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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 Novel] 대장경 천년 특별기획 김종록 연재소설 - 붓다의 십자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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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청산별곡 ②

일러스트=이용규

협착한 산령 너머로 두 필의 말꼬리가 사라졌다. 문득 혼자라는 생각이 침샘 아래로 고여들었다. 고개 숙인 기장이 익어가는 화전 모퉁이를 한참 동안 눈길로 더듬었다. 길섶 가득 만발한 구절초가 하늘거렸다.

 사람을 맞고 보내는 일이 사람의 일상이다. 죽은 자들의 혼백을 맞이하는 일은 아미타불의 소관이었다. 아미타불은 이마에서 빛을 뿜어 망자가 가는 어두운 황천길을 비춰주었다. 나팔꽃 모양의 빛은 상모 끈처럼 휘어졌다. 빛이 꼬불꼬불 휘는 세계는 이 세상이 아니었다.

 나 혼자 여기서 어언 서른세 해를 보냈다. 자연히 산 사람을 맞고 보내는 일이 생급스럽고 서툴 수밖에 없었다. 나는 어쩌면 살아있는 게 아닌지도 모른다. 이곳은 온통 원혼들 천지니까. 밤이면 도깨비불이 호곡소리를 내며 날아다닌다. 그들과 함께 울어주다가 배고파지면 밥 먹고 땟거리를 만들기 위해 화전을 일궜다. 그래도 일연 같은 화상과 이따금씩 연통하며 살았으니 미쳐나가지 않았지 싶다. 인근의 주막촌이나 갯마을 사람들과는 생필품을 교환할 때만 접촉했다. 마을사람들에게 나는 화전민이나 약초꾼으로 통한다.

 환속하지 않았으므로 나는 여전히 중이다. 하지만 삭발 같은 건 더 이상 하지 않는다. 불상도 모시지 않는다. 내게는 사방이 붓다다. 공중을 건너가는 새, 대지를 적시는 빗물, 가시덤불 속에도 붓다가 들어 있었다. 심지어는 산짐승 같은 내 속에도 붓다가 산다. 그렇지 못하면 붓다가 아니다. 괭이질하는 화전이 법당이었고 지게 짊어지고 걷는 산길이 선방이었다. 어차피 시주하며 복을 빌러 올 신도는 아무도 없었다.

 높게 밀려난 하늘빛이 울긋불긋 단청한 산맥을 일으켜 세운다. 저 시린 하늘빛은 곧 냉기를 뿜어서 단풍잎을 죄다 떨어뜨리고 마침내 앙상한 산맥의 골격을 보려 들 것이다. 거기다 흰 눈으로 다져서 산맥의 몰골이 더 확연하게 드러나도록 할 것이다. 그렇게 본지풍광이 고스란히 드러난 이후에야 대지에는 다시 물이 오르고 새싹이 튼다. 잔인한 건 비단 사람뿐만이 아니다.

 찬바람을 쐬니 기침이 난다. 그러고 보니 잔대 캘 때가 되었다. 가래와 기침을 없애고 몸에 쌓인 독을 푸는 데는 잔대가 그만이다. 잔대 군락지는 바위벼랑 뒷골에 있다. 삼실로 엮은 주루막에 곡괭이를 담아 메고 뒷골에 오른다. 바위벼랑을 돌아 오른쪽 등성이가 잔대 밭이다. 왼쪽 바위벼랑 밑에는 다섯 그루의 아름드리 소나무가 서 있다. 부러 눈길을 주지 않고 오른쪽 능선을 탄다. 발 아래로 댕강 머리 잘린 돌부처의 머리가 뒹군다. 한낱 돌덩이일 뿐이다.

 줄기가 말랐지만 군락지라서 잔대를 찾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다. 대궁이 굵은 것만 골라 캤는데도 두어 식경 만에 주루막이 찼다. 물을 찾느라 계곡으로 내려가다가 새까맣게 익은 머루송이들을 발견했다. 주루막에서 자루를 꺼내 머루를 따 담는다. 짊어져야 할 짐이 더 늘었다. 물을 마시고 잔대 하나를 씻어 손톱으로 껍질을 벗겨낸다. 잘근잘근 씹어 단물과 함께 삼킨다. 머루도 꺼내 따먹는다. 약초뿌리와 머루 향내가 가을날 아침햇살을 타고 하늘 가득 번진다.

