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테헤란밸리' 작명 소동

중앙일보

입력

''디지털 스트리트'' 면 어떻고 ''서울벤처 밸리'' 면 무엇이 달라지나. 서울 테헤란로 벤처가(街)의 이름을 둘러싼 정보통신부와 산업자원부간 줄다리기는 부처간 밥그릇 싸움의 대표적 사례다.

산자부는 지난달 24일 김대중 대통령이 참석한 ''벤처기업인과의 만남'' 행사에서 테헤란로에 대한 명명식을 가질 계획이었으나 정통부 반대로 무산됐다.

지하철 2호선 삼성역에서 강남역으로 이어지는 테헤란로에는 2백여개의 정보통신 벤처기업들이 운집, 국내 IT산업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미국 ''실리콘 밸리'' 에 비견되는 ''테헤란 밸리'' 라 불리기도 한다.

그런데 이왕이면 한국식 이름으로 바꾸는 게 어떠냐는 논의가 나왔고, 새 이름을 놓고 양측이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이런 논쟁의 이면에는 벤처 관련 정책의 주도권 싸움이 숨어 있다는 점이다. 산자부는 벤처는 당연히 자기 소관이란 입장이고, 정통부는 정보통신.인터넷 관련 벤처 육성은 자신이 맡아왔는데 뒤늦게 산자부가 끼어들었다고 못마땅해 한다.

미국 ''실리콘 밸리'' 가 오늘에 이른 것은 정부 지원 덕이 아니다. 스탠퍼드대를 중심으로 기술.인력.자본이 몰리면서 자연스레 첨단 산업의 메카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

그러나 우리네 사정은 한심하다. 거리 이름에 ''디지털'' 이 들어가면 정통부 소관이 되고 ''벤처'' 가 붙으면 산자부 소관이 된다는 소아병적 관료주의 발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우리는 이런 부처 이기주의적 논쟁을 속히 끝내는 한편 벤처에 대한 관 주도 발상을 확 뜯어고치기를 권고한다.

물론 차제에 한국 또는 서울을 명기한 명명식을 갖는 것도 바람직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제도 정비.인력 육성 등을 통해 막 움트는 벤처의 싹이 제대로 자랄 수 있는 여건을 조성하는 것이지 정부의 주도권 싸움에 있는 것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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