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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회창 “박근혜 대세론, 내 때보다 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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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당 대표직에서 물러나 백의종군하고 있는 이회창 전 자유선진당 대표가 25일 국회에서 본지와의 인터뷰 도중 “우리 정치를 나와서 보니 ‘와우각상지쟁(蝸牛角上之爭)’ 같다는 생각이 든다”며 웃었다. ‘와우각상지쟁’은 달팽이(蝸牛) 뿔 위에서의 하찮은 다툼을 일컫는, 『장자(莊子)』에 나오는 말이다. [오종택 기자]


이회창(76) 자유선진당 전 대표는 올 5월 초 당 변화의 물꼬를 트기 위해 사퇴했다. 탈당한 심대평 국민중심연합 대표 등 ‘충청권의 통합’을 염두에 두고 그런 선택을 한 것이다. 하지만 통합 논의는 진전을 보지 못하고 있다. 그걸 지켜봐 온 이 전 대표는 25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표직을 그만둔 입장에서 답답하다”고 말했다. “그만둔 지가 언제인데 한 발짝도 못 나가고 있다”고도 했다. 그가 ‘충청의 통합’을 원하는 건 내년 총선에서 세력을 키운 다음 대선 때 판세에 큰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입지를 마련하기 위해서라는 게 정치권의 분석이다.

 이 전 대표는 1997년과 2002년 실시된 대선에서 패배했다. 두 차례 모두 ‘이회창 대세론’을 일으켰으나 결과는 실패였다. 그에게 ‘대세론을 누리고도 진 이유가 뭔가’라고 물었더니 “상대방 후보가 부각되기 전에 대세론이란 없다. 가장 유력한 후보가 있을 수 있지만 대세론은 상대방이 부각된 뒤에 나올 수 있다”는 답이 나왔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경우 전례가 없을 정도로 지지율이 높고 그게 장기간 계속되고 있다. 나하고 비교할 수 없을 정도며, 상당히 특수한 경우다. 그러나 아직 상대 후보가 부각되지 않고 있는 만큼 조심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충청권 통합 논의가 지지부진한 이유는 뭔가. 이 전 대표가 다른 욕심을 부리는 건 아닌가.

 “어린아이 장난하는 심정으로 대표를 그만둔 게 아니다. 언론보도를 보면 심대평 대표 측에서 먼저 (선진당의) 쇄신을 요구하는 것 같다. 인적 쇄신 등의 요구가 오는데 내가 보기엔 순서가 틀렸다. 쇄신하는 것을 보고 들어가겠다고 하는 것은 선후가 바뀐 것이다. 통합된 정당이 어느 방향으로 갈지는 같이 합의해 정하는 것 아닌가.”

 -이회창 대세론은 왜 실패했나. 박근혜 대세론과는 무슨 차이가 있나.

 “패장은 말이 없는 법이어서 그동안 말을 하지 않았다. 나에겐 진정한 의미의 대세론이 없었다. 2002년 3월 민주당 광주 경선에서 노무현 후보가 승리한 이후 (내가 앞서가던) 지지율이 역전됐다(당시 경선 직후 중앙일보 조사 결과는 노무현 55%, 이회창 33.6%). 그 후 미군 장갑차 사건이 생겨 반(反)보수 광풍이 불었던 만큼 나에겐 대세론이 없었다고 봐야 한다. 1997년에는 이인제 당시 경기지사가 탈당하고 악전고투가 시작됐다. 여당이긴 했지만 대통령 주변 인물들이 오히려 이인제 후보를 지원한다며 여럿 탈당했다. 내가 대세론에 젖어있다 한방 먹었다는 얘기는 사실과 다르다.”

 -2002년의 경우 이 전 대표는 노무현 후보의 지지율이 상승하기 전까지는 1등이었다. 지금의 박 전 대표와 비슷한 상황이 아니었나.

 “근본적 차이가 하나 있다. 당시엔 내가 여당 후보가 아니었다. 김대중 정권이 전적으로 노무현 후보를 밀고 지지할 때였다. 노 후보가 부각되기 전부터 우리는 쉽지 않은 기간을 지낸 것이다. 박 전 대표의 경우는 (현재 여당 소속이므로) 나와 비교할 필요가 없다.”

 -홍준표 한나라당 대표는 어떻게 평가하나.

 “예상보다 잘하고 있다. 대표가 관리형에 머물거나 유력한 대권 주자가 있어 목소리를 내기 어려울 것 같은데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그러나 얼마 전 김영삼 전 대통령을 만나 넙죽 큰절을 한 것은 지나쳤다. 심대평 대표를 예방해 ‘총리로 모시려고 했는데 아깝게 됐다’고 했는데 이 역시 사려 깊지 못한 행동이었다.”

 -손학규 민주당 대표와 문재인 노무현재단 이사장에 대한 생각은.

 “손 대표가 민주당에 단기필마로 건너가 야당의 대권 주자가 된 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철학과 원칙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그는 좌파 강경론에 근접해 있다 가끔 ‘우클릭’ 발언도 한다. 좌고우면하는 모양새로는 국민의 신뢰를 얻기 어렵다. 문재인 이사장의 경우 대권 주자로 나서려면 철학과 실력으로 자기 경쟁력을 입증해야 한다.”

 -내년 총선을 앞두고 보수 대연합 얘기가 나온다. 총선을 어떻게 치를 건가.

 “총선의 경우 보수연합이든 야당연합이든 그렇게 안 간다. 우리 당은 우리 당의 깃발로 치른다. 총선이 끝난 뒤 대선 정국으로 들어가게 되면 변화가 있을 수 있다.”

 -지지율이 미미한데 내년 대선에 또 나갈 건가.

 “총선을 앞둔 시점에 대선과 관련해 생각도 안 하고 있다.”

 -총선에서 지역구(충남 홍성-예산)를 포기하고, 비례대표로 나갈 것이란 말이 있다.

“지역구를 포기하거나 비례대표로 나서는 것은 전혀 생각지 않고 있다.”

 -지역구 출마를 한다는 건가.

 “(고개를 끄떡이며) 지역구 포기나 비례대표는 고려하지 않고 있다.”

글=신용호·백일현 기자
사진=오종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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