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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청춘은 맨발이다 (64) 납세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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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2008년 4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린 핸드프린팅 행사에 모인 신성일·윤정희·신영균·문희(왼쪽부터). 1960년대 한국영화의 황금기를 이끌었던 스타들이다. [중앙포토]


1960년대 중반 이후 매년 30편 이상의 영화에 출연했다. 이 덕분에 연예·예술계를 통틀어 납세왕 타이틀은 항상 내 차지였다.

 인기·수입·납세 규모 면에서 영화 배우는 다른 직종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이낙선 국세청장이 고액납세자에게 표창을 시작한 65년부터 난 연예·예술인 분야에서 납세 1위를 놓치지 않았다. 기업 분야에선 합판을 생산하는 부산 동명목재 강석진 회장이 1위였으니, 우리나라 기업 규모가 얼마나 작았는지 짐작할 수 있겠다.

 70년대 들어 외자도입과 수출 정책이 시행되고, 포항제철이 가동되고, 경부고속도로가 개통되면서 기업들이 성장할 수 있었다. 국세청의 고액납세자 표창 행사는 이 청장이 상공부 장관으로 영전한 69년까지 계속됐다.

 나는 총수입의 20~30%를 세금으로 냈다. 당시 영화가 서비스업종으로 분류되어 있었기 때문에 세금도 엄청났다. 할리우드 스타들도 세금을 많이 냈지만 개인적으로 인력을 고용하고 지출하면 그만큼 혜택을 주었다. 난 당시 서비스 업종에서 세금 징수의 맹점을 발견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백방으로 로비를 했다. 결국 허사로 돌아가면서 안타까움을 많이 느꼈다.

 65년 내가 낸 1기분(6개월) 세금은 190만원이었다. 반면 가수 분야 1위 최희준은 9만8000원에 불과했다. 나는 68년 965만원의 소득을 올려 그 중 339만3362원을 세금으로 냈다. 국세청이 언론을 통해 발표한 68년 납세 랭킹 자료를 보면 다른 영화배우, 다른 직종과 더욱 격차가 벌어진다.

 정부 당국에서 나를 관리하기 시작했다. 내가 1기분 세금으로 낸 340만원은 큰 집 한 채를 살 수 있는 거금이었다. 가수 1위 이미자, TV 탤런트 1위 나옥주와 납세액이 몇 십 배 차이가 났다. 내무장관이 밤 촬영을 위해 전국을 돌아다닐 수 있는 야간통행증을 내준 사람은 내가 유일했다. 나는 그 통행증을 차에 붙이고 전국을 누볐다. 박노식 등 일부 배우는 서울 지역만 제한적으로 다닐 수 있는 서울특별시장 명의의 야간통행증을 받았을 뿐이다. 내 스스로 ‘신성일은 최고’란 자부심을 가질 수 있었다.

정리=장상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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