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한진중공업을 보는 진보의 또 다른 시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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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한진중공업 사태는 좌파 진보 진영의 의도대로 노사 분쟁을 넘어 사회적 현안으로 부상했다. ‘희망버스’란 이름을 앞세운 외부 세력은 영도조선소를 정치 투쟁의 상징으로 변모시켰다. 하지만 반감은 커지고, 민심은 싸늘해졌다. 지난 주말 부산에서 열린 ‘제3차 희망버스’는 주최 측의 기대만큼 큰 호응을 얻지 못했다. 동력이 떨어질 조짐을 보이자 야권에선 서울로 장소를 옮겨 희망버스의 4차 행사를 열려고 한다. 왜 열기가 사그라지는 것일까.

 이런 관점에서 한 진보 논객의 분석은 눈길을 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인터넷 매체에 기고한 글에서 “나는 희망버스에서 희망을 찾을 수 없다”고 단언했다. “한진중공업 투쟁에서 해고 노동자 보호 대책은 어디론가 묻혀버리고 선과 악의 대결처럼 돼 버렸다”는 게 그 이유다. 그는 “작게 보면 악덕 기업주의 무자비한 정리해고 문제지만, 크게 보면 중국 조선산업의 일취월장(日就月將)에 따른 한국 조선산업의 구조조정 문제”라고 파악했다. 김 소장이 진보를 대변하는 인물은 아니다. 하지만 이번 사태를 직시하려는 노력은 평가할 만하다.

 한진중공업 노사 대립은 대규모 정리해고로 지난해 말 촉발된 이래 8개월째 계속되고 있다. 지난 6월 27일 극적으로 노사 합의가 도출됐지만 희망버스 등 외부 세력의 개입으로 더 복잡한 양상으로 치닫고 있다. 김 소장은 정리해고의 불가피성을 주장한다. “(크레인 농성 중인 민주노총 지도위원) 김진숙씨는 ‘정리해고 철폐’로 집약되는 노동권 보호를 주장하지만 이것이 과도하면 ‘후세대 노동권’과 ‘힘없는 중소기업의 노동권’이 크게 훼손된다”고 지적했다. 정규직 노동자의 이익만 대변해온 기존의 노동운동권이 경영상 구조조정까지 막을 경우 신규 채용과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요원하다는 얘기다.

 영도조선소에는 현재 1400명의 직원과 더 많은 협력업체 직원이 일하고 있다. 영도조선소의 정상화 여부는 부산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친다. 김 소장은 “진보가 노조의 타협과 영도조선소의 이해 관계자들의 판단을 무시한다면 국민과 기업주들은 진보의 집권을 한국의 재앙이자 절망으로 여길 것”이라고 했다. 진보 진영이 경청할 만한 고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