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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젠-20 아버지’ 스창쉬의 역설 … 미국서 배워 미국 위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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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7일 오후 4시25분(현지시간) 중국 쓰촨(四川)성 청두(成都) 소재 항공기 디자인 연구소 비행장. 회색빛 전투기 한 대가 활주로를 가볍게 차고 날아올랐다. 중국이 자랑하는 스텔스 전투기 ‘젠(殲)-20(J-20)’이다. 중국 항공산업 60주년 기념일에 맞춰 두 번째 시험비행에 나선 길이었다.

 젠-20은 올해 중국이 세상에 공개한 야심작이다. 지난 1월 11일 로버트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미·중 군사회담을 위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첫 번째 시험비행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당시 미국에서는 게이츠 장관의 방중에 맞춰 중국이 일부러 젠-20을 시험비행하는 방법으로 강화된 공군력을 과시한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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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이 차세대 스텔스 전투기 젠-20을 보유하게 된 데는 한 원로 과학자의 힘과 열정이 결정적으로 작용했다. 올해 91세인 스창쉬(師昌緖·사창서) 중국과학원·공정원 원사가 그 주인공이다. 중국 언론에 따르면 그는 젠-20 엔진의 프로펠러를 만드는 데 필요한 특수합금을 제조함으로써 중국이 독자기술로 차세대 전투기를 제작하는 것을 가능케 했다. 그래서 중국 사람들은 그를 ‘젠-20의 아버지’로 부른다. 

 아이러니하게도 오늘의 스창쉬가 있기까지 미국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 스창쉬는 1948년 국비유학생 시험에 합격해 국민당정부가 발행한 여권을 갖고 미국에 들어갔다. 미주리대와 노트르담대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그의 국적이 문제가 됐다. 중화인민공화국이 수립되자 스창쉬를 비롯한 미국 내 중국 유학생들의 여권이 효력을 잃은 것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전쟁까지 발발해 미국과 중국은 적국이 됐다. 미 이민귀화국은 유학생들의 출국을 금지시켰다. 기밀 취급된 물질을 연구한 유학생들이 귀국 후 중국 군사 분야에서 일할 수 있다는 것이 이유였다.

 MIT에서 연구원 생활을 하던 스창쉬는 귀국 투쟁에 나섰다. 출국 허가를 요청하는 탄원서 200여 통을 인쇄해 언론기관·국회의원·사회단체에 보냈다. 54년 봄 저우언라이(周恩來·주은래) 총리가 제네바회담에 참석한다는 소식에 도움을 요청하는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 8월 10일에는 아이젠하워 대통령에게 편지를 썼다. 미·중 간에 협상이 시작됐다. 당시 MIT에서 초고강도 강철을 연구하던 코언 박사가 그에게 물었다. “왜 귀국하려 하는가? 임금도 적고 지위도 낮지 않은가?” 스창쉬는 “나는 중국인이다. 미국에서 나 같은 사람은 매우 많다. 중국에서는 나와 같은 사람이 매우 적을뿐더러 많이 필요하다”고 대답했다. 55년 봄 미국과 중국은 한국전쟁에서 포로로 잡힌 공군 조종사 15명을 포함한 미국인 56명과 미국의 중국 유학생 76명의 교환에 합의했다.

 귀국 후 스창쉬는 선양 중국과학원 금속연구소에 배치됐다. 당시 중국은 국제적으로 고립된 상태였다. 니켈과 크롬이 절대적으로 부족했다. 스창쉬는 이를 대체할 강철합금 개발에 몰두했다. 곧 강철고온합금808(GH135) 개발에 성공했다. 항공기 터빈 엔진과 미사일 ‘둥펑(東風)-13’ 엔진에 이 합금이 사용됐다.

 78년부터 스창쉬는 중국공정원 창설을 위해 노력했다. 국가의 과학진흥 정책에 간여한 것이다. 92년 스창쉬를 포함한 5명의 중국과학원 원사가 중국 경제 발전에는 공학도가 필수이며 그들의 지위를 높여 줘야 한다고 주장하며 중국공정원 설립 건의서를 중앙정부에 제출했다. 94년 공정원이 설립됐다. 일흔네 살의 스창쉬는 공정원 초대 부원장에 선출됐다.

 스창쉬는 워크홀릭이다. 은퇴한 뒤 지금까지 연구실로 정시에 출퇴근한다. 지난해 90세의 고령에도 지방에서 열린 각종 학술대회와 회의에 10차례나 참석했다. 스창쉬는 인생의 성공요소로 네 가지를 꼽는다. ▶정확한 인생관 ▶모든 강물을 받아들이는 바다처럼 넓은 도량 ▶부지런함 ▶기회를 만나는 것이다. 그의 말이 맞았다. 그는 평생 애국심과 부지런함을 발휘했고 국가는 그에게 성공의 기회를 줬다.

신경진 중국연구소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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