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요즘 아기돌봄도우미,바닥에 과자 뿌려놓고…엄마들 뿔났다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아기를 안고 있는 아기 엄마 (자료사진=중앙포토)

(출처=중앙포토)


육아 휴직 중인 김유정(가명·34)씨는 다음달 복직을 앞두고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15개월에 접어든 아들을 맡길 곳이 마땅치 않아서다. 시댁과 친정이 지방이라 양가 어른에게 기대기 힘들고 어린이집에 보내기엔 아이가 너무 어려 마음이 놓이지 않는다.

고민 끝에 김씨는 입주 도우미를 구하기로 했다. 그러나 그것도 쉽지 않았다. 업체에 문의하니 중국동포는 한 달에 130만~170만원, 한국인은 200만원 가까이 든다고 했다.

비쌌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기 연령과 집 평수, 보수를 말해달라"는 업체의 주문에 "주 6일 근무하는 조선족 입주 도우미, 140만원"으로 조건을 내걸었다.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아주머니'들이 면접을 보러 오겠다며 전화를 걸어오기 시작했다. '사람 구하기 어렵진 않구나' 싶었지만 진짜 어려움은 그 다음부터였다.

◇“면접 보는 게 아니라 면접 당하는 기분”=어떤 질문을 해야 할지 난감했다. 첫 인상과 말투를 중점적으로 보겠다는 생각이었다. 이런 생각은 초보 중의 초보나 하는 것이라는 것을 나중에야 알았다. 아기 엄마들이 많이 모이는 인터넷 카페엔 ‘도우미 면접 요령’을 적은 글이 넘친다.

“잘 하는 음식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물어보라” "친구들이 많은지” “취미가 무엇인지 꼭 물어보라” 등이다.

일부 도우미들은 “강남 누구네 집에 있었다”는 식으로 말한다. 소위 강남에서 잘 나가던 도우미라는 점을 부각시키는 것이다. 하지만 대개는 거짓말이다. 그래서 엄마들의 카페에선 구체적으로 “어떤 집에서 몇 년 간 일했으며, 왜 그만두게 됐는가”가 중요하다고 지적한다.

도우미는 주 6일 근무에 토요일이나 일요일 하루 24시간 휴일을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친구들이 너무 많으면 근무 중 전화통화하는 경우가 많고 주말엔 도우미로 일하는 친구들과 이런 저런 얘기를 나눈 뒤 월요일에 갑자기 “월급을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물론 양심적으로 일을 잘하고 아기를 잘 돌보는 도우미도 많다. 이들은 아기 엄마에겐 구원자나 다름없다. 일부 불량 도우미들이 문제다.

김씨는 “‘아기와 있을 때 TV 시청은 하지 말아달라’ ‘낮에 외출하지 말라’고 했더니 다들 '일하기 힘들 것 같다’며 오지 않았다”며 “말도 못하는 아기를 아무도 없는 집에서, 그것도 생판 남에게 맡기는 엄마들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것 같다. 사람 구하기 너무 힘들다” 고 하소연했다.

일부 입주 도우미들은 일을 하려고 오는 게 아니라 자신이 편하게 거처할 곳을 알아보러 온다는 느낌을 준다고 한다.

엄마들이 면접을 보는 경우가 많지만 집에서 같이 살 사람을 뽑는 만큼 요즘엔 아빠들도 면접에 참여하기도 한다. 워킹맘이 늘면서 예전과 달리 요즘 젊은 아빠들은 육아와 가사에 관심이 많고 일과 가정의 양립을 중요시하기 때문이다.

◇바닥에 과자 뿌려놓고 주워먹게 하는 도우미=네이버 ‘맘스홀릭’ 을 비롯한 육아관련 인터넷 카페엔 불량 도우미들에게 피해를 입은 글이 잇따르고 있다. “석연치 않아 녹음기를 설치해 퇴근 후 들어보니 가관이었다. 우는 아기 달래주지도 않고 소리를 지르더라” “낮에 집에 들러보니 가족을 불러다 놓고 놀고 있더라”는 식이다. “출근하면 과자를 바닥에 뿌리고 아기에게 주워먹으라고 하는 도우미도 있다. 시간이 잘 가기 때문”이라는 글도 있다.

직장인 박정은(35·가명)씨는 “아기 얼굴이 점점 검게 타기에 왜 그럴까 했는데 도우미가 낮에 일은 하지 않고 포대기에 아기를 업고 동네방네 돌아다녔다”며 “사고라도 나면 어떻게 됐을까. 사실을 알고는 바로 내보냈다”고 전했다.

중국동포의 경우 비자를 속이고 들어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임시비자를 받고 들어와선 “오래 일할 수 있다”고 속인다. 그러나 불법체류자로 적발되면 곧바로 출국해야 한다. 고용한 사람도 벌금을 물어야 한다.

도우미를 바꾸는 것도 쉽지 않다. 금방 새 사람을 구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터넷 커뮤니티엔 “적어도 2주 여유를 둬라. 기분 상하지 않게 도우미가 외출한 주말에 몰래 면접을 보라”는 조언도 잇따르고 있다.

월급을 많이 주는 곳으로 메뚜기처럼 옮겨 다니는 도우미도 적지 않다. “갑자기 몸이 아파 일을 못하겠다고 해서 내보냈는데 다른 집에서 일을 하고 있더라”는 경험담도 인터넷에 올라온다.

지난해 한나라당 김금래 의원이 발표한 여성가족부 국정감사 자료에 따르면 중국동포 도우미 고용 비용은 2008년 월 110만원 선이었던 것이 2009년 130만원, 2010년엔 140만~150만원까지 지속적으로 오르고 있다.

◇’당하면 끝장’ 엄마들이 만든 리스트=문제는 서로 담합해 가격을 올리거나 근무를 게을리하는 불량 도우미들을 법적으로 제재할 조치가 아직 마련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알선업체나 인터넷 사이트, 육아카페 등을 통해 개별적으로 고용이 이뤄지고 있어 피해를 입었다 할지라도 구제받기 어려운 실정이다.

‘당하면 끝장’이라는 생각에 엄마들은 피해를 줄이려 직접 나서기도 한다. 비공개 인터넷 주요커뮤니티에서 '불량 도우미 블랙리스트'를 은밀히 공유하는 것이다. 불량 도우미들의 이름, 근무 행태 등을 적고 “당하지 말라”고 정보를 준다.

그러나 불량도우미를 알음알음으로 걸러내는 데에는 한계가 있다. 피해 사례가 늘고 법적 장치 마련이 절실해지면서 여성가족부에서도 구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여성가족부 가족정책과 김민성 주무관은 “지난해 ‘아이돌보미’ 자격 기준 관리감독을 강화하는 자녀돌봄지원법을 발의한 상태”라며 “민간업체로부터의 피해를 구제할 방안도 담겨 있으며 향후 조선족 등 타국적 도우미들에게도 적용될 수 있도록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

김진희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