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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 오는 길, 걷기 데이트 어떠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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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산 둘레길 곳곳에 설치된 안내표지판.

북한산 둘레길이 여성적이라면 도봉산 둘레길은 남성적이다. 바윗길도 있고, 턱밑까지 숨이 차오를 만큼 험한 길도 있다. 반면 북한산 둘레길은 연인이 손잡고 걸어도 좋은 평탄한 길이 대부분이다. 도봉산 둘레길 26㎞ 구간을 이틀에 걸쳐 걸었다. 도봉산 둘레길은 도봉·원도봉·송추 등 3개 지구로 구분돼 있었고, 3개 지구는 다시 왕실묘역길·다락원길 등 8개 구간이 있었다.

글=이석희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1 역사의 현장을 만나는 길 - 도봉지구(왕실묘역길∼방학동길∼도봉옛길 7.9㎞)

도봉산 둘레길 1구간은 왕실묘역길이다. 왕실묘역길에서는 이름에서 눈치챌 수 있듯이 옛 역사를 곁눈질하며 걸을 수 있다. 처음엔 도심 길을 통과한다. 도심 길은 ‘우이령 입구∼공영주차장∼방학로’로 이어진다. 이 길을 5분쯤 걸으면 야트막한 산 위로 데크로드가 보인다. 방학동 주민이 이용하는 산책로다. 가뿐한 발걸음으로 200m쯤 오르면 쉼터 예정지가 나온다. 멀리 삼각산과 우이암이 눈에 들어온다.

 길은 연산군묘가 있는 방학로 17길로 이어진다. 동네 골목길이어서 걷는 재미는 없지만 볼거리가 여럿 있다. 연산군묘와 재실이 있고, 600년 전 파평 윤씨 가문이 만든 원당샘과 서울에서 가장 오래된 800살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다. 방학로 건너편에 세종대왕의 둘째딸인 정의공주묘도 있다.

 정의공주묘 오른쪽에 방학동길이 있다. 실질적인 도봉산 둘레길의 시작점이다. 흙길인데다 낙엽이 깔려 있어 발바닥에 와닿는 푹신한 느낌이 좋다. 봄에는 진달래나 철쭉 군락을 볼 수 있다고 한다. 바가지 약수터에서 무수골까지 1㎞ 정도는 가파른 편이지만 도봉산 주봉과 방학동 쪽을 볼 수 있어 힘들지는 않다.

 3구간은 도봉옛길로 서울에서 경기도로 넘어가는 길이다. 도봉사·능원사·광륜사 등 절이 많다. 고개를 들면 도봉산 주능선인 뜀바위·선인봉·만장봉·자운봉이 연이어 서 있다.

사패산 6부능선에 있는 붉은 바위에서 내려다본 의정부 시내 전경.<左> 멀리 양주시청까지 보인다.안골능선에서 도봉사로 넘어가는 코스에서는 선인봉·자운봉 등 도봉산 주능선을 볼 수 있다.<右>


2 소나무 숲길을 따라 걷다 - 원도봉지구(다락원길∼보루길∼안골길 9.3㎞)

4구간 다락원길은 YMCA수련원을 왼쪽에 끼고 시작한다. 아스팔트 길이지만 쉬엄쉬엄 5분쯤 가면 다시 산길로 들어선다. 평범한 오르막길이어서 힘들지 않다. 내리막길 끝에 가면 미군부대가 있다.

 보루길로 이름 붙여진 5구간에서는 고구려 시대 유적을 만날 수 있다. 폭이 2m에 이를 정도로 넓지만 돌이 많고 시멘트 길이어서 걷는 맛은 떨어진다. 처음으로 개방한 군부대 뒷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보루가 나온다. 제3보루로, 고구려 때 멀리 있는 적을 관찰하던 곳이다. 지금은 의정부시 호원동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인다. 내려가는 길은 좁고 가파르다. 도봉산 둘레길에는 참나무 숲이 많은데 이 구간에는 소나무 숲이 우거지다.

 6구간 안골길은 등산의 묘미를 느낄 수 있는 구간이다. 호암사 입구까지 오르막과 내리막이 잇따라 나온다. 호암사 입구부터는 다시 시멘트길이다. 곧바로 의정부시가 조성한 직동공원이 나온다. 국립공원에서 벗어난 지역으로 다양한 운동시설이 있고 데크로드가 깔려 있어 걷기는 좋다.

도봉산 둘레길 두 번째 구간인 방학동길은 경사가 완만하고 호젓한 숲길로 이루어져 걷기에 편안하다.


3 도봉산 둘레길 최고의 난코스 - 송추지구(산너미길∼송추마을길 8.8㎞)

도봉산 둘레길에서 가장 험한 코스가 기다리고 있다. 7구간 산너미길이다. 사패산 6부 능선에 있는 붉은 바위까지 올라야 한다. 30분 정도 가쁜 숨을 몰아쉬어야 하고, 워낙 경사가 있어 서너 번은 쉬었다 가야 한다. “도봉산 둘레길은 남성적”이라는 말이 실감나는 코스다. 그러나 전망은 도봉산 둘레길에서 으뜸이다. 의정부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멀리 양주시청도 보인다. 오른쪽으로는 수락산이, 정면에는 천보산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산에서 내려올 때는 군부대가 주둔한 탓에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일반에게 개방되지 않은 참나무 숲길을 통과한다. 도봉산관리사무소 직원들이 고라니를 자주 목격했을 만큼 평소 인적이 드문 지역이다. 시원한 계곡물이 흐르고, 발밑에는 낙엽이 양탄자처럼 깔려 있다. 여름에 특히 인기 있는 구간이 될 듯싶다.

