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라지는 문예진흥원 미술회관

중앙일보

입력

한국문화예술진흥원(원장 김정옥) 미술회관이 올들어 확 달라지고 있다.

미술회관은 그동안 대관전에 치중해 제몫을 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을 미술계로부터 받았던 게 사실. 문예진흥원은 올해부터 우수기획 공모전을 개최함으로써 이같은 비판을 누그려뜨리려 하고 있다.

문예진흥원은 지난해 7월 큐레이터나 평론가, 전시기획자 대상으로 공모를 받아 응모작 40점 중 5점을 최근 선정했다. < 0의 공간, 시간의 연못(기획 김태곤) >< 벽사전(임영길) >< 이미지 미술관전(이근용) >< 아닌, 혹은 나쁜 징후들전(김종호) >< 불임전(이필 >) >이 그것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전시장이 무료로 제공되며 지원금 1천만원도 각각 지원된다.

문예진흥원은 이들 작품을 이달부터 차례로 미술회관에서 전시케 할 예정. 김태곤씨의 < 0의 공간, 시간의 연못 >이 30일부터 2월 8일까지 열리며, 임영길씨의 < 벽사전 >은 28일부터 2월 9일까지 이어진다. 나머지 전시는 3월부터 8월까지 분산 개최된다.

이중 특히 주목되는 것은 < 0의 공간, 시간의 연못 >전. 김씨와 작곡가 문성준씨가 공동작업하는 이 작품은 작품내용과 전시기획이 파격적이어서 벌써부터 눈길을 모은다.

김씨는 형광빛의 실로 이완된 형태의 기하학 공간을 만들어내며, 문씨는 < 연못 >이라는 제목의 피아노음악을 컴퓨터로 재합성해 전시공간을 울리게 된다. 빛이 공간을 의미하고 소리가 시간을 뜻한다고 볼 때 김씨의 설치미술과 문씨의 음악은 시공이 하나로 어우러짐을 상징하게 되는 것이다.

김씨는 형광 실을 수직과 수평으로 교차시키면서도 그들이 접촉해 폐쇄공간을 만들지 않도록 할 계획이다. 감상자들은 마치 정글과 같은 빛의 공간을 조심스레 여행하며 걸어다니게 된다.

문씨의 음악 역시 전시장 전체를 하나의 울림통으로 해 감상자가 음악의 세계로직접 들어오게 한다. 150평 넓이의 전시장 내에는 6개의 스피커가 설치되며 30분 가량의 곡은 시작과 끝이 없이 빙글빙글 돌며 순환하게 된다. 시간의 순환성을 강조하는 동양사상을 음악적으로 표현하겠다는 얘기다.

이번 전시는 시간과 형식에서 기존의 관행을 깬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 개관해 직장인들이 감상할 수 있는 기회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관례에 문제제기를 하겠다는 것. 이번 전시는 오후 1시부터 8시까지 계속된다.

저녁 7시 30분부터 30분간은 현악 2중주가 직접 연주돼 전시의 현실감을 극대화한다. 따라서 이 시간에 전시장에 들르면 미술전시와 현악협연(바이올린 정덕근, 비올라 서의성)을 공짜로 감상하는 즐거움을 맘껏 맛볼 수 있다.

< 벽사전 >은 문설주에 피를 발라 악귀를 쫓는 세시풍속을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새롭게 해석한 이색전시. 판화가, 멀티미디어작가, 비디오 아티스트 16명이 무속적 소재를 사이버 스페이스나 멀티미디어를 통해 새 미술어법으로 구현하게 된다. 서구 일변도로 치닫는 현대미술에 대한 한국적 대응전략을 모색하는 전시라는 게 기획자 임씨의 설명이다.

전시 첫날인 28일 오후 3시에는 문예진흥원 강당에서 민속학자 주강현씨의 강연회가 열려 무속에 대한 이해를 돕는다. [서울=연합]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