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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 위 ‘멀티 오피스’를 경험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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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향해 비행기가 날아올랐다. 곡예비행을 하듯 양 날개를 좌우로 크게 흔들었다. 탑승자의 박수소리가 터져 나왔다. 캐세이패시픽 777-300ER의 첫 비행이다. 항공기는 시애틀 상공을 지나 홍콩으로 향했다.

캐세이패시픽 고객 의견 반영해 비즈니스석 넓고 편하게 업그레이드

이에 앞서 캐세이패시픽 777-300ER 인도식이 열렸다. 5월 28일 미국 시애틀에 자리 잡은 항공기 제조회사 보잉에서 열린 행사에는 홍콩 캐세이패시픽의 대외업무(Corporate Affairs) 최고책임자인 퀸시 총(Quince Chong)을 비롯해 한국·홍콩·미국 등의 기자와 업계 VIP 등 100여 명이 참석했다.

인도식은 오전 10시30분 퀸시 총이 테이프를 커팅하면서 시작했다. 기념촬영이 끝난 후 곧바로 비행기 탑승 수속을 밟았다. 흥미롭게도 모든 수속이 보잉 내 항공기 인도센터에서 한번에 이뤄졌다. 보잉 바로 옆에 민간공항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보잉의 모든 비행기는 이 공항을 이용해 세계 곳곳의 항공사에 전달된다. 여권과 가방을 검사한 후 인도센터 밖에 있는 비행기에 올랐다.

좌석 수 줄이고 공간 넓혀
이번에 인도된 캐세이패시픽의 기종이 달라진 건 아니다. 777-300ER에는 새로 설계된 비즈니스석이 장착됐다. 특히 그동안 비즈니스석을 이용한 고객들의 의견을 반영해 디자인부터 기능까지 확 바꿨다.

좌석번호는 24K. 일등석을 지나 비즈니스 좌석으로 왔다. 한눈에 보기에도 공간이 넓어졌다. 시애틀로 오기 전 홍콩에서 캐나다 밴쿠버로 오면서 캐세이패시픽 항공을 이용했다. 그때 탄 777-300ER은 비즈니스석이 기존 그대로였다. 그런데 우선 좌석 방향이 달라졌다. 기존 좌석은 누우면 발이 45도 각도로 통로 쪽을 향했다. 상당히 독립적인 공간이라는 게 특징이다. 눕는 것은 물론 앉아 있어도 바로 옆 사람 얼굴이 보이지 않았다. 칸막이가 높은 데다 좌석이 엇갈려 있어 시선 맞추기가 어렵다. 옆 사람과 대화할 때마다 엉덩이를 들썩여야 했다.

새롭게 선보인 비즈니스석은 답답하다는 느낌이 사라졌다. 자리 배치도 반대다. 이번에는 얼굴이 통로 쪽이다. 중앙 쪽 두 좌석은 나란히 배치돼 있다. 옆 사람과 얘기하려면 의자를 조금만 앞으로 당기면 된다. 무엇보다 좌석 공간이 넓어졌다. 앉았을 때 좌석 폭이 21인치로 기존 18.5인치보다 2.5인치 늘었다. 좌석을 180도 눕혔을 때는 세로 길이가 82인치로 기존보다 1인치 길다. 폭은 훨씬 늘었다. 기존이 23.5인치였다면 새로 바뀐 좌석은 최대 29.5인치까지 사용할 수 있다. 비밀은 팔걸이에 있다. 이 부분을 누르면 팔걸이가 아래로 내려간다. 호리호리한 여자 둘도 앉을 수 있다.

기자는 창가 쪽을 향한 좌석이었다. 창문 너머로 파란 하늘 바라보며 와인을 마실 때는 근사한 와인바가 부럽지 않았다. 새로 바뀐 부분 중에서도 수납 공간이 많다는 점이 편리했다. 팔걸이 반대편에 조그마한 테이블이 있다. 고정돼 있어 책이나 노트북을 올려놓고 다른 일을 할 수 있다. 기존 모델은 일을 하다가 화장실이라도 가려면 테이블 위를 치우고 다시 집어넣어야 했다.

테이블 옆에는 전자기기를 충전할 수 있는 콘센트가 있다. 애플 전자기기만을 위한 연결장치도 있다. 아이폰이나 아이패드를 연결하면 본인이 갖고 있는 콘텐트를 스크린을 통해 볼 수 있다. 테이블 위에는 개인 사물함도 있다. 여기에 여권, 지갑, 휴대전화 등 개인 소지품을 보관할 수 있다. 팔걸이 아래에는 신발을 보관할 수 있는 신발장도 있다.

고객 만족 높인 ‘미니 퍼스트 클래스’
한참 좌석 곳곳을 살펴보고 있을 때 퀸시 총이 “새로 바뀐 좌석이 어떠냐”며 얘기를 건넸다. 그는 1997년 커뮤니케이션 매니저를 시작으로 제너럴 매니저 등을 거쳐 2008년 기업홍보를 비롯한 대외업무를 담당하는 최고책임자가 됐다. 현재 회사 내 유일한 여자 임원이다.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업계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는 게 행사에 참석한 캐세이패시픽 직원들의 얘기다.

