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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과 양의 물 만나는 곳, 수도권 2300만 명의 생명수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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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9호 19면

수력발전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수도권 용수 공급, 홍수조절 기능을 해 오고 있는 팔당댐에서 방류를 하고 있다. 주말과 공휴일에 개방되는 공도교 위 시설물에는 조명이 밝혀질 예정이다. 신동연 기자

서울은 물의 도시였다. 남부순환로를 비롯한 강남의 도로들이 물에 잠겼고 운전자들은 자동차를 버리고 탈출했다. 물은 허리까지 차올랐다. 그래도 비는 줄기차게 내렸다. 버스정류장은 물의 정류장이 돼버렸다. 도시 홍수였다. 아스팔트와 시멘트의 도시 서울은 그 홍수에 취약했다. 산사태가 났고 하수구로 진입하지 못한 물들이 도시를 점령해버렸다. 통제를 벗어난 물은 사나웠고 수재(水災)로 이어졌다.

사색이 머무는 공간 <67> 팔당댐과 수도박물관

지난 26~28일 하늘에서 쏟아진 물폭탄으로 대한민국 수도 서울이 물난리를 겪었다. 1907년 중구 송월동 서울측후소에서 기상관측이 시작된 지 사흘간 강우량으로는 104년 만의 기록이라고 한다. 평상시에는 초당 124t의 물을 방류하던 팔당댐이 28일 새벽 2시15분부터 초당 18000t을 쏟아냈다. 국토부 한강홍수통제소의 결정에 따른 방류였다. 물의 도시를 관통하는 한강은 흙탕물로 넘쳐났다. 한강 둔치는 범람했고 나들목 수문은 굳게 닫혔다. 강남 신사동 한강 나들목은 28일 오후에야 수문이 열렸다. 물이 빠진 한강공원은 개흙 범벅이다. 한남대교 하류 쪽 공원은 여전히 물속에 잠겨 있었다. 뻘밭이 강남 도심 곳곳에 생겼다. 서울은 이제 새로운 물길을 내야 할 때다. 이 정도의 폭우는 너끈히 받아내고 걸러낼 수 있는 하수도를 마련해야 할 때다.

2300만 명에게 1급수 먹이는 수도권 젖줄
서울시민과 경기도민 2300만 명의 생명수 한강은 축복이다. 한강의 기적은 눈부신 경제발전을 뜻한다. 수도권 시민들의 젖줄, 한강은 근대화의 산증인이기도 하다. 팔당댐과 팔당호를 만든 이래 시민들은 ‘물 풍요’를 누려왔다. 현재 세계 최대 식수원의 수질은 1급수다. 그뿐만 아니라 제한급수를 실시한 적이 없는 천혜의 수자원이다. 서울시는 수돗물 ‘아리수’를 내놓고 자랑한다. 한강변에 있는 6개의 취수장(팔당·풍납·강북·구의·암사·자양)에서 원수를 얻는다.

문명 앞에는 숲이 있고 문명 뒤에는 사막이 있다. 숲은 강의 원천이고 사막에도 강물이 적셔지면 도시가 들어설 수 있다. 강은 인간의 마을과 도시의 젖줄이다. 선사시대부터 인류는 강가에 터를 잡고 살았고 역사시대 인류는 강가에 도시를 건설했다.

서울시 뚝도 아리수 정수센터에 있는 수도박물관. 르네상스식 건물과 1908년 대한제국의 근대적 상수도시설인 송수실과 여과지를 견학할 수 있다. 신동연 기자

우물은 오랫동안 인류의 급수 공급원이었다. 우물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도시가 커지면서 수도시설이 만들어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수도는 기원전(BC) 313년 로마 아피아 거리에 설치된 시설이라고 한다. 근대식 수도는 1804년 영국에서 완속사 여과법(Slow Sand Filter)이 개발되고 급속사 여과법으로 발전하면서 일반화됐다.

