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납세자 마음의 소리 들을게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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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지난 22일 경기처도 수원시 국세공무원 교육원에서 열린 세무직(7·9급) 합격자 교육 수료식. 국세공무원 145명이 16주간의 일정을 마치고 새 출발하는 자리였다. 이 자리엔 소리를 전혀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 2명도 함께했다.

 주인공은 김상현(34·사진)씨와 소연(27·여)씨. 소씨는 자신의 얼굴 사진 공개를 한사코 거절했다. 두 사람은 청각장애를 극복하고 명문대학을 졸업했다. 그리고 이제 희망했던 국세공무원이 되는 꿈을 이뤘다. 국세청은 전체 직원이 2만여 명에 달하는 거대 조직이지만 장애 직원은 청각장애인 5명을 포함해 689명뿐이다.

 김상현씨는 세 살 때 앓은 패혈증으로 청력을 서서히 잃었다. 본인과 부모는 이런 사실을 전혀 몰랐다. 초등 5학년 때 한 방송사 어린이 퀴즈 프로그램에 출연했다가 아나운서의 말을 이해하지 못해 귀에 이상이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현재 청각장애 3급. 김씨는 연세대 경영학과 재학 중이던 2000년부터 공인회계사(CPA) 시험을 준비했다. 수업 내용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기에 독학을 해야 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2003년엔 CPA 시험에 합격했으나 취업은 쉽지 않았다. 2008년엔 세무직 7급 시험 면접에서도 떨어졌다. 하지만 굴하지 않고 지난해 9급 공채에 도전해 마침내 합격했다.

 서울대 경제학과를 나온 소연씨도 두 살 때 열병을 앓은 뒤 청력을 잃었다. 현재 청각장애 2급. 전혀 듣지 못한다. 소씨는 자신의 학창 시절을 “불편함의 연속이었다”고 말한다. 아침에 자명종 없이 스스로 일어나야 했고, 지하철·버스 안에서도 항상 정거장을 머릿속으로 확인해야 했다. 수업을 들을 때도 다른 학생의 필기 내용을 봐야 했다.

다음 달 서울시내 일선 세무서로 배치되는 두 사람은 모두 청각장애인에 대한 지원 확대를 희망했다. 김씨는 “미국처럼 청각장애를 가진 공무원을 위한 통신중계 서비스가 빨리 이뤄지고, 전문 속기사를 고용해 청각장애인를 가진 교육생들을 위해 수업 내용을 속기해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현동 국세청장도 수료식에서 이들의 사연을 듣고 신체 장애를 가진 직원을 파악해 필요한 장비를 지급하라고 지시했다. 국세청은 전국 689명의 장애 직원에 대해 사유별로 만능보청기·보청전화기·문서인식 소프트웨어 등의 장비를 지급할 예정이다. 두 사람에겐 전화 내용을 문자화하는 ‘상황적응형 음식인식기’가 개발되는 2012년에 이 장비를 사 주기로 했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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