 

 사리불아, 불국토는 항상 천상의 음악이 울리는 황금의 땅이다. 밤낮으로 여섯 차례 만다라꽃비가 내리느니.

 

 아미타경을 되뇐다. 이 시간 이 자리와 불국토, 그 극락 사이의 거리는 얼마나 될까. 죽어서도 가기 어려우므로 까마득히 멀다. 하지만 마음만 제대로 다잡으면 찰나에 당도할 수도 있으므로 거리가 없다면 없다. 극락과 지옥이 내 안에 있어 그렇다. 천상의 음악도 황금의 땅도 사람의 욕망이 일어야 비로소 가치가 있다. 듣고 싶어 하는 귀, 소유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면 허깨비에 지나지 않는다. 만다라꽃비를 혼자서 맞는 건 꿈꾸는 것과 다를 게 없다.

 -극락요? 보세요. 이 전란 중에도 새는 노래하고 이렇게 꽃은 피어나잖아요.

 통랑한 목소리다. 얼굴 하나가 손에 잡힐 만한 거리에 와 있다. 눈을 감는다. 몸을 일으켜 산을 내려간다. 아까 지나쳤던 갈림길에 다다른다. 다섯 그루의 소나무 뒤쪽에 커다란 동굴이 있다. 나무 둥치와 맹감나무 덤불숲이 감쪽같이 은폐하고 있어서 눈에 띄지 않는다. 이 산중마을의 비밀스러운 지성소다. 혈사(穴寺)라 불리는 예배당인데 유사시에는 아주 훌륭한 은신처가 돼주었다. 이 골짜기에는 이런 혈사가 여럿이다. 지금은 빈 골짜기로 변했지만 한때 이곳은 천국이었다.

 동굴 속으로 들어간다. 발자국 소리가 울린다. 그 사품에 박쥐들이 날아오른다. 어스름 속에 목 잘린 석상(石像)들이 신산스럽게 널브러져 있다. 독특한 문양의 목걸이가 새겨진 것들이다. 그 문양을 뇌리에서 지우려고 애쓴다. 그렇다. 단지 돌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세상에 숱하게 널브러진 기하학 무늬 가운데 하나일 뿐이다. 벽면 곳곳에 파인 홈들은 등잔불을 밝혔던 자리다. 손으로 어루만진다. 기억 속의 불꽃이 일렁이며 되살아난다.

 -지난해 봄날 촌장어른이 뜬금없이 국수를 해먹자는 거예요. 모두가 좋아라 했죠. 절집에서는 국수를 승소(僧笑)라고 한다죠. 매일 먹는 밥에 물린 스님들이 국수를 대하면 반겨 웃는대요. 아시다시피 촌장어르신은 예전에 해인사 스님이셨잖아요. 문제는 이 산중에 밀가루가 없다는 거였어요. 가끔씩 해먹는 메밀국수 말고 밀가루로 만든 칼국수를 말하는 겁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춘궁기라서 밀가루 구하기가 쉽지 않았죠. 웬만한 건 다 들어오는 갯마을 포구에서도 구할 수가 없었어요. 현청이 있는 대처까지 가서 한 동이를 구했답니다. 이 밀가루로 승소를 만들어 촌장어르신과 어머니, 각수장이들을 비롯한 산중 식구들을 먹일 생각을 하니까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어요. 도중에 소달구지를 얻어 타는 행운도 만났어요. 개울 건너 오솔길부터는 줄곧 걸어야 했지만요. 해 저물녘 마침내 집에 도착했어요. 동이를 덮었던 소쿠리를 열었는데 세상에 안이 텅 비어 있는 겁니다. 거짓말 같았지요. 손잡이 밑쪽에 작은 구멍이 나 있었어요. 까불리던 달구지 위에서 생긴 사단이었죠. 그것도 모르고 밀가루를 바람에 흩날리며 산길을 걸어온 겁니다. 울고 싶었냐고요? 아뇨. 그냥 웃었지요. 애초 집을 나설 때도 동이는 비어 있었잖아요.

