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벤츠타는 김정일 여자 순장조 알고보니…

중앙일보

입력

북한 조선중앙TV에선 북핵문제, 남북갈등, 북미협상 등 중요한 현안이 있을 때마다 중년 여성 앵커가 등장한다. 리춘히이다. 올해 나이 68세다. 하지만 그의 목소리는 고희(古稀·70)를 앞둔 할머니의 느긋함보다는 총을 쏘는 듯한 날카로움과 공격성을 보인다.

리씨는 조선중앙TV의 간판 뉴스인 8시 뉴스의 메인앵커다. '인민방송원' '노력영웅'이란 칭호를 받았다. 그를 모델로 한 방송용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도 했다. 3년 전에는 북한의 대민선전용 화보집 '조선'에 TV에서와는 딴판으로 후배 방송인들과 활짝 웃고, 어린 손녀와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온화한 할머니의 모습으로 등장하기도 했다.

당시 화보집에 따르면 그는 북한에서 극진한 대우를 받는다. 평양의 경치좋은 곳에 집이 있으며(정확한 위치는 공개되지 않았다), 남편과 두 아들 그리고 며느리, 손녀와 대가족으로 가정을 꾸리고 있다. 집은 상당히 호화로운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당국은 리씨에게 고급 승용차도 선물했다고 월간 화보집이 전했다.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고위간부에게 벤츠를 선물한다. 벤츠를 밀수입하려다 외국 세관에 걸려 좌절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다. 리씨가 받은 고급승용차도 벤츠인 것으로 추정된다. 여기에다 그의 옷차림은 북한에서 제조된 것으로 보기에는 상당히 고급스럽다. 때로는 한복을 입지만 북한에선 접하기 힘든 파스텔톤의 양장으로 차려입기도 한다. 이 옷들도 수입한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정일은 젊은 시절 자신이 짝사랑했던 윤혜영을 위해 외국공관에 지시해 그녀의 무대의상을 비롯 모든 의상을 직접 골라주기도 했다. 김일성 때부터 김정일까지 이어지는 방송'영웅'에게 그가 어떤 대접을 하는지는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그녀의 머리도 여느 할머니들과는 딴판이다. 흔히 하는 퍼머가 아니라 패션이 가미된 여러 형태의 퍼머를 하는 등 칠순을 바라보는 노인답지 않은 패션감각을 뽐낸다.


김일성에 이어 김정일로부터 신망을 받는 리씨는 말그대로 '대를 이은 충성'을 실천한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고 정치적 줄서기를 하는 위치에 있지도 않다. 따라서 북한 정세에 따른 외풍 때문에 숙청 대상에 오를 인물도 아니다. 한마디로 그는 김정일 일가의 순장조인 셈이다.

리씨는 1943년 강원도 통천에서 노동자의 딸로 태어났다. 조군실고급학교와 평양연극영화대 배우과를 졸업했다. 국립연극단에서 배우생활을 하다 71년 2월 조선중앙TV 앵커로 발탁돼 40년째 앵커생활을 한다.

리씨는 북한 내 잡지와 가진 인터뷰에서 "마이크를 잡은 첫 해 5월 '일을 잘하라'고 격려해준 김일성 주석의 말을 심장깊이 간직하고 화술형상(표현)을 익히기 위해 피타는(피나는)노력을 바쳤다"고 말했다. 이 잡지는 "성명, 담화를 발표할 때면 적들의 간담이 서늘해지게 맵짜게(옹골차게) 답새겨되는(공격하는) 만능의 화술적 재능을 소유한 뛰어난 방송원으로 성장했다"고 주장했다.

유혜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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