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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총기난사는 정신장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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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

이해하기 힘든 발전의 불균형이다. 겨울올림픽 유치로 대한민국의 국제적 위상은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됐다. 대외 인지도는 나날이 향상되고 있다. 반면 국내 사회문화의 현주소는 구태의연한 병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해병대 소초에서 발생한 총기난사 사건은 우리 사회에 만연한 폭력문화의 잔재를 그대로 보여준다.

 폭력에 반복적으로 노출되었던 피해자가 어느 날 갑자기 자신을 핍박했던 가해자를 살해하게 되는 경우를 범죄학에서는 ‘피해자 촉진 살인(victim-precipitated murder)’이라 부른다. 오랫동안 폭력피해에 시달리던 아내가 가정폭력의 가해자인 남편을 살해하는 사건이나, 부모의 학대에 견디다 못한 자녀가 부모를 살해하는 사건, 집단폭력에 시달리던 청소년이 자신을 괴롭히던 동료 학생을 살해하는 사건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와 같은 사건들의 핵심은 ‘폭력은 폭력을 부른다’는 진리다.

 경우에 따라서는 평균 수준의 폭력조차 존재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혼자만 피해를 당한 양 착각해 자신을 무시하고 괴롭혔다고 믿는 무고한 주변인을 살해하는 살인범도 있다. 국내외에서 발생한 다수의 ‘연속살인(spree murder)’의 주인공들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에게 공존하는 가장 큰 문제는 정신장애적 요소와 반(反)사회성이다.

 연속살인의 전형적 예는 1982년 발생했던 우 순경 사건이다. 정신장애로 피해망상이 심했던 우 순경은 8시간에 걸쳐 온 마을을 돌아다니며 이웃 57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유사한 사례들은 해외에도 많다. 그중에서도 한국인 교포였던 조승희 사건은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다. 버지니아 공대에서 3시간 동안 총기를 난사해 32명을 살해했다. 그 역시 학교에서 실시한 정신감정 결과 피해망상 등 정신장애 문제를 가지고 있었다.

 물론 정신분열 증세를 지닌 모든 이가 다 위험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내외 사례들을 토대로 보면 피해망상 등 정신증적 증세를 지녔으면서 주변인들과의 관계에서 사소한 폭력 등 지속적으로 말썽을 보인 경우, 그로 인한 위험은 더욱 가중되는 것으로 확인된다. 잠재적인 위험에도 불구하고 주변에서 잘 보살폈다면 이들 역시 적절히 적응했을 것이다. 하지만 적대적이며 강압적인 환경에서 고립되어 지내야 하는 상황일 경우, 이들은 일상의 스트레스조차 견디지 못한다.

 혹자는 미국의 해병대에서 어떻게 가혹행위가 사라지게 되었는지를 소개하면서, 우리의 경우에도 병영문화를 바꾸려면 내부 고발을 통해 가혹행위를 신고하도록 해 이를 인사고과에 반영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이 공식이 성립하려면 일단 구성원들이 상관이나 동료의 부당한 행위를 적극 신고하는 문화가 용인되어야 한다. 그러나 어느 조직이나 지나친 감시와 고발은 구성원 간 신뢰 형성에 문제를 야기하게 된다.

 모병제가 아닌 징병제를 선택한 우리의 군 체제는 엄격한 절차를 통해 구성원이 선발되는 외국 군대와는 많은 점에서 다르다. 인지능력이나 품성에 관계없이 다양한 사람이 뒤섞여 생활하다 보면 서로의 개인차로 인해 발생하는 스트레스를 견뎌야 한다. 그러다 보면 취약한 구성원들은 언제나 있게 마련이다.

 이런 현실에선 서로의 개인차를 인정하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대안이다. 입대 전 검사에서 성격상 문제가 있다고 판정된 소위 ‘관심사병’에 대해서는 심도 있는 개별 관리가 필요하다. 개인별 상황과 정도에 따라 조기 전역도 가능해야 한다. 위험을 알면서도 끌어안고 가는 것이야말로 모두를 위험에 빠뜨리는 가장 어리석은 선택이다. 군 고유의 군기문화를 단번에 변경시키기 힘들다면, 조직문화를 견뎌낼 구성원을 선발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다.

이수정 경기대 교수·범죄심리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