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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漢字, 세상을 말하다] 錦衣還鄕 금의환향

중앙일보

입력

은행은 돈을 어떻게 벌어야 할까. 서울에서 근무하는 한 중국 금융인은 성어 두 개로 답한다. 설중송탄(雪中送炭)은 안 되며 금상첨화(錦上添花)여야 한다고. 눈 속에 있는 사람에게 탄(炭)을 보내듯 곤경에 처한 이에게 돈을 빌려주는 건 곤란하단다. 떼일 염려 때문이다. 대신 비단에 꽃을 보태 더 아름답게 하듯이 우량 기업에 자금을 빌려줘 원금 안전도 지키고 이자도 챙기는 게 상책이란 이야기다. 농반진반(弄半眞半) 말 속에 팍팍한 삶의 논리가 담겼다.
금상첨화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하나로 꼽히는 왕안석(王安石)의 칠언율시(七言律詩)인 즉시(卽詩·즉흥시)에 나오는 글귀다. ‘…좋은 모임에 잔 속의 술을 비우려는데(嘉招欲覆盃中<6DE5>) 고운 노래는 비단 위에 꽃을 더하는구나(麗唱仍添錦上花)…’. 여기에서 금상첨화가 나왔다.
비단(錦)을 이용한 또 하나의 성어로 금의환향(錦衣還鄕)이 있다. 항우(項羽)가 주인공이다. 홍문연(鴻門宴)을 열고도 유방(劉邦)을 제거할 기회를 놓친 항우는 얼마 후 진(秦)나라 수도 함양(咸陽)을 차지한다. 궁전을 불사르고 진왕을 죽이니, 아방궁(阿房宮)의 불길이 석 달이나 지속됐다고 한다.
이때 한생(韓生)이라는 자가 항우에게 간언을 한다. 관중(關中·진나라 땅)에 도읍을 정하면 천하를 휘어잡을 수 있다고. 그러나 항우의 대답은 차갑다. “부귀를 얻고서도 고향에 돌아가지 않으면 비단옷을 입고 밤길을 가는 것과 같지 않은가. 누가 그것을 알아줄 것인가(富貴不歸故鄕如衣錦夜行 誰知之者).” 하루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자신의 성공을 과시하고 싶은 욕망이 뿜어져 나온다. 금의환향의 배경이다.
금의환향은 모든 중국인의 로망이다. 입신양명(立身揚名)해 귀향하는 건 인생의 큰 기쁨 중 하나다. 100여 년 전 미국으로 떠났던 중국 광둥성 뤄(駱)씨 집안의 이민 3세 게리 로크(중국명 駱家輝)가 주중 미국대사로 지명되자 금의환향이란 말이 나온다. 미국 이민 1.5 세대인 성 김(한국명 김성용)이 주한 미국대사로 내정된 것 또한 금의환향일 터다. 부디 ‘본래 한 뿌리에서 태어났거늘 서로 들볶는 게 어찌 그리 심한가(本是同根生 上煎何太急)’라고 노래한 조식(曹植)의 칠보시(七步詩)가 떠오르지 않도록 한·미 관계 발전에 힘써 주기를 바랄 뿐이다.

유상철 중국연구소 소장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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