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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經濟 경제

중앙일보

입력

일본에서 명치유신이 한창이던 19세기 중반, 많은 일본 지식인이 서방으로 유학을 떠났다. 그들은 새로운 학문을 접했다. 그중 ‘Economics’라는 듣지도 보지도 못한 과목이 있었다. 이를 어떻게 일본에 소개해야 할까, 그들은 고민했다. ‘가장 낮은 비용으로 가장 큰 효과를 낼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하는 학문’이라는 뜻을 살려야 했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게 바로 ‘세상을 바르게 다루어 백성들을 이롭게 한다’는 뜻의 ‘경세제민(經世濟民)’이었고, 이를 축약해 ‘경제(經濟)’라고 했다. 경제학은 그렇게 동양에 소개됐다.

‘경세제민’이라는 말이 중국 문헌에 처음 등장한 것은 4세기 전후다. 동진(東晉·317∼419) 시대 학자 갈홍(葛洪)이 쓴 도가(道家) 서적 포박자(抱朴子)는 “홍수가 심할 때 기자(箕子)가 경세(經世)의 방책을 내놓았고, 범생회(范生懷)가 치국(治國)의 방법을 제시했다”고 쓰고 있다. 이후 여러 서적에서 경방(經邦·나라를 다스림), 제민(濟民·백성을 구함) 등이 등장했고 이를 연결해 ‘경세제민’이라는 말이 탄생했다.

중국에서도 ‘경제’라는 단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당나라 학자였던 방현령(房玄齡·579~648)이 쓴 진(晉)나라 역사서 진서(晉書)에는 “발 아래에 물이 차오르는 위기에 처하면, 각고의 탈출 방법을 생각해 내고, 결국 명료한 길을 찾아내 충분히 위기를 넘긴다(足以經濟)”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그러나 ‘경제’가 현대적 의미(Economy)로 쓰인 것은 1910년대 활발히 이뤄진 신문화운동 이후였다. 굳이 따지자면 ‘경제’라는 단어의 지적 재산권은 일본에 있는 셈이다. 철학(哲學·Philosophy)이 그렇듯 말이다. 중국 학계 일각에서는 “만일 중국인이었다면 ‘Economics’를 ‘혜민학(惠民學)’으로 옮겼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온다.

서방 경제학이 동양 사회에 전해진 지 100여 년, 우리는 그동안 수많은 경제위기를 목격해야 했다. 2008년 글로벌 위기 이후 최대 경제대국이라는 미국이 또다시 문제다. 경제학자들은 백성을 위기에서 구하고(濟民), 백성에게 혜택을 줘야 한다(惠民)는 경제학의 존재 이유를 언제쯤 실현할 수 있을까.

한우덕(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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