우리나라는 1908년 서울에 뚝도정수장이 준공되면서 서울시민에게 수돗물을 공급했다.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트윅은 고종 황제로부터 따낸 상수도 부설·운영권을 영국인이 설립한 대한수도회사에 양도했다. 대한수도회사는 완속 여과지 정수시설을 완공하고 9월부터 급수를 시작했다. 물지게를 지고 서울 골목골목을 누볐던 그 유명한 북청 물장수들이 그때 실직했다. 당시 서울 인구는 20만 명이었는데 12만5000명이 수돗물을 먹었다. 위생적인 수돗물 공급으로 콜레라·장티푸스 같은 풍토병이 줄어들었다.

73년 준공한 팔당댐은 수력발전으로 전력을 생산하고 수도권 용수 공급과 홍수조절 기능을 해왔다. 남한강과 북한강이 합류하는 두물머리 7㎞ 하류에 있는 팔당댐은 한강수력 팔당발전소가 관리한다. 연간 4억5000만kWh의 발전량을 생산하며 98억t의 광역상수원을 공급한다. 연중 365일 불이 켜져 있는 한강수력 팔당발전소는 거대한 물의 정거장이다.

팔당댐이 있는 곳은 두미협(斗尾峽)이다. 두미협곡을 지나는 한강을 두미강이라 불렀고 두포(斗浦)가 있었다. 용량을 재는 그릇이 ‘말[斗]’이다. 옛 나루터인 두포에 들어선 오늘날의 팔당댐이 저수량을 재면서 조절 기능을 하고 있어 흥미롭다.

이곳에서 상수원보호구역으로 묶인 북한강 삼봉리와 문호리, 남한강 국수리와 영동리 지점까지를 팔당호라고 일컫는다. 산이 모이고 물이 합쳐지는 곳에는 국량이 큰 터가 풀어지기 마련이다. 그 언저리에 큰 마을이나 도시가 들어서고 때로는 도읍지가 된다. 이곳 팔당호로부터 한강이 서해바다에 몸을 푸는 인천까지 서울과 경기도 여러 도시가 포도송이처럼 영글어 있다. 한강 하류에 집중된 도시들은 여러 문제를 낳기도 하지만 비약적인 경제성장의 주축과 동력이 돼왔다.

한강 발원지는 태백시 금대봉 기슭 검룡소
팔당호는 생태환경이 빼어난 물의 천국이다. 이 물의 천국은 크게 세 권역으로 나뉜다. 다산 정약용 선생의 유적지가 있는 능내리의 다산권, 양수리권, 광주권이다. 광주권인 남종면 분원리에는 경기도 팔당수질개선본부가 있다. 본부 건물 9층 연중무휴로 개방하고 있는 ‘팔당전망대’에서 물의 정거장, 물의 천국을 조망한다. 물은 1000개의 얼굴을 지녔다. 몽환 속 같은 물안개가 피어나는 이른 새벽, 거울처럼 잔잔한 한낮, 축축한 이내가 깔리는 저녁, 물의 표정은 저마다 다르다. 물의 거울에는 산과 산들이 서로 손을 맞잡는 모습도 비친다. 하늘 건너가는 구름이 그 사이에 들어오면 완벽한 풍경화다. 날이 저물면서 스스로 깊어가는 물의 마음 깊은 자리에 자신을 비춰볼 수 있다면 그는 지혜로운 자다.

“강가에 말을 세우니 저 멀리로 붉은 명정은 바람에 펄럭거렸네. 물 위로 구불대던 배의 돛대 그림자는 강안을 돌아 나무에 가리게 되자 다시는 볼 수가 없었네. 강가의 검푸른 먼 산들은 마치 누님의 쪽 찐 머리 같고, 물빛은 누님의 화장거울 같고, 새벽달은 누님의 눈썹 같았어라.”

