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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선 남북한 사람들 ‘극동의 유대인’이라 불러

중앙선데이

입력

업데이트

“러시아에서는 독립국가연합(CIS) 지역에 사는 고려인이나 남북한 사람 모두를 극동의 유대인이라고 한다. 계산에 빠르다는 의미다.”

한국이나 서방세계는 북한을 ‘서방 기준’으로 판단한다. 북한이 여러 문제 때문에 금세 무너질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사회주의를 겪은 사람의 생각은 다르다. 세르게이 쿠르바노프(47·사진) 상트페테르부르크대학 한국학센터 소장도 그렇다.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대학에서 동양학을 전공한 뒤 1984~85년 2년간 북한에서 살았다. 김일성대학에서 1년 공부하고 순천 비날론 공장에 1년 있었다. 그는 자유롭게 생활했다고 말한다. 그는 2004년 평양을 마지막 방문했고 조만간 다시 방북한다. 그가 말하는 북한의 특성은 좀 낯설다. 한국국제교류재단(이사장 김병국)의 전 세계 한국학 학자 90명 초청의 일환으로 온 그를 7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만났다. 그의 한국어는 아주 유창해 2001년 2월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방한 때 정상회담 통역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2007년 서울에 왔을 때 북한 교육 제도가 소련의 영향을 받아 창의적이며 수업도 자유토론식이라고 했다. 우리가 아는 북한 모습과 다르다. 이데올로기 장벽이 있지 않은가.
“내가 살던 소련 사회주의 시절에도 소련 사람들은 발표하거나 글을 쓸 때 레닌과 마르크스, 엥겔스의 논문을 반드시 참조하고 인용했다. 꼭 그래야 했다. 이데올로기 틀이다. 그러나 그런 것은 이데올로기를 숭배한다는 뜻이지 꼭 따라간다는 것은 아니다. 그 점만 밝히면 그다음엔 자유 토론이다. 북에서도 김일성에 대한 존경을 보여준 다음에는 자유로운 토론이 가능하다. 사상 분야는 어렵고 주로 과학 분야가 그렇다.”

-‘북한이 창의력 교육에 중점을 뒀다’는 당신의 주장도 믿기 어렵다.
“한국 상황을 보라. 한국 전통엔 상하 관계, 스승 존경, 제자 도리 같은 것들이 있다. 표현도 얼마나 중요한가. 예를 들어 한국 사람들은 ‘하십니다’ ‘어떠시겠습니까’ 같이 존대하지만 그렇게 되면 윗사람을 비판하기 어렵다. 그러나 북한에선 그런 ‘시’자가 들어가는 존칭을 김일성·김정일을 향한 경우 외에는 안 한다. 아무리 높은 사람에게도 안 한다. 한국 사람은 다 족보가 있다고 하지만 북한에선 그렇지 않다. 남녀 관계, 사회관계에서 한국보다 위아래를 덜 따진다.”

-북한에서 하는 ‘총화’라는 집단 토론 때문에 그런 영향이 강한 것은 아닌가.
“총화라는 말을 듣기는 했지만 잘 모른다.”

-현장을 보고 하는 얘기인가.
“물론이다. 자유 토론을 많이 봤다. 젊은 사람이 윗사람을 공개 비판하기도 한다. 학문적으로 틀렸다면 과감히 비판한다. 과학 분야에서 특히 그렇다. 그런 자유가 있다. 그렇다고 일상 생활이 엉망이란 것은 아니다. 어른에 대한 도리. 그런 것은 다 있다. 산업 현장도 또 다르다. 노동자는 지시 받으면 군소리 없이 했다.”

-북한 생활이 자유로웠다고 하는데 한국 사람이 북에 가면 그렇지도 않다.
“내가 있을 때 시내는 자유롭게 다닐 수 있었다. 대학생들에게는 그런 자유를 줬다. 그러나 조선말 배우기는 북한 학생들과 같이 하지 않고 따로 했다. 거기서 공부하다 보면 북한 사람들을 만날 기회가 많지 않았다.”

-소련의 브레즈네프 시절을 청년으로 겪은 사람으로서 당시 소련과 지금 북한 형편을 비교하면 어떤가.
“소련 때 신문은 1면에 ‘국민들이 당 노선을 지지하고 늘 100% 계획을 달성했다’고 썼다. 그러나 사람들은 1면은 보지도 않고 믿지도 않았다. 사람들의 관심은 생활이나 먹고사는 문제로 쏠렸다. 뒷면의 스포츠, 사회 기사 같은 것만 봤다. 신문은 물건 싸는 종이로 썼다. 북한을 소련과 똑같이 볼 수는 없지만 언론에 공식적으로 나오는 말과 사람들의 말은 다르다. 소련 영화에서도 주인공들은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지만 현실은 어디 그런가.”

