다”고 말했다. 그는 “한국은 수출주도형 경제라 세계 경제 상황에 특히 민감할 수밖에 없다”며 “한국 기업의 기초 체력이 튼튼한 데다 경쟁력도 갖추고 있는 만큼 최근의 폭락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공포는 투자자들을 확실한 안전자산인 금으로 몰리게 했다. 국제 금값은 온스당 1663.8에서 1710으로 2.79%가 뛰었다. 국내 금 시장도 덩달아 출렁였다. 금지금업체인 ㈜한국금거래소는 이날 3.75g(1돈)당 22만9900원으로 올렸다 오후 들어 다시 2100원을 더 올린 23만2000원으로 고시했다. 국내 금값이 하루에 두 차례 오른 것은 처음이다.

한편 8일(현지시간) 유럽 주요 증시는 1~3% 하락 마감했고, 미국 다우지수는 1.69% 내림세로 출발했다.

김창규·허진 기자

◆서킷 브레이커(Circuit breaker)=직역하면 전기회로 차단기, 일명 ‘두꺼비집’을 뜻한다. 증시에선 주가가 급등락할 때 두꺼비집처럼 주식 매매를 일시적으로 중단하는 제도를 말한다. 현물 지수가 전날 종가 대비 10% 이상 하락한 상태가 1분간 지속되면 발동돼 거래가 20분간 중단된다.

◆사이드카(Sidecar)=선물시장의 급등락이 현물시장에 과도하게 파급되는 것을 막기 위한 제도다. 선물가격이 5% 이상 급등락하는 상황이 1분 이상 지속될 경우 5분간 프로그램 매매 호가가 정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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