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 스페셜 - 목요문화산책] 공기 요정 아리엘이 일으킨 태풍 정체는

중앙일보

입력 2011.06.30 01:36

업데이트 2011.06.30 0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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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원자바오

최근 영국을 방문한 중국의 원자바오 총리가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1564~1616)의 열혈 팬임을 밝혀 화제다. 그는 26일 셰익스피어 생가를 방문하고 그가 특히 좋아한다는 ‘햄릿’을 관람했다. <『햄릿』에 대해서는 J스페셜 4월 21일자 참고> 문화적 자존심이 강한 중국에서도 이처럼 셰익스피어에 대한 관심은 지대하다. 8월에 열리는 에든버러 페스티벌에서는 상하이 경극단이 중국판 ‘햄릿’을 선보일 예정이다. 여기에 오태석 연출의 한국판 ‘템페스트(태풍)’도 초청돼 동아시아 버전 셰익스피어 극들의 향연이 펼쳐질 것이다. 오태석 극작가는 『템페스트』(The Tempest·1611)의 “복수와 용서와 유쾌함”이 마음에 들어 우리 식대로 만들어보고 싶었다는데 원작은 어떤 이야기일까.

셰익스피어 말기 낭만극의 대표작인 『템페스트』는 제목에 걸맞게 태풍을 맞은 배의 갑판 장면으로 시작한다. 태풍이 출몰하는 이 계절에 더욱 긴박하게 읽히는 부분이다. 배에 탄 나폴리 왕이 갑판에 나타나자 정신 없이 오가던 갑판장이 방해가 되니 선실에나 계시라고 말한다. 왕의 충신 곤잘로가 나무라자 갑판장은 “높으신 양반이시니 풍랑에 명령해 잠잠해지라고 해보시죠”라고 빈정거리며 가버린다. 곤잘로는 “그래도 저 친구를 보니 마음이 놓이는군. 결코 물에 빠져 죽을 얼굴이 아니야, 교수대에 달릴 면상이지”라고 투덜거린다. 이 첫 장면에서부터 셰익스피어의 현실 감각과 위트는 빛을 발한다.

그림 ① 아리엘(1800~1810), 헨리 퓨슬리(1741~1825) 작, 캔버스에 유채, 폴저셰익스피어 도서관, 워싱턴 DC



 이 태풍은 사실 근처 외딴 섬의 마법사 프로스페로가 일으킨 것이었다. 프로스페로는 12년 동안 마법을 연마하며 이날을 기다려왔다. 그는 본래 밀라노의 영주였으나 그의 동생 안토니오가 나폴리 왕의 세력을 업고 반역을 일으키는 바람에 어린 딸 미란다와 함께 강제로 작은 배에 실려 바다로 떠내려가다 이 섬에 이르렀다. 12년이 흘러 마침내 안토니오와 나폴리 왕이 탄 배가 이 섬 근처를 지나는 날이 온 것이다.

그림 ③ 신들과 님프들을 소환하는 프로스페로(1903), 허버트 제임스 드레이퍼(1863~1920) 작, 드레이퍼스 홀을 위한 천장화, 런던

 그러나 프로스페로는 배를 가라앉혀 거기 탄 사람들을 몰살시키는 단순무식한 복수를 계획한 것이 아니었다. 그는 배가 기울면서 물에 빠진 사람들이 몇 무리로 나뉘어 모두 무사히 이 섬에 닿도록 하고 배는 별도의 장소에 숨겨놓는다. 이 모든 일은 그가 부리는 공기의 요정 아리엘(에어리얼·Ariel)이 해낸다. 그는 예전에 이 섬을 다스리던 마녀에 의해 나무줄기에 갇혀 있다가 프로스페로에게 구출돼 일정 기간 동안 그의 하인이 되기로 한 것이다.

 스위스 출신 영국 화가 헨리 퓨슬리(퓨젤리)의 작품(그림①)에서 볼 수 있듯이 아리엘은 박쥐를 가볍게 밟고 날아다닐 정도로 날쌔고 경쾌한 요정이다. 퓨슬리는 으스스한 ‘악몽’ 연작으로 유명한 낭만주의 화가인데, 셰익스피어 작품도 특유의 신비롭고 그로테스크한 분위기를 담아 여러 점을 그렸다.

 복수와 복권(復權)을 위한 프로스페로의 계획은 교묘하게 진행된다. 그는 나폴리 왕자 페르디난드가 무리에서 떨어져 홀로 섬에 닿게 하는데, 나폴리 왕이 외아들이 죽은 줄 알고 고통에 빠지게 하는 동시에, 왕자가 자신의 딸 미란다와 만나게 하려는 의도였다. 미란다는 자신의 과거와 세상의 어지러움을 알지 못한 채 자란 순수한 아가씨다-영국 빅토리아 시대의 화가 프랭크 딕시의 작품(그림②)에서 그녀의 커다란 눈동자와 하얀 옷이 암시하듯이. 프로스페로의 의도대로 젊고 아름다운 두 사람은 보자마자 사랑에 빠진다.