-북한이 에너지가 해결되면 경제 해결이 가능할 것이라고 강조했던데.
“북한의 기초 교육 수준은 꽤 높다. 소련 시절 레닌그라드로 유학 온 북한 유학생들이 많은데, 그중 내가 알던 어떤 학생은 ‘레닌그라드에 와서 공부를 안 했다’고 했다. 그 학생은 북한의 고등학교 3학년을 마치고 유학 왔는데 소련 대학의 1·2학년들이 배우는 것을 북한에선 고등학교 때 다 배웠다고 했다. 소련 대학교 1학년 수학과 북한의 고등학교 수학의 내용이 같았다. 북한의 수준이 높았던 것이다.”

-북한이 잘 살려면 체제 문제가 먼저 해결되는 정치적 변화가 더 먼저 아닌가.
“중국을 보라. 공산당이 정권을 잡고 있다. 우리 학교로 중국에서 유학을 많이 온다. 학생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중국이 여전히 사회주의라고 한다. 내가 보기에 북한은 독특한 발전 방향을 갖고 있다. 중국은 나라 전체를 시장경제로 만들어 놨지만 북한은 특구라는 섬을 통해 시장경제를 심고 있다. 특구가 많아질수록 이데올로기는 보호가 되고 시장경제 요소들이 점차 늘어나면서 경제가 돌아가고. 이익도 생기고. 나라도 좋아질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북한이 시장 경험이 있다고 주장하는데….
“북한에도 장날이 많다. 길가에 나와서 자유롭게 물건을 판다. 평양이 아니라 지방의 북한 도시들이다. 장날에 중앙로에 나와서 자유롭게 물건을 팔고 사고 한다. 내가 살 때 평양 인근 평성시에서 그런 것을 많이 봤다. 그러니 문만 열리면 북한 사람은 금세 적응할 것이다. 러시아는 고려인이나 남북한 사람 모두를 ‘극동의 유대인’이라고 한다.”

-북한이 시장경제에 쉽게 적응할 것이란 얘기인가.
“시장에 빨리 익숙할 수 있지만, 사고방식 때문에 시장경제에 맞는 사회 구조에 익숙하긴 힘들 것이다. 그들의 기본적인 생활 조건은 나라가 보장해왔지만 자본주의에선 본인이 노력하고 책임 있게 살아야 한다. 그러나 북한 주민은 윗사람들이 중요한 결정을 한다는 생각에 익숙해서 시장경제에서 자신 있게 살기엔 어려울 것이다. 윗사람의 지시에만 익숙해 있기 때문에 경제 분야에서는 괜찮게 해나간다고 해도 사회 분야에서는 어려울 것이란 의미다.”

-소련 붕괴와 비교하면 북한은 지금 어디쯤 와 있다고 보나.
“사회주의가 비능률적이라고 볼 수만은 없다. 한국에도 북유럽에도 사회주의 속성은 있다. 문제는 계획경제다. 그게 틀렸다. 시장경제가 필요하다. 소련이 무너진 이유를 꼽으면 많다. 우선, 현대화를 못 했다. 현대 사회에서 중요한 도로·통신 같은 인프라를 소련은 잘 못했다. 그러나 북한은 소련과 비교할 수 없다.”

-급격한 변화는 쉽지 않겠다.
“급격한 변화보다 중국식 평화적 변화는 가능할 것이다. 완전히 중국식은 아니지만 시장경제 섬을 조금씩 늘려가면서 주민들의 사상은 유지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에는 유리하지 않은 방향이다. 북한은 2000년부터 남한의 경제원조·협력을 원하고 이를 통한 개선을 기대했다. 이젠 이를 포기하고 방향을 완전히 돌렸다. 중국 손을 잡고 모든 상황을 개선하려 한다.”

그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한국학센터에 대한 지원을 호소했다. 자원봉사자 6~8명이 꾸리고 배우려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다. 중국과 일본 센터가 인기가 높고 특히 중국은 공자학원도 세우고, 지원도 많이 해준다고 했다. 그럼에도 러시아에서 일본인의 이미지와 달리 중국인은 좋은 뜻이 아니고 한국인도 그런 범주에 들어가 있으니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도 한국학센터 지원이 절실하다고 했다.


안성규 기자

정리=김기태 인턴기자 rich184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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