 원각사에서 내려오는 콘크리트 길이 송추마을길의 시작이다. 5㎞나 되는 긴 길이지만 절반 이상이 마을에 난 길이어서 걷기는 어렵지 않다. 올해 안에 철거 예정인 송추유원지 밥집도 나오고 아직도 시골의 모습을 간직한 마을도 나온다. 올림픽 부대 철조망을 끼고 걷는 1㎞ 정도에도 산길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데, 오색딱따구리가 발걸음에 박자를 맞춰 나무를 쪼아댔다.

다락원길에 설치된 데크로드.

샛길 통행 줄이려 만든 둘레길 가족이 함께 걸을 만한 산책로 됐죠

북한산 둘레길은 이용객 숫자만 보면 한국을 대표하는 트레일이다. 그러나 조성 취지는 여느 트레일과 사뭇 다르다. 환경부 산하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운영하는 트레일은 현재 북한산 둘레길이 유일하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북한산과 도봉산에 둘레길을 조성한 가장 큰 이유는 샛길 차단이다. 쉽게 말해 샛길 통행을 줄이기 위해 딴 길을 만든 것이다. 처음엔 동네 주민만 이용했던 샛길을 등산객마저 수시로 들락거리면서 샛길은 북한산의 가장 큰 골칫거리가 됐다. 야생 동식물 서식지가 훼손되는 것뿐만 아니라, 땅이 파여 흙이 씻겨 내려가는 부작용도 심각했다.

정상 등정 산행 문화를 바꾸려는 의지도 북한산 둘레길에 담겨 있다. 북한산과 도봉산 정상을 목표로 삼은 산행은 대부분 산 속 깊은 곳을 헤집고 다닌다. 이에 따른 생태계 훼손은 심각하다. 산이 좋아서 찾아오는 사람을 돌려보낼 수는 없지만, 북한산은 사람이 와도 너무 많이 온다. 이게 문제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은 북한산 둘레길이 어느 정도 효과를 내고 있다고 진단한다. 공단이 지난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그동안 정상 산행을 했던 탐방객 중 20% 정도가 정상으로 오르는 대신 산허리 둘레길을 걸었다. 지난해 북한산 둘레길 탐방객은 166만 명이었고 올해도 5월 중순까지 86만 명에 달했다. 공단 측은 “적어도 이 숫자만큼이라도 정상 산행이 줄지 않았겠느냐”고 기대 어린 해석을 내놓는다.

 생태계 복원 효과는 아직 두고 봐야 한다. 자연이 하루아침에 되살아나는 건 아니어서다. 그러나 공단의 전망은 밝다. 도봉산관리사무소 탐방시설과 이재규 대리는 “북한산 탐방객의 83%가 둘레길이 고지대 생태계 보호에 도움을 줄 것이라고 대답하는 등 탐방객의 의식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며 “가족이 함께 편안히 산책하는 수평적 탐방문화가 정착되고 있다”고 말했다. 공단은 북한산 둘레길을 조성한 뒤 기존 샛길 중에서 46㎞를 차단했다.

● 북한산·도봉산 둘레길 이용 방법 북한산·도봉산 둘레길을 이용하는 데 제약은 없다. 국립공원 개방시간인 일몰 전까지, 그리고 어떤 출입구에서도 입장이 가능하다. 우이령길만 예외다. 우이령길 구간은 40년 넘게 출입이 통제돼 있어 북한산 안에서도 자연 생태계가 가장 잘 보전돼 있는 지역이다. 길 양쪽 들머리인 교현과 우이동에서 각각 500명씩, 하루 1000명만 들어갈 수 있는데 탐방 전날까지 인터넷으로만 예약이 가능하다(bukhan.knps.or.kr). 65세 이상 어른과 장애인·외국인은 전화(우이탐방지원센터 02-998-8365, 교현탐방지원센터 031-855-6559)로 예약할 수 있다. 오전 9시부터 오후 2시까지 출입할 수 있고 오후 4시까지는 하산해야 한다. 예약확인증과 신분증을 꼭 갖고 와야 한다. 구간 안에 군부대가 있어 신원을 확인한다. 대부분이 마사토 길이어서 맨발로도 걸을 수 있다. 둘레길 중에서 일부 구간은 국립공원 바깥쪽에 있어 애완견을 데리고 갈 수 있고 자전거를 탈 수도 있다. 그러나 국립공원 안에서는 불법이다. 10만원 이상 과태료가 부과된다. 북한산국립공원 사무소(02-909-0497~8), 도봉산 관리사무소(031-873-279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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