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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 깊이 읽기] 공포를 먹고 살찌는 정보기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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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조작된 공포 (원제 Global Intelligence)

폴 토드 외 지음, 이주영 옮김

창비, 384쪽, 1만2000원

조직이론에 '파킨슨의 법칙'이라는 게 있다. 정부조직은 업무량과 관계 없이 자기증식을 계속한다는 내용이다. 영국의 역사학자이자 경제학자인 노스코트 파킨슨이 영국 해군을 관찰한 결과 주장한 것이다. 그는 1914년부터 14년간 영국의 함정과 선원 수는 줄어들었는데도 해군본부의 공무원 수는 훨씬 늘어났다고 신랄하게 지적했다. '파킨슨의 법칙'은 지금도 정부조직의 비대화를 비판할 때 자주 인용된다.

정보기관도 마찬가지다. 이 책은 냉전 종식 이후 할 일이 줄어든 각국의 정보기관이 어떻게 조직을 방어 또는 확대해 왔는지를 파헤친다.

대공업무가 중심이던 서구의 정보기관들은 냉전체제의 붕괴로 심각한 위기에 빠졌다. 이들은 더이상 '붉은 군대'의 이동이나 미사일 배치 등을 알아내려 정보활동을 할 필요가 없게 됐다. 결국 기다리고 있는 것은 대대적인 조직 감축. 미국 중앙정보부(CIA)만 해도 1990~96년에 전체 예산의 30% 정도가 삭감됐다.

일자리를 잃은 정보요원들이 넘쳐났고 심지어 영화나 소설에서도 스파이들은 퇴물이 되고 말았다. 서구의 정보기관들은 자신들이 거둔 승리의 희생자가 된 셈이다.

그러나 이에 밀릴 정보기관들이 아니다. 이들은 조직과 예산을 지키기 위한 활로를 모색한다. 여기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한 것이 바로 9.11 테러다. 이제 공산당을 대신해 테러가 정보기관의 존재이유를 제공하는 새로운 공포로 떠올랐다는 뜻이다.

그 후 서구의 정보기관은 확대재생산의 길을 걷고 있다고 이 책은 경고한다. 테러 예방을 명분으로 감시와 통제가 더욱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세계 최대의 정보감시 시스템인 에셜론은 전지구 차원에서 e메일을 감시할 수 있다. 또 CIA의 '오아시스'는 전세계의 모든 라디오 및 TV방송의 특정 내용을 간추려 문서로 만들어낸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민주주의를 지켜내려면 정보기관의 무책임한 권력을 제도적으로 감시하고 통제해야 한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이 책은 독자 서비스가 상당하다. 부록으로 각국 정보기관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웹사이트를 상세히 안내해준다. 또 역자가 쓴 '한국의 정보기관'도 우리의 사정을 되새겨보게 한다. 저자 폴 토드는 중동문제에 정통한 미국의 역사학자다.

공저자인 조너선 블로흐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출신으로 정치운동에 적극 참여해온 행동파 지식인이다.

남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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