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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리사 소송대리권 없어 특허전쟁 뒤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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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강희철
변호사·법무법인 율촌

국회에 계류 중인 변리사법 개정안은 특허침해 소송에서 변리사가 변호사와 공동소송 대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와 관련해 변호사의 직역이기주의 때문에 개정안이 국회에서 장기간 처리되지 않고 있으며, 이로 인해 우리나라가 특허전쟁에서 뒤지고 있다는 주장이 최근 제기되고 있다. 변리사들은 이미 특허 보호에서 가장 중요한 분야인 등록 출원은 물론, 특허의 유·무효와 특허청 처분의 효력을 다투는 심결무효소송 절차에서 대리권을 갖고 있다. 논란의 핵심은 특허침해 소송에서도 변리사들이 공동소송대리권을 가져야만 국민의 권리 보호와 지적재산권의 창달이 이루어질 것인지에 있다.

 현행 법제도상 소송 대리는 원칙적으로 변호사만 할 수 있다. 의술이 그렇듯이 소송 절차는 고도의 전문지식과 경험을 필요로 하는 영역이다. 특허침해 소송은 특허 등 권리 침해에 대해 권리침해 금지와 사전 예방청구,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민사소송이다. 민법과 민사소송법 전반, 입증책임, 불법행위, 손해배상의 법리에 관한 전문적인 지식과 경험이 있어야만 제대로 수행할 수 있다. 이에 대해 기술 전문가인 변리사들은 법률 전문가인 변호사와 공동으로 소송대리를 함으로써 침해소송을 보다 잘 수행할 수 있고, 특허 전쟁에서 이길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변리사들이 기술 전문가라는 것은 성급한 일반화다. 그들은 과학기술 전문가가 아니며, 특허 출원 등의 법적 절차 대리가 주 업무다. 변호사들이 기술 분야의 문외한이라는 인식 역시 성급한 일반화다. 현재 매년 이공계 출신을 포함한 약 200명의 비법학 전공자가 변호사로 배출되고 있다. 이 중 상당수는 이미 지적재산권 관련 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또한 로스쿨 재학생의 15% 이상이 이공계 출신이다. 따라서 내년부터 매년 300명 이상의 이공계 출신 변호사가 배출된다.

 실제 침해소송에서 변호사들은 기술적인 전문지식은 발명가와 회사 기술자, 변리사의 도움을 받아 수행한다. 필요하다면 변리사들이 변호사의 보조인으로서 소송절차에 직접 참여해 기술설명을 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제도의 도입은 고려해 볼 만하다. 영국·미국·독일 등 특허 선진국들에선 변리사 자격만으로는 침해소송에서 소송대리를 할 수 없다. 다만 일본은 변리사가 변호사가 이미 선임된 사건에 한해 변호사와 공동으로 침해소송의 대리인이 될 수 있다.

  그런데 개정안은 변리사들에게 무조건적인 공동소송대리권을 부여하고 있다. 현행 공동소송대리 제도에 따르면 공동대리인은 각자 법정 출석을 포함한 모든 소송행위를 단독으로 할 수 있다. 변리사들이 공동소송대리인으로 이름만 빌려줄 변호사를 찾아 실질적으로는 단독으로 소송을 수임해 수행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개정안에는 이로 인한 부작용에 대한 고려가 전혀 없다. 변리사 소송대리권 문제는 대한민국의 사법과 소송제도, 외국의 제도, 로스쿨 제도의 도입 취지 등 관련 문제 전반을 합리적으로 검토한 후 국민을 위해 가장 바람직한 결론을 도출해야 할 중대 사안이다.

강희철 변호사·법무법인 율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