 가온이다. 그 미소 그 음성이 살아있는 것처럼 또렷하다. 이곳은 어디나 그 아이의 흔적들로 넘쳐난다. 질박한 산골아이의 말에는 묘한 호소력과 울림이 있었다. 빨리듯 듣고 있다가 돌아서면 점점 더 새롭고 의미가 깊어졌다.

 일연이 채록한 『삼국유사』 속에도 가온에 필적할 만한 인물은 없다. 백제 무왕과 신라 처용을 섞어놔도 가온이 아니다. 거기에 선화공주나 소녀 시절 수로부인을 합쳐놓더라도 가온이 될 수 없다. 오직 가온이 있을 뿐이다. 그렇다. 가온 이전에 가온 없고 가온 이후에 가온 없다.

 나는 가온과 채 열흘도 함께하지 못했다. 그런데 이렇게 삼십 년 넘게 그를 추억하며 지낸다. 철저히 파괴돼버린 그의 옛 마을, 이 스산한 폐허에서.

 이제 보니 정작 할 이야기가 많은 이는 선객 일연이 아니고 나 지밀(指密)인 듯싶다. 좋은 벗은 요란한 말이 아니라 듬직한 행동으로 사람을 고무시키는 법이다. 일연의 찬술은 죽을 때까지 침묵하려 했던 나를 일깨워주었다. 선객 일연이 구태여 장황한 역사 이야기를 쓴 것도 그 오랜 난리통에 상처받은 사람들을 위로하기 위함이었다. 그들의 눈물을 닦아주고 상처를 어루만져주기 위함이었다.

 나도 기억을 더듬어 기록해야 할 것 같다. 내일이라도 내가 이 산중에서 고꾸라져 숨통이 끊어져버리면 그것으로 영원 속에 묻히고 말 테니까. 모든 존재는 본디 무상(無常)하여 영원한 건 오로지 반복되는 생멸(生滅)의 사슬뿐임을 잘 안다. 여태껏 염송해 온 왕생정토진언도 따지고 보면 부질없다. 무엇을 기록하는 일 또한 그렇다. 하지만 앞서 간 이들에 관한 기록물이 뒤에 올 사람들의 징검다리가 되어줄 만한 것이라면 사정이 다르다. 앞서 간 그들이 꿈꿨던 세상을 뒤에 오는 사람들이 여럿이서 함께 꿈꾸며 만들어갈 수도 있기 때문이다. 가온의 말처럼 극락은 늘 그 속에 있는 거니까.

 

 서른아홉 살 나던 해 강화도 선원사 판당 옆 요사채.

 “지밀 스님, 승통께오서 찾으십니다.”

 문 밖에서 스승의 시자 인보의 목소리가 목어처럼 울렸다. 초저녁부터 길래 봄밤을 수놓던 소쩍새 울음소리가 뚝 멈췄다.

 “밤 깊은데 무슨 일이더냐?”

 등잔불 아래서 대장목록(大藏目錄) 초고를 정리하고 있던 나는 한밤중 스승의 부르심이 생급스러웠다. 스승은 초저녁잠이 많았다. 일찍 잠들었다 꼭두새벽에 일어나시지만 아직 새벽은 아니었다. 삼경 초나 됐을까.

 “며칠째 밤을 새우고 계십니다.”

 나는 저고리를 걸치며 마루로 나왔다. 어둠 속에서 조족등을 들고 섰던 인보가 댓돌을 비췄다. 갓신을 꿰 신고 그를 따라 나섰다. 스승의 처소는 판당과 산신각을 지나서도 오백 보가량이나 더 올라가야 있었다. 낮 동안 옴나위 없는 대장도감 일에 시달리는 스승은 저녁공양 수저를 놓기 바쁘게 처소로 올라가곤 했다. 그랬다가 새벽예불시간이면 어김없이 나타나 참례했다. 올빼미 습성이라서 새벽녘에야 잠자리에 드는 나는 새벽예불이 제일 고역이었다. 그래서 주로 건너뛰었고 꼬박 밤샘한 날 어쩌다 참석하는 게 고작이었다.

