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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 → 포르투갈 → 이탈리아 → 아일랜드 … 유로존 ‘쇼크 도미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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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1면

유럽 재정위기가 전방위로 번지고 있다. 벨기에에서 12일(현지시간) 열린 유럽연합(EU) 재무장관회의에 참석한 장클로드 트리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고민스러운 듯 이마에 손을 얹고 있다. [브뤼셀 AP=연합뉴스]


‘이탈리아 쇼크’가 다시 아일랜드를 두들겼다.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12일(현지시간) 아일랜드의 국가 신용등급을 투기등급으로 강등했다. 투자등급의 끝자락이었던 ‘Baa3’에서 바로 아래 투기등급 ‘Ba1’으로 한 단계 낮춘 것이다. 유로존(유로화를 쓰는 17개국)에서 그리스·포르투갈에 이어 세 번째다. 유로존 전역이 악재가 다른 악재를 부르는 악순환에 빠진 셈이다.

 무디스의 이날 발표는 전날 유로존 재무장관 회의에서 흘러나온 ‘그리스 국채 일부 디폴트(채무 불이행)설’이 촉발했다. 애초 유럽연합(EU)과 국제통화기금(IMF)은 그리스 의회가 긴축법안을 통과시키면 2차 구제금융을 지원하기로 한 바 있다. 그런데 독일이 제동을 걸었다. 2차 구제금융이 민간 채권자 빚 갚는 데 다 쓸려들어가는 걸 우려해서다. 파이낸셜 타임스(FT)는 “독일이 2차 구제금융을 지원하되 민간 채권자도 일부 손실을 부담하도록 그리스 국채 중 일부는 디폴트 처리하자고 주장했다”고 보도했다.

 이 소식에 아일랜드가 유탄을 맞았다. 2013년 2차 구제금융을 받아야 하는 아일랜드가 그리스처럼 민간 채권자의 빚을 깎자고 나올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이다. 마이클 누넌 아일랜드 재무장관은 “무디스의 조치는 아일랜드 정부의 노력을 반영하지 않은 실망스러운 조치”라며 “아일랜드 경제는 격랑이 치는 바다 위에 뜬 코르크 마개처럼 악재가 불거질 때마다 떴다가 가라앉기를 되풀이하고 있다”고 푸념했다.

 아일랜드뿐 아니다. 불똥은 이탈리아를 넘어 유로존 전역으로 튀고 있다. 스페인과 프랑스까지 불안감이 확산 중이다.

12일 유로존 2위인 프랑스 10년 국채 금리는 3.41%까지 오르며 독일 국채와 격차(스프레드)가 0.7%포인트나 벌어졌다. 프랑스가 유로화에 가입한 이래 최고치다. 프랑스는 유럽 내에서 이탈리아 채권을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국가다. 국제결제은행(BIS)에 따르면 프랑스 은행은 3890억 달러의 이탈리아 채권을 보유하고 있다.

 스페인도 언제 터질지 모르는 뇌관이다. 스페인의 10년짜리 국채 금리는 12일 장중 한때 6.3%까지 치솟은 뒤 5.8%로 마감했다. 로이터 통신은 “스페인의 6개 은행이 EU의 제2차 ‘스트레스 테스트(재무건전성 평가)’에서 불합격했다”고 보도했다.

위기가 전방위로 확산하는 모습을 보이자 유로존의 움직임도 바빠졌다. 유로존은 11일 재무장관 회의에 이어 15일 정상회의를 열기로 했다. 400억 유로 규모의 재정 긴축안을 놓고 우물쭈물하던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이탈리아 총리도 몸이 달았다. 그는 이날 기자들에게 “긴축안이 상원은 14일, 하원은 늦어도 17일까지 통과될 것”이라며 “재정위기 확산이 심상치 않은 만큼 의회도 서둘러주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강력한 재정 긴축을 주장해 온 경쟁자인 줄리오 트레몬티 재무장관 경질까지 검토하며 긴축안 처리를 미뤄왔던 것과는 완전히 달라진 모습이다. 국제 투기세력이 앞다퉈 공매도에 나서며 이탈리아 국채 가격이 곤두박칠치자 손을 든 셈이다. 야당도 태도가 바뀌었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 (Angela Merkel) 총리가 직접 전화를 걸어 베를루스코니 총리를 압박한 것도 분위기 변화에 일조했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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