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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클립] Special Knowledge <326> 보훈대상자 분류와 대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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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국가유공자·독립유공자·참전유공자·민주유공자·전사자·순직자…. 신문과 뉴스에서 많이 보고 듣던 단어입니다. 모두 자신의 몸을 바쳐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공헌한 분들을 부르는 호칭입니다. 하지만 이런 호칭이 어떻게 다르고, 선정 기준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거나 노력한 분들을 어떻게 나눠서 부르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신진호 기자

현충일 추념식이나 각종 기념 행사를 할 때면 항상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에 대한 묵념’을 한다. 참석자들은 나라를 위해 삶을 바친 분들의 정신을 기린다는 마음으로 눈을 감고 고개를 숙여 경의를 표한다. 그들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존재한다는 같은 생각이기 때문이다. 서울과 대전의 국립현충원, 그리고 전국 각지의 국립묘지에는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수십만 명의 유해와 위패가 안장돼 있다. 지난 4월 말 기준으로 국가보훈처가 관리하는 대상자는 모두 80만9491명이다. 보통 보훈대상자라고 부르지만 법률에 따라 부르는 호칭이 따로 있다.

제56회 현충일 추념식이 열린 지난달 6일 국립대전현충원을 찾은 유치원생들이 국군장병들이 안장된 묘비 앞에서 두 손을 모으고 묵념을 하고 있다. [국립대전현충원 제공]



독립유공자

독립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에 따라 해방 시점에서 생존했느냐에 따라 순국선열과 애국지사로 구분한다. 순국선열은 일제의 국권 침탈 전후에서 해방 때까지 국내외에서 독립운동을 하다 숨진 분들이다. 국가보훈처는 일제의 국권 침탈 시점을 갑오개혁(1894년), 을미사변(명성황후 시해사건·1895년) 무렵으로 규정하고 있다. 안중근·윤봉길 의사, 유관순·이준 열사 등이 대표적 순국선열이다. 정부는 1997년부터 11월 17일을 순국선열의 날로 정해 기념식을 하고 있다. 애국지사는 독립운동가 중 해방 후까지 생존한 사람이다. 김구 선생과 안창호 선생, 서재필 박사 등이다. 독립유공자가 누구인지는 국가보훈처 홈페이지(www.pvaa.go.kr)에서 검색하면 알 수 있다. 정부로부터 보훈대상으로 선정된 독립유공자(유가족 포함)는 순국선열 712명, 애국지사 6251명이다.

국가유공자

대한민국을 위해 공헌하거나 희생한 사람을 말한다. ‘국가유공자 예우 등에 관한 법률’ 제4조에 적용 대상이 명시돼 있다. 전쟁·교전을 치르면서 사망하거나 부상당한 군인·경찰, 6·25와 월남전쟁 참전유공자, 4·19혁명 사망·부상자, 순직·부상 공무원 등이 포함된다. 군사 목적으로 외국에 파견한 군인·경찰, 군무원·공무원, 종군기자 가운데 전투나 이에 준한 사태로 사망·부상한 사람도 대상이 된다. 국가유공자와 유족에게는 공헌·희생 정도에 따라 다양한 혜택을 준다. 우선 보훈급여와 보상금·생활조정수당·간호수당·무공영예수당·자녀수당·사망일시금 등을 지급한다. 유공자의 자녀와 후손은 등록금·수업료를 지원받고 국기기관과 지방자치단체·공공기업(단체)에 취업할 때 가산점을 받는다.

전사자·순직자

해군이 군인 정신을 기리기 위해 경남 창원 해양공원에 세운 고 한주호 준위의 동상. [중앙포토]

현역 군인이 숨지면 전사와 순직으로 구분한다. 전사는 전투나 전투에 준하는 상황(대침투작전 및 적과 교전 중에 사망하는 경우)이나 적이 설치한 위험물로 사망한 경우다. 전사자 가운데는 군인뿐 아니라 전쟁에 참가했다 사망한 경찰·소방대원도 포함된다. 이 기준에 따라 6·25 한국전쟁 때 전사한 경찰·소방대원은 전사자로 분류한다. 순직은 전사 이외의 임무수행 중 사망하는 경우다. 지난달 충북 청원에서 비행훈련 중 추락해 사망한 공군 조종사는 순직 처리됐다. 전투나 대침투작전에 참가했더라도 교전이 아닌 전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지원 업무 도중에 사망하면 순직이다. 일반적인 훈련이나 경계근무 수행 중 발생하는 교통·익사·총기사고, 폭발물사고, 추락사고 등이 이런 범위에 들어간다. 현역 군인이 전사하거나 순직하면 국립현충원에 안장된다.

참전유공자

6·25 한국전쟁과 월남전쟁 등에 참전한 군인·경찰을 말한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소방대원 가운데도 참전유공자가 있다. 생존한 65세 이상의 참전유공자에게는 참전의 명예를 기리기 위해 매달 15일 참전명예수당을 지급한다. 올해는 참전명예수당으로 매달 12만원을 지급하고 있다. 참전유공자가 국가·지방자치단체가 운영하는 의료시설에서 치료를 받으면 국가가 의료비를 지원한다. 사망하면 국립묘지인 국립호국원(영천·임실·이천 소재)에 안장된다. 4월 말 기준으로 6·25 참전유공자는 18만2023명, 월남 참전유공자는 13만8492명이다.