 “찾아계시오니까.”

 황촉불빛이 널린 툇마루 끝에서 그렇게 고하자 스승은 말없이 방문을 열어주었다. 인보는 윗방으로 들었다. 스승의 방은 서책들과 경판들이 어수선하게 널브러져 있어서 누울 자리는커녕 비집고 앉을 틈도 없었다. 펼쳐둔 서책을 조심스레 밀치며 엉거주춤 앉았다. 적삼만 걸친 스승의 몸에서 땀내가 풍겼다. 책상 위에는 낯선 경전과 두꺼운 사전들이 펼쳐져 있었다.

 “흔량매현 각수장이 마을에 가봤더냐?”

 특유의 매 눈을 번뜩이며 수기가 묻는다. 깊게 파인 이마의 주름살이 꿈틀거렸다. 책으로 돼 있는 건 무엇이건 읽어 기억하고 있다고 알려진 스승이었다.

 “한번 가본다 하고선 못 가봤습니다. 고려국 최고의 각수(刻手) 김승(金升)이 주관하는 공방 아닙니까.”

 “맞다.”

 “거기서 무려 772장의 경판을 새겨 올렸지요.”

 “780장이다.”

 수기가 눈을 감는다. 왼손에 쥔 염주가 돌아가고 있었다.

 “예? 전국의 각성인과 그 작업량을 집계한 게 며칠 전입니다.”

 “엊그제 8장이 더 올라왔느니.”

 “내려보낸 판하본(版下本)대로 이미 완성했는데 8장이 더 올라오다니요.”

 나는 널브러진 경판들을 톺아보았다. 이미 인쇄해 본 듯 경판들은 먹물을 뒤집어쓰고 있었다. 거꾸로 새겨진 것이지만 한눈에 특이한 경판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글씨 한쪽이나 전면에 그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인쇄해 보겠느냐.”

 스승 수기가 책상에서 책들을 내리고 검은 보자기를 깔았다. 경판을 고른 그는 윗목에서 먹물그릇과 솔, 밀랍 칠한 말총 뭉치를 끌어당겨 놓았다. 먹물그릇에는 광솔 태운 그을음이 아직 물기를 머금고 있었다. 스승은 자리끼를 보태 솔로 저었다. 소나무 뿌리를 빻아서 만든 솔이었다. 솔을 받아든 나는 경판에 먹물을 적셔 발랐다. 한지를 덮고 말총 뭉치로 우에서 좌로 위에서 아래로 부드럽게 문질렀다. 그런 다음 좌측에서부터 떼어냈다. 인쇄된 한지를 뒤집었다. 마구간에 갓난아기가 누워 있고 한 여인과 수염이 풍성한 건장한 사내들이 경배하고 있는 장면이었다. 옆에는 ‘말염회후산일남명위이서(末艶懷後産一男名爲移鼠)’라는 세로글씨가 선명했다.

 “무슨 뜻인지 알겠느냐.”

 “글쎄요.”

 나는 방바닥에 내려놓은 사전 쪽으로 눈길을 주었다.

 “사전에도 없는 말이다.”

 스승의 말처럼 ‘이서’는 사람 이름일 거였다. 문제는 그게 누구냐는 거였다. 쥐가 옮겨갔다? ‘말염’이야 농염한 걸로는 꼴찌라는 뜻이니까 박색의 여인이다.

 “박색이 임신한 후 한 사내아이를 낳고 이름을 이서라 지었다. 이서가 누굴까요? 팔만대장경에서는 물론 속장경에서도 본 적이 없는 인물입니다.”

 “너는 말염을 박색으로 풀었느냐? 그 역시 여인의 이름을 음차한 것일 게다. 중국어 발음으로는 모얀인데 실제 이름은 마리얀, 아니 마리아일는지도 모르지. 젊었을 적 중국 장안에 갔을 때 언뜻 들어본 이름 같기도 하구나.”

김종록
일러스트=이용규 buc024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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