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거짓말 일관한 건교차관, 몸통 밝혀야

중앙일보

입력

러시아 유전사업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검찰이 김세호 전 건설교통부 차관을 특경가법상 배임 혐의로 구속함으로써 수사가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감사원이 수사를 요청한 6명 가운데 해외로 도피한 허문석(코리아크루드오일 대표)씨를 제외한 5명이 구속수감되고 배후로 의심받아 온 정치권 인물들에 대한 소환 조사가 임박했기 때문이다.

구속영장에 따르면 김 전 차관은 철도청장으로 재직하면서 지난해 7월 우리은행에 신속한 대출을 당부하고, 9월 초 건교부 차관으로 옮긴 뒤에도 유전사업 진행 과정을 수시로 보고받는 등 사실상 사업을 총괄해 왔다는 것이다. 그는 또 지난해 8월 왕영용 전 철도공사 사업개발본부장에게 유전사업 현황을 청와대에 보고토록 지시했으며 산업자원부 장관에게도 지원을 요청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럼에도 김 전 차관은 그동안 "사업 초기 보고를 받고 신중하게 추진하라고 지시한 것밖에 없다"고 부인해 왔다. 수사 결과로 보면 그는 거짓말을 해 온 것이다.

김 전 차관이 왜 이처럼 거짓말을 했고, 사업 추진에 적극적이었는지를 밝히는 게 이번 사건의 의혹을 푸는 열쇠다. 특히 그가 유전사업과 업무 관련성이 별로 없는 건교부 차관으로 자리를 옮기고서도 사업 추진 상황을 수시로 점검했다면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거절하기 어려운 누군가의 부탁이나 요청을 받고 이 사업에 뛰어들었고, 그를 보호하기 위해 거짓말을 해 왔다는 의심을 지울 수 없다.

수백억원이 필요한 국책사업을 당시 철도청장의 독자적인 판단으로 추진했다고 보는 것도 상식에 반한다. 청와대에 보고하고 산자부에 도움을 요청한 것으로 확인된 이상 청와대나 정부도 유전사업과 무관하다고 잡아뗄 수만은 없는 형편이다.

검찰은 유전사업 추진 과정에 개입한 배후 인물들을 철저히 규명해야 한다. 청와대와 산자부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를 해야 한다. 그러지 않고선 '몸통'은 놔두고 '깃털'만 처벌했다는 비판을 면키 어렵다. 수사가 끝난 뒤 감사원의 부실 감사에 대해서도 책임을 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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