무공수훈자·보국수훈자

전투에 참가해 공을 세운 군인에게 수여하는 것이 무공훈장이다. 태극·을지·충무·화랑·인헌 등 5개 등급으로 구분한다. 지난해 천안함 폭침 사건 때 실종자 수색에 나섰다 순직한 고 한주호 준위에게는 무공훈장 중 셋째 등급인 충무무공훈장이 추서됐다. 보국훈장은 국가 안전보장과 질서유지 등에 공적이 큰 사람에 주는 훈장으로 통일장·국선장·천수장·삼일장·광복장으로 구분한다. 일반적으로 대장 출신의 군인에게 보국훈장 통일장을 수여한다. 1994년 김영삼 전 대통령은 북한을 탈출한 고 조창호 중위에게 보국훈장 1등급인 통일장을 수여했다. 2006년 서훈이 취소된 전두환 전 대통령은 보국훈장 천수장·태극무공훈장 등 9개, 노태우 전 대통령은 보국훈장 통일장·을지무공훈장 등 11개의 훈장을 받았다.

5·18 민주유공자

2002년 1월 26일 ‘광주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로 제정된 뒤 2004년 법이 개정되면서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대상자는 5·18 민주화운동과 관련해 사망하거나 행방불명된 사람. 부상했거나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 5·18 민주화운동 관련자 보상 등에 관한 법률에 의해 보상을 받거나 지원을 받은 사람과 유족·가족이다. 사망자의 자녀에게 학비를 면제하는 등 교육 지원을 하고 취업 지원 대상자는 일정 비율로 기업체에 우선 채용하도록 하고 있다. 사망·행방불명자 197명을 포함해 4098명이 유공자다.


1984년 ‘국가유공자 법률’ 생기며 시혜 대상 → 보훈 대상 격상

국가유공자란 명칭은 언제부터 사용됐을까. 해방 이후 건국의 기틀이 마련될 때까지는 국가유공자를 예우할 겨를이 없었다. 1970년대까지는 사안이 발생할 때마다 해당자에 경제적 지원을 하는 수준이었다. 미 군정과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제정된 군사원호법(1950), 경찰원호법(1957)은 전몰(戰歿·전쟁 중 사망)·전상군경(戰傷軍警·전쟁 중 부상)에 대한 보상·지원에 국한했다.

62년 국가유공자 월남귀순용사 특별원호법을 제정하면서 4·19혁명 관련자 및 유족, 일제강점기 순국선열과 월남 귀순자도 지원을 받을 수 있게 됐다. 하지만 관련 법이 일원화하지 않아 중복되거나 불균형한 부분이 있었다. 또 관련 법령이 보훈대상자에 대한 예우보다는 경제적 지원에 치중해 있었던 것도 문제였다.

전두환 대통령 재직 시절인 83년 12월 대통령 비서실이 주도해 ‘원호대상자 사기진작방안’을 마련했다. ‘시혜(施惠)를 베푼다’는 의미의 ‘원호대상자’라는 명칭을 ‘국가유공자’로 변경해 유공자와 유가족의 자긍심을 높이고 관련 법령을 통폐합할 것을 건의했다. 이에 따라 이듬해 5월 원호처는 ‘국가유공자와 그 가족들의 사기진작방안’을 마련해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이 방안은 앞으로의 유공자 정책을 물질적 지원에서 정신적 예우로 전환하면서 생존 여부나 생활 정도에 관계없이 국가에 공이 있는 모든 사람을 대상으로 했다. 유족의 경우도 유공자와 같은 수준으로 예우할 것을 제안하면서 그 의미와 대상 범위를 넓혔다. 이때에서야 국가유공자에 대한 지원과 예우가 모양을 갖추게 된 것이다. 국가유공자라는 명칭도 84년에야 제 의미를 갖게 됐다. 당시 30년이 넘도록 사용했던 원호대상자를 대신할 명칭과 의미 부여를 위해 각계 각층의 저명 인사가 참여했다. 국어학자 이희승·한갑수 박사와 역사학자 박영석 교수, 언론인 이규태씨와 소설가 이병주씨, 행정학자 박동서 박사가 자문 역할을 했다. 토론 등을 거쳐 당시 국사편찬위원회 박영석 위원장이 제안한 ‘국가유공자’가 최종적으로 채택됐다. 원호처라는 부처 이름도 국가보훈처로 변경했다.

이런 내용은 84년 8월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에 반영됐다. 독립기념관 김용달 부소장은 “이 법률은 국가유공자를 시혜 대상에서 보훈 대상으로 격상시킨 획기적인 내용이었다”며 “우리의 보훈정책이 물질적 보상만이 아니라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것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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