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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의 자식들’ 경쟁이 그들을 키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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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최근 주 중국·일본·유엔 대사를 비롯한 외교부 인사가 일단락되면서 외무고시 13회가 전성시대를 열었다. 1979년 입부 이래 격동의 외교 현장을 거치면서 경륜을 축적한 전문 외교관들이 외교통상부와 국가정보원의 고위직에 줄줄이 포진했다.

 외교부는 박석환 제1차관과 민동석 제2차관, 위성락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등 차관(급) 고위 관리 4명 중 3명을 외시 13회가 채웠다. 위 본부장이 2009년 3월 6자회담 수석대표를 맡은 것을 시작으로 민 2차관(2010년 10월), 박 1차관(2011년 2월)이 뒤를 이었다. 나머지 차관급은 외시 12회의 이준규 외교안보연구원장이다. 여기에 전재만 국정원 제 1차장(차관급)도 외시 13회다. 외시 한 기수가 이렇게 요직을 독점하기는 드문 일이다.

 주일 공사와 주중 참사관을 거친 박 차관은 이명박 정부 초기 의전장을 맡은 뒤 지난 2월 지역국·기획조정실 등을 총괄하는 1차관에 발탁됐다. 민 2 차관은 2008년 한·미 쇠고기 협상의 주역으로 협상에서 보여준 소신을 인정받아 다자외교를 담당하는 2차관에 올랐다. 북미국장과 주미공사를 역임한 위 본부장은 자타가 공인하는 북핵 전문가로 정부의 북핵 정책을 총괄하고 있다. 전 차장은 주중국대사관 참사관·공사를 역임한 외교부 내 몇 안 되는 중국통이다.

 이뿐만 아니다. 이혁 청와대 외교비서관과 박노벽 한·미 원자력협정 협상 전담대사도 13회다. 외교부 대변인을 지낸 조희용 전 스웨덴 대사도 내년 서울에서 열리는 핵안보정상회의 준비기획단 대사로 컴백했다. 13회 재외공관장도 적잖다. 이용준 주말레이시아 대사(전 차관보)와 조현 주오스트리아 대사(전 다자외교조정관)는 북한 문제와 다자외교에 밝다. 주스페인 대사를 지낸 조태열 외교부 본부대사도 13회로 통상 분야 최고 전문가로 꼽힌다.

 외시 13회는 외교관 대량 선발시대에 입부했다. 다른 기수들이 20명 내외로 선발된 것과 달리 50여 명씩 들어온 12~15기의 허리에 해당한다. 박정희 정부 말기에 외교관을 시작해 남북 대결 외교부터 북방정책·북핵위기·햇볕정책과 두 차례의 남북 정상회담 등 격동기 외교 현장을 뛰면서 남다른 경험을 쌓았다. 한정된 자리를 놓고 동기들끼리 치열한 경쟁을 해야 해 ‘어둠의 자식들’로도 불렸다.

 지난달 말 인사가 매듭된 주 중국·일본·유엔 대사에도 정통 외교관이 기용됐다. 외시 8회인 이규형 주중 대사는 외교부 2차관과 주러 대사를 지냈다. 주일 대사로 내정된 신각수 전 1차관(외시 9회)은 지난해 유명환 전 외교부 장관 딸의 특채 파동 이후 올 초 관직에서 물러난 뒤 화려하게 복귀했다. 김숙 유엔 대사(12기)는 북미국장과 국정원 1차장을 거친 미국통이다. 이들의 인선에는 주요국 대사에 전문 외교관이 중용돼야 한다는 김성환 외교부 장관(외시 10회)의 소신이 작용했다는 얘기가 나온다. 정권 실세가 강력히 밀었다는 지적도 있다.

강찬호·권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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