1771년 9월 초순 어느 날, 연암 박지원이 두포에서 양평 아곡으로 떠나가는 배를 보고 읊은 절창이다. 그 배에는 여덟 살 위였던 누이의 상여가 실려 있었다. 마흔넷에 세상을 뜬 누이를 그리는 애틋한 동생의 정리가 절절하다. 영원히 사라져 가는 것, 그래서 추억할 수밖에 없는 마음을 담았다. 마치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것만 같다. 슬픔을 승화시킨 연암 문학의 미학을 본다.

‘팔당전망대’에서 내려와 삼성리 선착장으로 간다. 순찰 팀은 상수원 보호구역 내 불법행위를 지도·단속하는 업무를 맡고 있다. 육상 순찰 팀과 연계하여 낚시, 세차, 수상 쓰레기 투기를 막고 청소한다. 총 14척(순찰선 4척, 청소선 5척, 수초 제거·운반선 4 척, 오일펜스 운반선 1척)의 다양한 배들을 갖췄다. 청소선과 수초 제거선은 농가 부산물, 생활 쓰레기와 억새 등을 매년 1200t가량 수거한다. 그래도 팔당댐까지 밀려드는 쓰레기가 있어서 2대의 크레인으로 연간 300t쯤을 건져낸다.

5인승 순찰선에 오른다. 물을 가르며 35노트로 달리는 순찰선은 팔당호의 지킴이다. 본부의 종합상황실, 육상 순찰 팀과 하나가 되어 수도권 시민들의 생명수를 보호하고 관리한다. 거대한 발자국 모양의 족자도 남쪽, 남한강 쪽으로 달린다. 호숫가에는 수초들이 무성하다. 팔당댐에서 25m 물 높이를 일정하게 유지하기 때문에 수초가 잘 자란다. 이 수초들은 호안 침식을 방지한다. 시멘트벽보다 더 나은 기능을 한다.

물 위를 달리는 순찰선 위에서 한강의 발원지를 떠올린다. 강원도 태백시 금대봉 기슭 검룡소다. 석회 암반을 뚫고 솟아난 맑은 물은 푸른 이끼 무성한 폭포를 이루며 쏟아진다. 도시문명에 지친 영혼을 태고(太古)의 자연에 씻고 정화하고 싶을 때마다 찾곤 하는 성소(聖所)다. 자라 같은 바위를 덮어놓은 검푸른 소(沼)에는 정말 검룡이 살고 있는 것 같아서 외경이 느껴진다. 찾는 이들이 부쩍 늘어나자 목조 계단을 설치하면서 신성성이 떨어졌다.

“보세요. 자연의 원형을 깨뜨리는 인공시설물들이 갑자기 늘어나고 있지요. 상수원 보호 구역은 절대적으로 지켜져야 할 생명선입니다. 최고의 물을 위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생명수를 지키려는 노력이 있어야 해요. 이렇게 호수 위를 달리면서 물의 소중함을 현장 학습하는 프로그램이 필요할 때입니다. 학습선을 건조해 수도권 어린이들부터 체험시키는 것이죠.” 수질관리팀 박종표(55) 선장은 지금의 선착장을 기획하고 제안한 실무자다. 외항선을 타던 그가 부임하던 89년 당시, 도마리 작은 선착장에는 순찰선 3척이 전부였다고 한다.

박 선장이 배를 돌린다. 두물머리를 오른쪽으로 감돌아 북한강 쪽으로 향한다. 근원이 다르면 물빛도 다르다. 물위를 달려오는 바람의 감촉 또한 다르다. 남한강 물빛보다 더 파란 북한강은 상쾌한 느낌을 준다.

물에도 음양(陰陽)이 있다. 그 음양이 팔당호에서 뒤섞여 하나의 태극(太極)을 이룬다. 호소에 갇힌 물은 길들여져 얌전하다. 이 많은 물도 수도권 시민들이 닷새 동안밖에 쓸 수 없다. 남·북한강에 흘러 들어오는 물이 있어 팔당호는 늘 만수위다. 2300만 명의 생명줄인 팔당호는 대한민국의 미래를 비추는 거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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