 한편 아리엘은 프로스페로의 명령을 받고 안토니오와 나폴리 왕 일행에게 가서 그들을 괴롭힌다. 이를테면 음식이 잔뜩 차려진 잔칫상을 보여주고 허기진 그들이 달려들면 괴물의 모습으로 나타나 음식을 빼앗는 식으로 말이다. 그러고는 이 모든 불행이 예전에 프로스페로에게 저지른 죄의 대가라고 말해주며 “즉시 죽는 것보다도 더 가혹한 질질 끄는 파멸이 한 걸음 한 걸음 너희를 따라오리라”고 위협한다. 지친 육체에 정신적인 시달림이 더해지며 사람들은 반쯤 실성하게 된다.

그림 ② 미란다(1878), 프랭크 딕시(1853~1928) 작, 캔버스에 유채, 개인 소장

 마지막에 프로스페로는 직접 나타나 그들의 정신을 회복시킨다. 그는 진심으로 참회하는 나폴리 왕을 용서하고 왕자가 미란다와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안토니오는 끝내 제대로 반성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다만 그는 나폴리 왕과 섬을 헤맬 당시 나폴리 왕의 동생을 부추겨 자신처럼 형을 배신하고 반역을 하라고 꾀다가 그 장면을 프로스페로에게 들켰기 때문에 그 약점에 잡혀 굴복할 뿐이다. 프로스페로도 그를 여전히 증오하지만 살려 둔다. 이것이 현실 세계에서의 화해와 타협이다. 요정과 괴물이 등장하고 해피엔딩으로 끝나는 이 희극은 한 편의 동화 같지만 어디까지나 어른을 위한 동화인 것이다.

 그래서 미란다가 나폴리 왕과 안토니오 일행을 보고 순진무구하게 “인간은 참 아름다운 것이구나! 이런 사람들이 있다니, 아, 멋진 새로운 세계야!”라고 외쳤을 때 프로스페로는 서글픈 미소를 짓는다. 이후에 미란다의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라는 말은 반어적인 뜻으로 영국의 작가 올더스 헉슬리(1894~1963)의 소설 제목으로 쓰이기도 했다. 인간이 인공수정으로 대량 생산돼 유전자의 우열로 인생이 결정되는 디스토피아적인 미래를 그린 소설 말이다. 미란다는 나폴리의 왕자빈이 되지만, 나폴리에 가서 그 새로운 세계와 인간이 아름답지만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이외에도 『템페스트』에는 셰익스피어 말년의 인간세계와 삶에 대한 쓸쓸한 관조가 곳곳에 스며 있다. 이를테면 프로스페로가 극중에서 미란다와 페르디난드를 기쁘게 해주기 위해 정령(精靈)들이 그리스 여신과 님프로 출연하는 환상적이고 스펙터클한 연극을 보여주는 장면이 있다(그림③). 페르디난드는 감탄하지만 정령 배우들은 어느 순간 갑자기 사라져 버리고 프로스페로는 말한다. “이 흔적도 없이 사라진 환영의 축제극처럼, 우리도 꿈과 같은 존재로, 우리의 짧은 인생은 잠으로 돌아가게 되지.” 현실의 반영이나 또한 한낱 환상이기도 한 연극에 한평생을 걸어왔고 그것이 삶 자체였던 셰익스피어에게 어울리는 대사가 아닐 수 없다.

우주 괴물 영화 ‘금단의 행성’선 요정이 …

『템페스트』의 영화들

『템페스트』는 셰익스피어(그림)의 다른 유명한 작품들처럼 여러 차례 영화화됐다. 이 중 가장 파격적으로 변형된 작품이 1956년 SF영화 ‘금단의 행성(Forbidden Planet)’이다. 23세기에 한 무리의 과학자가 탄 우주선이 지구에서 16광년 떨어진 알타이르-4 행성에 도착하는데, 이 외딴 행성에는 프로스페로에 해당하는 모비우스 박사가 미란다에 해당하는 딸 알타이라와 아리엘에 해당하는 만능 로봇 로비와 함께 살고 있다. 영화 속 프로이트적인 발상이 흥미롭다. 가장 최근의 작품으로는 브로드웨이 뮤지컬 ‘라이온 킹’과 영화 ‘프리다’로 유명한 여성 감독 줄리 테이머의 2010년 영화 ‘템페스트’가 있다.

문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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