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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통운 4000명 vs. DHL 47만 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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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이창양
KAIST 경영대학 교수

정보통신 기술에 이어 생명과학 기술 같은 첨단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하이테크 산업의 시대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철강·조선 등 그동안의 주력산업들은 전통산업 또는 굴뚝산업으로 불리기까지 한다. 그러나 하이테크 산업과 전통산업의 이분법이 상식으로 통용되는 과정에서 우리가 놓치고 있는 보석 같은 산업이 있다. 물류산업이 그것이다.

 우선 물류산업은 엄청난 잠재력을 가진 성장산업이다. 글로벌 시장의 등장과 확대에 이어 아웃소싱과 글로벌 공급망 체계의 확산, 그리고 온라인 구매의 보편화로 물류산업의 성장세는 가속화되고 있다. 미국의 UPS와 독일의 DHL, 일본의 닛폰 익스프레스 같은 글로벌 물류 전문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두고 치열하게 경쟁하고 있고, 중국도 이 대열에 합류하기 위해 물류기업 육성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시장 규모가 커지는 것과 함께 물류산업은 빠르게 지식산업으로 변모하고 있다. 단순히 화물을 지리적으로 이동시키는 역할에서 벗어나, 이제는 세계 시장에서 구매 및 재고 관리는 물론 공급망 관리 등 첨단 서비스까지 제공하고 있다. 세계적인 물류 전문기업인 DHL과 UPS의 경우 공급망 관리에서 나오는 수입이 이미 총매출의 30%에 육박하고 있다. 이와 함께 세계 곳곳의 시장과 기업 및 소비자를 시간적·공간적으로 연결하는 네트워크 산업인 물류산업은 더욱더 정보통신 기술 등 첨단지식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국가경제나 기업의 경쟁력을 높여주는 요소로서도 물류의 중요성은 간과하기 어렵다. 우리 경제의 물류비는 국민총생산의 12% 수준으로 선진국의 7~8% 수준에 비해 상당히 높다. 기업의 물류비도 매출액의 9~10% 수준으로 선진국 기업들에 비해 높은 편이다. 유가의 지속적인 상승 추세와 물류량 증가에 따른 물류 인프라의 혼잡 등을 고려할 때 앞으로 기업의 물류비 부담은 지속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경제와 기업 부문의 경쟁력을 위해서라도 세계적인 수준의 경쟁력을 갖춘 전문 물류기업이 나와야 하며, 물류 인프라의 확충이 절실하다.

 그러나 우리 물류산업은 아직 갈 길이 멀다. 무엇보다도 세계적인 수준의 물류 전문기업이 없다. 우리나라 5대 물류 전문기업의 매출액 합계는 세계 5위인 페덱스(FedEx)의 19% 수준이고, 우리나라 1위 물류기업인 대한통운의 고용 규모는 4000명 수준으로 DHL의 47만 명과는 비교가 되지 않는다.

특히 우리 물류기업들은 대부분 자신이 속한 그룹의 내부 물류 기능을 수행하는 형태에 머물러 있다. 내부 물류에 안주하는 것은 글로벌 물류 전문기업으로 도약하려는 동력을 약화시키고 제3자 물류 시장을 위축시켜 물류 전문기업의 성장을 저해한다.

 물류산업의 도약에는 우선 두 가지가 필요하다. 무엇보다도 내부 물류에 안주하지 않고 세계적인 물류 전문기업으로 도약하고자 하는 기업가 정신이 있어야 한다. 조선·철강·전자처럼 우리의 주력산업도 위험을 감수하면서 세계 시장에 도전한 기업가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이와 함께 정부 정책 역시 물류산업의 성장성과 지식산업화, 그리고 글로벌 물류 경쟁시대에 걸맞게 수정되고 강화돼야 한다.

이창양 KAIST 경영대학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