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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회 미당·황순원 문학상] 본심 후보작 지상중계 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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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대표적인 난해파 시인 중 하나인 이민하씨. “하나의 단어에서 파생돼 나오는 여러 단어들을 구축해 나가다 보면 처음 의도와 완전히 다른 시가 나오는데, 그런 과정이 재미있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시인 이민하(44)씨는 고양이를 연상시킨다. 외모나 행동거지가 어쩐지 고양이를 닮은 것 같다. 낯을 가리는 편이어서 소수의 제한된 사람들하고만 속마음을 터놓고 지내고, 고양이가 가르랑거리는 것처럼 차분하고 낮게 말한다. 어렵기로 소문나 진작에 ‘미래파’로 분류된 특유의 시편도 어쩌면 고양이처럼 숨기고 위장하는 성격 때문인지 모른다.

 이씨는 2년 전 봄 우연찮게 고양이와 친해지게 됐다. 골목에 사는 길고양이 새끼 한 마리를 집에 들인 게 계기다. ‘설탕’이라고 이름 지어주고 정을 붙였다. 한 번 고양이에게 마음을 주고 나니 다른 길고양이들도 눈에 들어왔다.

 서울 강남의 한복판인 신사동 주택가에 사는 이씨는 자신의 고양이는 물론 길고양이 여러 마리를 함께 돌본다. 먹이를 주지 말라는 동네 주민들의 반대를 무릅쓰고서다. 고양이 사랑에 관한 한 원조 격인 선배 시인 황인숙씨가 울고 갈 정도다.

 이런 고양이 사랑은 미당문학상 후보작들에 고스란히 반영돼 있다. ‘모조 숲-길’은 고양이에 관한 시가 아닌데도 ‘손톱들이 돋았지만’ ‘목덜미’ ‘폭풍의 꼬리’ 등 고양이를 연상시키는 대목이 여러 군데다. ‘검은고양이소셜클럽’은 본격적으로 고양이의 생태를 그린 작품. 거칠고 변화무쌍한 고양이의 모습이 실감난다.

 이씨는 “고양이에게서 새로운 소통 혹은 공존의 가능성을 본다”고 말했다. 고양이와 교감하고 소통하며 과거 어둡게만 생각했던 인간 세상에도 희망을 갖게 됐다는 것이다. 또 “스스로 생각해도 시가 좀 밝아진 것 같다”고 했다. 시의 작법까지는 아니겠지만 고양이로 인해 시의 내용에도 변화가 생긴 것이다.

 ‘거리의 식사’는 이씨의 후보작 중 가장 쉽게 읽히는 작품이다. 어렵지 않게 ‘죽는 건 누구나 마찬가지’라는 메시지를 떠올릴 수 있다. 다섯 번째 연, ‘하나의 우산을 접고/한 켤레의 신발을 벗고’가 구체적으로 죽음을 암시한다. 네 번째 연 ‘솜털처럼 우는 안개비도 천둥을 토하는 소나기도/쿠키처럼 마르면 한 조각 소문’은 이씨 특유의 말맛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이씨는 “죽을 때 혼자가 아니라 누구든 만나게 되리라는 생각을 하면 좀 위안이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이 불현듯 들어 한 순간에 써 내린 시”라고 설명했다.

 인터뷰 후 이씨와의 저녁자리는 밤 늦게까지 이어졌다. 그는 “이렇게 말 많이 하기는 정말 오랜만이다”라며 끊임 없이 떠들어댔다. 화제? 물론 고양이 얘기였다. 고양이 습성의 놀라운 점, 고양이와 친해진 사연, 고양이와 쥐에 얽힌 얘기….

글=신준봉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민하=1967년 전주 출생. 2000년 현대시로 등단. 시집 『환상수족』『음악처럼 스캔들처럼』 등.

