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기업인 TV에선 찬밥 신세

중앙일보

입력

하룻밤 사이 거금을 거머쥐는 에피소드가 만연한 실리콘 밸리는 대다수 사람들에게 동경의 대상이다. 그러나 사람들이 과연 실리콘 밸리에 대한 TV 드라마를 보려고 할까.

실리콘 밸리의 역사가 포 브론슨은 3년 전까지만 해도 첨단기술의 드라마적 매력에 대해 ''시기상조’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오늘날 실리콘 밸리의 기업가 정신은 컴퓨터 프로그램보다는 사람 그 자체에 관한 것이다. 브론슨은 “그런 것이라면 얼마든지 드라마화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제 엔터테인먼트 업계는 실리콘 밸리를 탐색하고 있다. 법정드라마가 한물 가면서 법률회사의 대안을 찾는 데 부심하고 있는 네트워크 TV는 인터넷 신생기업들이 차기 드라마 소재의 보고가 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영화업계도 실리콘 밸리 영화에 대한 가능성을 보고 있다.

''새 것 가운데서도 새 것’(The New New Thing)의 저자 마이클 루이스는 “실리콘 밸리는 1980년대의 월스트리트처럼 우주의 중심이라는 분위기를 갖고 있다”고 말했다.

루이스와 브론슨은 둘다 20세기 폭스사를 위한 영화를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TV에서 시도한 실리콘 밸리 드라마는 모두 실패했다. 폭스는 지난해 게리 트루도와 로버트 올트먼이 합작한 ‘킬러 애프’(Killer App)의 파일럿 프로그램을 촬영까지 했지만 방영하지는 않았다. 브론슨과 ‘ER’의 연출가 폴 매닝은 ABC 방송을 위해 샌프란시스코의 인터넷 신생업체 밀집구역의 이름을 딴 ''사우스 오브 마켓’을 제작했지만 아직 방영되지 않고 있다.

실리콘 밸리에 인간적인 입김을 불어넣는다고 해도 문제가 모두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TV 드라마 시리즈를 방영할 경우 대다수 신생업체들은 파일럿 프로그램이 나올 때까지 남아 있는 경우가 드물다. 살아 남는 회사도 급속도로 기존 회사로 변한다. 브론슨은 ‘사우스 오브 마켓’의 무대를 전자상거래의 배양지인 ‘인큐베이터’에 국한시킴으로써 그런 문제를 피하고 있다.

드라마 작가들은 케이블 채널인 TNT가 지난해 방영한 스티브 잡스·빌 게이츠 자서전 드라마에서 힌트를 얻어 그런 허점을 보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 드라마는 그들이 버는 돈보다 카리스마적인 인물 묘사에 초점을 맞췄다.

브론슨의 또다른 작품 ‘IPO’(주식공모)의 프로듀서인 러스 스미스는 “시청자들이 그들을 성원하는 것은 그들이 억만장자가 되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그들이 인간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약간의 선정적인 요소가 가미된다고 해도 해롭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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