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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립싱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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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2006년 2월 이탈리아 토리노 겨울올림픽 개막 축하 공연, 불세출(不世出)의 테너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등장했다. 푸치니의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 ‘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불렀다. 췌장암으로 다음해 사망하는 바람에 마지막 무대가 됐다. 이날 공연이 립싱크(lip sync)였다는 사실이 훗날 알려졌다. 그와 수년간 호흡을 맞춰온 지휘자 레오네 마지에라가 2008년 출간한 『가까이에서 바라본 파바로티』에서 털어놨다. 몸이 아파 어쩔 수 없었다는 것이다.

 립 싱크로나이제이션(lip synchronization)을 줄인 립싱크는 영상과 음향이 따로 제작되던 1950년대 미국에서 탄생한 획기적 기술이었다. 그 뒤 녹음 및 보정 기술의 발달로 쓰임새가 더욱 늘어났다. 캐릭터의 입술 모양에 맞춰 목소리를 살려 넣는 애니메이션 영화나 음반작업에서 필수적이다. 요즘은 입만 벙긋거리는 가수를 지칭하는 말로 주로 쓰인다. 반주만 녹음된 ‘MR(music recorded)’ 테이프에 맞춰 노래하는 경우는 그래도 양심적이다. 이때 기타나 피아노를 치지 않으면서 손으로 흉내만 내는 걸 핸드싱크(hand sync)라 한다. 반주와 노래가 모두 녹음된 ‘AR(all recorded)’ 테이프를 틀어놓으면 가수는 ‘무대 위의 붕어’에 불과하다. 80년대 후반 격렬한 댄스 가수들이 등장하면서 번지기 시작했다. 2009년 세상을 뜬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도 립싱크를 자주 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개막식 때 소녀의 축가가 립싱크였다는 사실이 얼마 뒤 드러났다. 공명(共鳴)이 안 되는 체육관이나 드넓은 야외공연장에서는 립싱크가 불가피한 면도 있다고 한다. 그런데도 중국 정부는 국제적 망신을 떨었다며 다음해 립싱크 금지법을 만들어 시행 중이다. 세계에서 유일한 사례다. 자유선진당 이명수 의원이 지난주 이걸 본뜬 법안을 발의하자 인터넷 공간이 찬반 논쟁으로 후끈 달아올랐다. 한류(韓流)가수가 뜬 것도 립싱크 덕이 아니냐는 의견도 있다. 가창력보다는 춤과 비주얼로 성공했다는 지적이다.

 아무리 립싱크가 판쳐도 사람들은 누가 노래를 잘하고, 누구는 얼굴로 승부하는지 다 안다. 그들에게 대중의 평가보다 무서운 건 없다. 현란한 춤을 좋아하는 이들도 있다. 이런 문제에까지 법이 나설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자칫하면 배우들의 눈물 연기에 ‘안약 사용 금지법’이 나올지도 모르니까.

심상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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