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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완 기름값 마지노선 L당 2000원, 이틀 만에 깨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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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13일 오후 서울 여의도동에 있는 한 주유소 입구엔 휘발유 값 2295원(L당)이란 가격판이 붙었다. 서울 지역은 기름값 인하조치가 끝난 지 일주일 만에 2000원대로 올라섰다. [조문규 기자]

같은 시각 경기도 용인에 있는 대형마트 셀프주유소에서 휘발유가 L당 1872원에 판매되고 있다. 일반 주유소에 비해 싼값에 판매해 비가 오는 평일 오후임에도 차들이 줄지어 서 있다. [이재희 대학생사진기자(후원:Canon)]

기름값의 심리적 저항선인 L당 2000원(휘발유 기준) 선이 깨졌다. 13일 온라인 기름값 정보 사이트인 ‘오피넷’에 따르면 서울 지역 휘발유 평균값은 L당 2013.89원(12일 기준)을 기록했다. 서울 지역의 경우 휘발유 평균가격이 2000원 선을 넘어선 것은 5월 18일 이후 55일 만이다. 경기 지역에도 L당 2000원이 넘는 주유소가 속속 등장해 수도권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는 추세다.

‘2540원(고급휘발유), 2295원(휘발유)’.

 13일 서울 여의도동에 있는 A주유소 (SK에너지 계열)의 안내판에 찍힌 기름값(L당)이다. 서울에서도 기름값이 비싸기로 유명한 이곳의 휘발유 값은 어느새 2000원이 훌쩍 넘었다. 경유도 L당 2095원으로 2000원이 넘긴 마찬가지다. 비싼 기름값 탓일까. 주유소는 비교적 한산했다. 주유하러 들른 차 중에서도 기름을 가득 채우는 차는 드물었다. 2000원 중반대로 치닫고 있는 기름값에 놀라 차를 돌리는 이도 있었다. 직장인 이창호(42)씨는 “어느 정도 오를 거라곤 예상했지만 이렇게 빨리 L당 2000원이 넘을 줄은 몰랐다”며 “월급은 안 오르는데 기름값이 계속 오르니 대중교통을 타고 다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서울시내 주유소 휘발유 평균값 2000원 선이 깨졌다. 12일 서울 휘발유 평균가가 L당 2013.89원을 기록한 것. 서울 기름값은 기름값 인하 조치 이후인 5월부터 1900원대를 유지해 오다, 인하 조치가 끝난 지 일주일 만에 다시 2000원대로 올라섰다. 특히 서울 여의도와 강남구 삼성동 일대 주유소의 기름값은 평균 2200원 후반대까지 치솟았다.

 서울뿐만이 아니다. 경기도 일대 주유소에서도 기름값이 L당 2000원이 넘는 주유소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분당 정자동의 B주유소(GS칼텍스 계열)의 보통 휘발유 값은 이날 L당 2056원을 기록했다. 서울에서부터 경기도까지 기름값 ‘2000원 도미노’ 현상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정부가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책정하고 있는 가격선이 이미 무너지고 있음을 의미한다.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휘발유 값이) L당 2000원 수준은 되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며 견제성 발언을 한 바 있지만 통하지 않은 셈이다. 한 주유소 관계자는 “공급가격이 30~40원 올라 기름값을 올리지 않을 수 없었지만 한번에 올리면 소비자 체감이 클까 봐 주유소 자체적으로 가격을 조절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가격 인상이 이제부터 시작이라는 점이다. 정유사들은 L당 100원씩 내렸던 기름값을 채 올리지 않은 상태다. GS칼텍스·에쓰오일·현대오일뱅크처럼 주유소 공급가를 내린 정유사들은 인하 조치가 끝난 후 곧바로 가격을 원상 복귀하지 않았다. 특히 GS칼텍스의 경우 가격 인하 조치가 끝나기 전 “한번에 가격을 올리지 않고 단계적으로 천천히 올리겠다”고 발표했다. 현대오일뱅크·에쓰오일도 “시장 상황을 봐가며 가격 인상 방침을 정하겠다”며 GS칼텍스의 조치를 주시하고 있다. 카드 할인 방식을 택한 SK에너지만 7일부터 카드 할인혜택을 종료한 상태다.

 하지만 이번 주 들어 정유사들의 가격 인상 움직임이 본격화하면서 기름값이 요동치고 있다. 일부 정유사가 이번 주에 휘발유 가격을 L당 20~30원가량 올린 것으로 알려지자, 현장 가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주유업계 특성상 전반적으로 가격이 오르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의 한 주유소 관계자는 “어제부터 가격이 올라 L당 2000원을 훌쩍 넘었고, 앞으로 정유사 공급가에 따라 더 올릴지도 모르겠다”고 말했다.

 게다가 국제유가의 움직임도 심상치 않다. 국내 휘발유 제품 가격에 1~2주 시차를 두고 연동하는 싱가포르 현물시장 국제 휘발유의 평균 가격은 7월 첫째 주 들어 급격히 오르고 있는 추세다. 업계 관계자는 “최근 국제유가 강세와 맞물려 정유사들이 앞으로 가격을 단계적으로 계속 올리고, 이 가격이 시장에 반영되면 전국적으로도 휘발유 값이 L당 2000원 선을 곧 넘어가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따라 일각에서는 정부가 원유를 수입할 때 매기는 관세를 내려야 하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관세 인하에 부정적인 입장이다. 관세율(3%)을 0%로 낮춰도 L당 가격은 20원 내려가는 정도라 체감 효과는 미미한 반면, 재정에 미치는 영향은 크다는 이유에서다. 박재완 장관은 최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관세를 낮추면) 1조2000억원의 세수가 줄지만 국민 체감은 그야말로 ‘찔금’이어서 내리고도 욕먹을 것”이라고 말했다.

글=한은화·김기환 기자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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