퀸시 총은 좌석에 앉아 새로 바뀐 기능을 상세하게 설명했다. 좌석을 180도로 펼치더니 옆으로 눕는다. “고객들이 옆으로 누우면 무릎이 칸막이에 닿아서 불편하다는 의견을 적극 반영해 바꿨어요. 이제는 어떤 자세로 누워도 푹 잘 수 있답니다.”

좌석 수를 줄여 공간을 넓힌 덕분이다. 새 비즈니스석은 기존보다 4석 줄인 53석이다. “이 좌석은 ‘미니 퍼스트 클래스’라고 할 수 있어요. 좌석 가격은 기존과 동일하지만 퍼스트 클래스의 장점인 프라이버시와 편리함을 동시에 갖추고 있어요.”

그는 비즈니스석뿐 아니라 기종 자체도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연료 소모가 적기 때문이다. 보잉 모델 중에서도 장거리를 비행하는 747-400과 비교해도 10% 이상 기름값이 적게 든다. 에어버스의 A340-600과 비교하면 27%나 절약된다고 자랑했다. 연료비용이 항공기 전체 운영비의 35%가량을 차지한다. 연료비가 적게 들수록 회사에 이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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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잉 공장 내부 모습.

퀸시 총은 앞으로 새 비즈니스석이 장착된 비행기를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2013년까지 30기에 달하는 777-300ER과 A330 -300 20기 등 장거리 노선 비행기에 새로운 비즈니스석을 선보일 계획이다.

그가 자리로 돌아간 후 와이드 스크린으로 최근에 개봉한 영화들을 봤다. 기기 작동에 필요한 설명은 한글이 지원된다. 영화 중에는 한국어로 녹음한 작품도 많았다. 편하게 누워서 영화를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었다. 눈을 떴을 때는 홍콩에 들어서고 있었다.

■ 보잉 공장에 가다
“3일이면 비행기 한 대 만들어”

항공기 인도식 하루 전날인 5월 27일 보잉 공장을 찾았다. 시애틀에서 자동차로 40분가량 떨어진 에버렛(Everett)시에 있다. 보잉은 유럽연합의 에어버스와 함께 세계에서 손꼽는 항공기 제조회사다. 메인 조립공장 안으로 들어서면 규모에 놀란다. 건물이 농구장 900개를 합쳐 놓은 것보다 크다. 이곳에서 수십 대의 비행기가 조립되고 있었다. 천장에는 크레인이 움직이며 비행기 부품을 운반한다. 마치 로봇영화 트랜스포머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안내를 맡은 에일린 딕손(Eileen Dickson)은 이 공장이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로 기네스북에 기록돼 있다고 들려줬다. 그가 나눠준 투명 고글을 끼고 이동식 카트에 올랐다. 바닥을 보니 차가 다니는 길과 자전거가 다니는 길로 나눠져 있었다. 건물이 워낙 크다 보니 직원들은 공장 내 전용 자전거를 타고 공정 사이를 이동한다.

처음 들른 곳은 747기종이 만들어지는 곳이다. 공장 안은 제품이 나온 순서대로 747, 767, 777, 787 등의 공정이 쭉 이어진다. 747 공정에선 ‘747-8 인터콘티넨털’ 화물기가 제작되고 있었다. 거의 완성된 형체를 갖춘 화물기 위에서 엔지니어들이 마무리 작업에 한창이었다.

767 생산공정을 거쳐 777시리즈가 생산되는 곳으로 이동했다. 이곳에서 28일 캐세이패시픽에 인도할 777-300ER이 만들어졌다. 이 모델은 엔진이 2개뿐인 쌍발 제트 여객기로 세계에서 가장 크다. 에어버스 A340 시리즈와 비교하면 에너지 효율 면에서 훨씬 앞선다. A340이 4발 엔진을 쓰기 때문에 연료가 많이 든다. 딕손은 연비와 유지비가 적게 든다는 장점 때문에 이 모델이 노후화된 보잉 747을 대체하고 있다고 얘기했다.

777 공정 바로 옆에서는 드림라이너로 불리는 787기가 조립되고 있었다. 동체 절반 이상이 탄소복합섬유로 이뤄져 있었다. 그만큼 가볍기 때문에 빠르다. 평균 속도는 마하 0.85.

엘리베이터를 타고 한 층 올라가면 조립하는 비행기들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다. 딕손은 3일이면 비행기 한 대를 조립할 수 있다고 들려줬다. 종업원들은 24시간 3교대로 일한다. 공장 안에는 연구실을 비롯해 커피숍, 휴게실, 헬스장, 수영장 등 직원에게 필요한 생활시설을 갖춰놨다. 비행기 만드는 보잉 도시다.

염지현 포브스코리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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