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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포는 ‘기업인 정인영’을 잊지 않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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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6면

10월 1일 ‘목포시민의 날’에 맞춰 추서하는 명예시민증서. 정 회장이 아무런 연고 없는 목포 인근에 대형 조선소와 제지공장을 세워 지역경제를 살린 것에 대한 보은이다. [목포시 제공]


20일은 고(故) 정인영(1920~2006) 한라그룹 명예회장의 5주기 날이다.

 이를 앞두고 최근 전남 목포시는 목포자연사박물관에 ‘부도옹(不倒翁·오뚝이처럼 쓰러져도 일어나는 사람)’ 정 회장의 흉상을 건립(9월 29일)하고, ‘목포시민의 날(10월 1일)’에 정 회장에게 명예시민증을 추서하기로 최근 결정했다.

 배창룡 목포시 투자기획책임관은 “정 회장이 1994~96년 목포 인근 삼호공단에 한라중공업 삼호조선소(현재 현대삼호중공업)를, 대불공단에 한라펄프제지(현재 보워터코리아)를 세워 지역 경제를 살린 공로를 인정받았다”고 설명했다.

전남 목포시가 9월 목포자연사박물관에 건립할 고(故) 정인영 한라그룹 명예회장의 흉상 조감도.

현재 현대삼호중공업과 보워터코리아는 한라그룹과는 직접적인 연관이 없다. 현대삼호중공업은 2002년부터 현대중공업그룹의 계열사다. 보워터코리아도 98년부터 미국계 보워터가 주인이다. 목포시가 이제는 사실상 연관이 없는 정 회장에게 명예시민증을 추서하고, 그의 흉상을 세우는 데에는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정 회장은 76년 현대건설 사장을 끝으로 형인 고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으로부터 기업 독립을 선언했다. 그리고 자신이 62년에 직접 세운 현대양행을 축으로 독자적인 경영에 나섰다.

 그러나 출발은 순탄치 못했다. 80년 신군부의 조치로 현대양행(한국중공업을 거쳐 현재 두산중공업)을 정부에 넘겨야 했다. 그 뒤 정 회장은 몇 년간 현대양행을 대신할 새로운 사업 구상에 몰두했다. 10여 년간의 장고 끝에 찾아낸 유망 사업이 바로 조선업이었다.

 정 회장은 90년대 초부터 부지 선정을 위해 전국의 해안을 샅샅이 훑었다. 그 결과 전남 목포 인근 영암군 삼호면 용당리가 가장 적합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용당리 앞바다는 수심이 깊었고, 섬으로 둘러싸여 파도가 높지 않아 방파제를 쌓지 않아도 됐다. 무엇보다 목포와 인근 지역에 풍부한 노동력이 있다는 점이 맘에 들었다.

 정 회장은 94년 조선소 건설에 들어갔다. 정 회장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이 지역을 한라그룹의 핵심 거점으로 만들기 위해 인근 대불공단에 한라펄프제지 공장을 지었다. 마침내 96년 삼호조선소에서 첫 배를 진수했다.

 한라그룹은 96년 자산 6조2000억원, 매출 5조3000억원에 계열사 21개로 재계 12위까지 올랐다. 그러나 97년 외환위기의 파고를 넘지 못했다.

삼호조선소에 대한 무리한 투자와 계열사 간 상호출자가 얽히며 그룹은 순식간에 위기에 몰렸다. 결국 한라그룹은 98년 한라펄프제지를 미국계 보워터에 매각했다. 이어 99년 한라중공업은 현대중공업에 위탁 경영을 맡긴 뒤 2002년 완전히 회사를 넘겼다. 그 뒤 2006년 정 회장은 세상을 떠났지만 목포시민들은 여전히 정 회장과 한라그룹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목포와 인근 공단에는 아직도 ‘한라’의 상호가 들어간 식당·미용실·가게 등이 많다. 이름은 현대삼호중공업으로 바뀌었지만 여전히 택시 기사들은 ‘한라중공업’이라 부른다. 한라건설이 2008년 목포시 옥암동에서 분양한 한라비발디 아파트는 당시 글로벌 금융위기 여파로 부동산 경기가 침체였지만 평균 경쟁률 4대 1을 기록했을 정도다.

 주영순 목포상공회의소 회장은 “아무 연고도 없는 이 지역에 공장을 세워 지역 경제를 일으킨 정 회장과 한라그룹에 대한 목포시민의 애정은 여전하다”며 “명예시민증과 흉상 건립은 정 회장에 대한 목포시민들의 마음을 담은 것”이라고 말했다.

강병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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