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20일 청와대에서 열린 한나라당 지도부와 간담회에 앞서 황우여 신임 원내대표(가운데), 정의화 비상대책위원장과 인사하고 있다. [안성식 기자]
이명박 대통령은 20일 “당이 기본가치를 지켜나가면서 중심을 잡고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해달라”고 요청했다. 한나라당 ‘신주류’인 황우여 원내대표와 이주영 정책위의장 등 새 지도부와의 첫 청와대 조찬회동에서다. 이 대통령의 언급은 소득세·법인세 감세,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안 처리에 대해 여당에 협조를 당부한 것이었다. 그러나 당 지도부 태도는 과거와 사뭇 달랐다.
황 원내대표와 이 정책위의장은 정부의 정책인 감세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두 사람은 FTA 비준안 처리 문제에 대해서도 ‘6월 국회 처리’를 못 박지 않는 등 유보적이고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이를 두고 당에선 “당이 청와대를 위한 ‘거수기’ 역할은 더 이상 안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한 셈”이란 평가가 나왔다.
복수의 참석자에 따르면 이날 이 대통령은 “한나라당이 인기 위주 정책으로 ‘왔다 갔다’ 하면 안 된다. 당장 욕을 먹더라도 감세 같은 건 당의 기본가치를 지켜나가면서 일관되게 추진해야 한다. 그래야 지지세력이 돌아온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황 원내대표, 이 정책위의장 등 신임 지도부가 그간 ‘감세 철회와 10조원 서민복지’를 강조한 걸 ‘인기 위주 정책’이라고 지적한 것처럼 들릴 수도 있는 발언을 한 것이다.
이에 감세 철회론자인 이 정책위의장은 “당내에서 감세 철회에 대한 논의가 많다. (30일) 의원총회를 열어 의견을 수렴해 결정하겠다”며 맞서는 모양새를 보였다. 그는 청와대 회동이 끝난 뒤에도 기자에게 “법인세와 소득세 모두 최고구간(각각 과표소득 연 2억원과 8800만원 이상) 감세를 철회해야 한다는 소신에 변화가 없다”고 했다. 황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 앞에서 “등록금과 일자리, 육아, 전·월세, 퇴직 후 복지 등 생애주기형 정책 접근을 하겠다”며 서민 복지를 강조했다.
한·미 FTA 비준안 처리와 관련해서도 당 지도부는 청와대가 원하는 답을 주지 않았다. 이 대통령은 “FTA 비준안은 (현 정부가 아니라) 야당 시절에 하겠다고 약속했던 것이니 반드시 해야 한다. (추가협상에서) 의약부문에 상당한 성과가 있었고 미국 의회도 7월께 비준이 될 거다”고 말했다. 청와대 정진석 정무수석은 회동 말미에 “6월 국회에서 상정만이라도 되게 해 달라”고 당 측에 부탁했다. 이에 대해 황 원내대표는 “(신주류의) 남경필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과 상의해 보겠다”고만 답했다. 황 원내대표는 비준안 처리와 관련해 그간 수차례 “(국회에서) 몸싸움은 하지 않겠다”고 말한 바 있다. 회동 이후 청와대에선 “FTA 비준안의 6월 국회 상정에 당·청이 합의했다”고 밝혔으나 당은 “야당과 상정 문제를 협상하겠다는 것이지 합의한 건 아니다”고 했다.
글=정효식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