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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풍 독점권, 길게 보면 미술에 독 ...달리워홀도 보호 못 받아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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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1호 0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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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적인 작가 앤디 워홀이 1987년 사망한 이후 그의 독특한 화풍(style)을 흉내내어 만든 작품들이 시중에 쏟아져 나왔다. 이 작품들은 워홀의 작품과 같지는 않지만 누가 보아도 워홀의 작품으로 착각할 만큼 비슷했다. 워홀처럼 유명한 작가들은 대체로 자기만의 독특한 화풍을 가지고 있다. 물방울이나 소나무만 표현하는 것처럼 자기만의 독특한 소재를 고집하는 작가들도 있고, 불에 굽거나 유리를 이용하는 등 특유의 제작 방법을 고수하는 작가들도 있다. 이렇게 작가들이 어떤 특징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세상에서 인정받기 위해서는 뛰어난 창의성과 더불어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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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디 저작권법은 구체적인 표현을 보호하는 것이지 아이디어나 개념을 보호하지 않는다. 따라서 누군가가 작가의 그림을 그대로 베끼지 않는 이상 저작권법으로 문제를 삼을 수는 없다.
이렇게 저작권법이 통하지 않을 때는 상표법을 적용할 수도 있다. 만약 작가의 화풍을 상표법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다면 작가에게는 더욱 유리할 수도 있다. 저작권법은 보통 작가가 생존해 있는 동안과 사망 이후 50년 동안까지 그 권리를 보호해 주지만, 상표법은 계속 갱신을 허용해 권리를 가진 자가 영원히 그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하기 때문이다.

작가의 화풍은 작품의 제목이 아니지만 상표법상 상장(trade dress)으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상장이란 개념은 아직 우리나라에는 생소하다. 어떤 물건의 포장, 색채, 소리, 향기 등의 독특한 특징으로 그 물건을 다른 물건과 구별하게 만드는 것을 말한다. 더욱이 미국에서는 상장을 등록하지 않아도 먼저 사용하는 사람이 권리를 가진다. 그러므로 어떤 작가의 독특한 화풍이 오랫동안 계속돼 일반 애호가들이 그 화풍을 작가의 특징으로 인식하게 된다면 그 화풍은 상장이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실제로 작가의 특징은 상장으로 보호받을 수 있을까? 지금까지 이 문제를 놓고 많은 소송이 있어왔다. 그런데 판례들을 보면 법원의 입장이나 상황에 따라 엇갈린 결과를 가져왔다.
보통 살바도르 달리나 피카소와 같은 대가들의 작품을 보면 그런 작품들을 구상하고 표현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했는지를 잊기 쉽다. 하지만 그들은 독특한 미적 재능으로 자기만의 새로운 세계를 개척했다. 그들의 작품을 다른 사람들의 작품과 구별짓는 바로 그 화풍이야말로 그 작가들이 수많은 실패와 좌절을 딛고 모처럼 얻어낸 성공인 것이다. 또 일반인들은 그러한 특징을 통해 작품이 바로 그 대가들의 작품이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다. 따라서 그들의 독특한 화풍은 법적인 보호를 통해 지켜져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서양에서조차 작가의 특징이 다른 작가들의 특징과 뚜렷이 구별되지 않는다면 작가의 화풍을 상장으로 인정하는 데 지극히 인색하다. 그러고 보면 만약 화풍을 상장으로 인정한다면 프랑스의 화가 조르주 브라크(Georges Braque)가 입체파의 창시자이므로 그는 피카소가 작품들을 판매하지 못하도록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또 캔버스에 물감을 뿌리는 잭슨 폴락의 독특한 표현 기법은 영원히 그의 전유물이 되어버릴 것이다. 이렇게 되어버리면 후세 사람들에게는 할 만한 화풍이나 표현 기법이 남아있지 않을 것이다.

미술 사조에서 말하는 인상파이든 입체파이든 결국은 하나의 유행을 말하는 것이고, 그러한 유행은 본래 여럿이 따라 한다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이러한 화풍을 한 사람의 독점물로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지 모른다. 더욱이 저작권 보호의 경우와는 달리 상장에 의한 법적 보호는 영원히 계속되기 때문에 작가의 화풍은 좀처럼 상장으로 인정받기가 쉽지 않다.

미술사를 보면 위대한 작가들조차 과거의 작품을 보고 참고하면서 작품활동을 했고 그러면서 미술이 전반적으로 발전해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므로 화풍을 저작권이나 상장으로 인정해 작가에게 독점적 지위를 주는 것이 당장은 미술계에 좋을지도 모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전반적으로 미술계에 침체를 가져올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우려 때문에 미국의 뉴욕법원은 1988년 판결을 통해 심지어 살바도르 달리의 화풍조차 상장이 될 수 없다고 판결하기도 했다. 이쯤 되면 앤디 워홀의 화풍을 둘러싼 법적 공방의 결과도 쉽게 예견할 수 있을 것이다. 실제로 판결을 보면 고인의 유가족들에게는 안된 일이었지만 위대한 워홀조차도 자기의 화풍을 법적으로 보호받지는 못했다.


김형진씨는 미국 변호사로 법무법인 정세에서 문화산업 분야를 맡고 있다.『미술법』『화엄경영전략』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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