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첨단 인터넷 범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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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달 미국 증권거래위원회는 20대 청년 셋을 증권사기 혐의로 고발했다. 인터넷 증권시장에 헛소문을 퍼뜨려 불과 한 시간만에 수십만달러를 챙긴 이 사건은 인터넷이 사기꾼의 천국임을 보여준다.

세 청년은 11월 초순 파산지경의 한 조그만 회사 주식 몇만 주를 긁어모았다. 그리고 금요일인 12일 주당 13센트로 폐장된 뒤 ''작전'' 에 나섰다.

50개의 아이디로 중요한 증권게시판 세 곳에 5백여 꼭지의 글을 올려 이 회사의 인수.합병계획이 진행 중인 것처럼 소문을 냈다.

그리고 월요일 개장하자마자 자기들 사이에 높은 값으로 사고팔기 시작했다. 주가는 30분만에 15달러선으로 올랐고 이들은 주식을 팔아치웠다.

인터넷의 익명성과 정보전파의 신속성이 이런 사기를 가능하게 해준다. 경제호황과 자본공급 과잉 속에서 수백배, 수천배의 급격한 가격상승이 다반사로 일어나니 완전히 확인된 정보가 아니더라도 가능성만 보이면 달라붙는 투자자들이 있다.

순간적으로 전파되는 정보를 ''운좋게'' 일찍 포착한 사람들이 몇초라도 빨리 달려들어 이익을 챙기려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내에 범인 추적이 시작되고 며칠 내에 세 사람이 체포된 것을 보면 인터넷에는 범죄를 감추기 어려운 투명성도 있다. 시스템이 통째로 무너져버리지 않는 한 인터넷상의 행위는 증거인멸이 불가능한 것이다.

행정당국과 수사기관이 인터넷의 특성을 익혀감에 따라 ''무법천지'' 인터넷도 고삐가 잡혀가고 있다.

인터넷범죄가 번성하는 까닭은 관할권이 미비한 데 있다.
현실공간 범죄의 관할권은 국가와 지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가상공간에는 그런 경계선이 없다. 가상공간의 세계화와 이에 대응하는 관리방법의 세계화 사이에 시간차가 있고, 범죄자들은 그 틈을 비집고 다니는 것이다.

며칠 전 미국 증권거래위원회가 제소한 재미동포 박연수씨 사건은 인터넷 범죄의 모호한 경계선을 보여주는 사례다. 朴씨의 혐의는 수천명 고객에게 월 2백달러씩 받고 투자자문을 하면서 고객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고 자기 이익을 챙겼다는 것이다.

朴씨측은 표현의 자유를 들어 무죄를 주장한다.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대로 할 뿐 그 얘기를 들으러 월 2백달러를 내든 말든, 그 얘기를 믿고 주식을 사든 말든 고객들 마음이란 것이다.

실제 朴씨의 고객들은 그에게 별 피해의식을 느끼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朴씨의 자문이 월 2백달러 가치가 있었다는 것이다.

朴씨가 만약 증권거래소에 등록된 투자자문인이었다면 그 행위는 분명히 배임죄에 해당된다. 증권거래위원회는 朴씨가 실질적으로 투자자문인 역할을 했으니 같은 책임을 물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터넷상의 ''실질적'' 역할에 대한 책임추궁이 어떻게 이뤄질지, 시대의 첨단을 달리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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