‘폭소탄 아저씨’ 그 뒤에 숨은 서 말의 눈물
소설 - 성석제 ‘남방

성석제씨의 ‘남방’엔 어수룩한 남성, 즉 전형적인 ‘성석제표 인물’이 나온다. 성씨는 “나는 기본적으로 낙천적인 사람이지만 웃다가도 슬그머니 가라앉고 조용해지는 감정을 느낀다”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소설가 성석제(51)씨는 지난해 초 라오스를 여행했다. 거기서 아저씨 무리를 만났다. 40대 중반 몇 명이 함께 자전거를 타고 있었다. 몸은 시커멓게 그을렸고 활기가 넘쳤다. 직장에서 명예퇴직을 한 후 여행 중이라는 이들은 라오스 어느 지역을 어떻게 다녀왔다는 말을 한참 늘어놨다 한다. 성씨는 이 장면을 ‘이야기의 씨앗’으로 받아들였다. 이윽고 웃기고 슬픈 인물을 만들었다.

 올해 황순원문학상 후보작 ‘남방’ 속 박씨는 50대 중반. 30여 년 다닌 직장을 명예퇴직 해 혼자 동남아 여행에 나섰다. 라오스의 인구·종교·지형·맛집 등에 대해 모르는 게 없다. 물론 겸손할 마음도 없으므로, 말을 짧게 끝내지 않는다. 끝없이 이어지는 그의 이야기를 피하기 위해 도망 다녀봐도, 어디선가 꼭 나타난다. ‘고개가 하도 높아 여기까진 못 오겠다’고 안심하고 있어도 괴상한 오토바이 엔진 소리와 함께 쩌렁쩌렁한 인사를 건네며 등장한다. 이처럼 우스꽝스럽다. 상대 말은 듣지 않은 채 묻지 않은 질문에 긴 답을 하는 모습에 실소가 터진다.

 소설은 박씨의 눈물이 번쩍이며 끝난다. 수십 년 어렵게 일해 마련한 수도권 아파트도, 부인과 딸도 위로해줄 수 없는 불쌍함이 감돈다. 성씨는 “인간의 풍경을 그리고 싶었다. 근본이 통속적인 아저씨의 전형, 같은 아저씨끼리도 싫어해 피하는 인물의 이면에 있는 서늘함을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자신이 직접 만났던 자전거 무리에서 중년 아저씨의 처연함을 발견한 것이다. 그는 또 “소설 속 박씨는 나와 같은 세대다. 베이비붐 세대로 태어나 지독한 경쟁 속에서 상처와 분노를 경험했다 ”고 했다.

 웃기다 울리는 건 성씨 특기다. 나사 빠진 사람에게 측은한 마음이 들도록 한다. ‘황만근은 이렇게 말했다’에서 황만근씨도 그랬다. 그의 짧은 혀에서 비롯된 말투에 킥킥대다 슬그머니 숙연해진다. 성씨는 “앞에 가던 점잖은 사람이 갑자기 넘어지면 웃음이 터진다. 여기엔 ‘아, 나는 넘어지지 않았다’는 안도가 깔려있다. 하나만 있는 감정은 이상하다. 웃음과 울음은 늘 함께 있는 양면이다”라 설명했다.

 그는 왜 웃기지만 재미있지만은 않은 소설을 쓸까. 대답이 걸작이다. “고등학교 수업 시간에 친구와 모눈종이에 바둑을 두다 국어 선생님에게 들켰다. 우리에게 기합을 주며 선생님이 칠판에 썼다. ‘흥진비래(興盡悲來)’. 즐거움이 지나가면 슬픔이 온다는 뜻이다. 기합 받느라 정신이 하도 또렷해서 그게 지금껏 남아있는 거 아니겠나.”

 작가는 이번 소설 속의 박씨를 자신과 비슷한 인물이라 소개했다. 정홍수 예심위원이 “특별한 이야기나 목청 높은 주장 없이도 라오스를 헤매는 중년 남자들의 고독 혹은 고단함이 잘 배어난다”고 평한 이유다.

글=김호정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성석제=1960년 경북 상주 출생. 1986년 문학사상 등단. 94년 첫 소설집 『그곳에는 어처구니들이 산다』 출간. 소설집 『내 인생의 마지막 4.5초』『인간적이다』, 장편 『인간의 힘』『도망자 이치도』 등. 2002년 동인문학상, 2003년 현대문학상, 2005년 오영수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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