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명예회장 친필서명, 여전한 의문]

중앙일보

입력

27일 정주영 명예회장의 정몽헌 회장 승리선언으로 현대가 '왕자의 난'이 대단원의 막을 내렸지만 정 명예회장의 친필서명을 둘러싼 의혹은 여전히 꼬리를 물고 있다.

정 명예회장은 이날 오전 현대 경영자협의회에 참석, "현대 회장을 정몽헌 단독회장으로 한다"고 공식 발표했다.

그러나 전날(26일)만해도 `정몽구 회장 공동회장유지' 인사명령안에 친필서명이 기재돼 있었다. MK(정몽구)측이 그룹회장 복귀를 강도높게 주장한 것도 다름아닌 친필서명의 효력을 등에 업은 것이다.

그렇다면 ▶정 명예회장이 직접 서명한 인사안을 하루만에 스스로 취소한 것인지 ▶인사안에 친필서명한 사실 자체가 없었던 것인지 ▶친필서명하고도 이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인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그룹 구조조정위원회는 이날 공식발표에서 친필서명 문제에 관해 극도로 언급을 자제했다. 김재수 위원장이 "공식적으로 확인하지도 않았고 아는 바도 없다"고만 밝혔을 뿐이다.

현대 안팎에서는 정 명예회장이 24일 '정몽헌 단독회장'을 재가하고 이날 이를 재확인했다는 점에서 입장변화가 있을 수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또 26일의 친필서명도 최근 정 명예회장의 사인과 같아 직접 서명한 것은 분명하다고 현대관계자들은 보고 있다.

한 관계자는 "과거 서명을 할때 '정'자를 힘있게 써내렸는데 최근 들어서는 힘이 떨어져 글씨를 흘려쓰고 있다"며 "사인은 정 명예회장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친필서명을 하고도 이를 기억하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나 정신력이 약화된 것일까.

그러나 정 명예회장을 곁에서 지켜본 현대 인사들은 한결같이 "걸음걸이 외에는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건강하다"고 전하고 있다. 실제로 이날 경영자협의회에서의 정 명예회장 말투는 어눌하면서도 분명한 어조를 띠고 있었다.

특히 `정몽헌 회장 단독으로 한다는 것을 여러분이 의아하게 생각하는 모양인데....' `제가 배후에있기 때문에 다 저와 의논한 것...."이라고 언급한 대목에서는 판단력이 살아있음을 입증해주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육체적으로도 이상징후가 별로 없어 보인다.

올초 미끄러지는 바람에 잠시 현대중앙병원에 입원한 일을 제외하고는 지방출장도 자주 가고 회사에도 일주일에 2∼3차례씩 출근하며 건재함을 과시하고 있다.

다만 이날 경영자협의회 석상에서 "저희 회사일을 정확하게 보도하기 위해 아침 일찍 모여줘 고맙다"고 말한 점을 두고 회의에 참석한 계열사 사장들을 언론사 취재진으로 착각한게 아닌가 하는 관측도 적쟎다.

김재수 위원장은 "본인이 (인사문제에대해)분명히 나서야 한다는 생각에서 그렇게 말씀하신 것 같다"고 말했다.

'한번 결정을 내리면 좀체 번복이 없다'던 정 명예회장이 인사를 번복한 점도 과거 스타일과는 분명히 다르다는 게 주변의 관측이다.

(서울=연합뉴스) 노효동.박세용기자 rhd@yonhapnews.co.kr se@yonhap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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