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애물단지 뉴타운, 근본적 수술이 필요하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뉴타운 사업이 애물단지로 전락했다. 2002년 시작된 뉴타운 붐은 몇 차례 선거를 거치면서 표(票)를 잡기 위한 정치적 수단으로 변질됐다. 서울시에만 241개 촉진구역이 지정됐고, 수도권 일대의 399개 구역에서 뉴타운 바람이 불었다. 뉴타운 이야기만 나와도 집값이 뜀박질했다. 그러나 지금은 딴판이다. 지분 가격이 크게 오르면서 수익률을 제대로 맞추기 어렵게 됐다.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으면서 수도권 뉴타운의 85%가 첫 삽조차 뜨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사면초가에 빠진 뉴타운 사업은 더 이상 방치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사업이 지연되면서 집을 제때 수리하지 않아 빠른 속도로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다. 장기간 재산권 행사가 제한되는 바람에 주민들의 불만도 대단하다. 일부 주민들은 “차라리 뉴타운을 해제해 달라”며 실력행사에 나서고 있다. 주민들 간의 갈등과 반목도 위험 수위에 달했다. 정치권에선 뉴타운 해제를 조건으로 조합이 쓴 비용을 예산으로 보전해주자는 법안까지 나오는 등 어지러운 상황이다.

 이런 와중에 어제 서울시가 ‘신(新)주거정비 5대 추진방향’을 발표했다. 이미 지정된 뉴타운 사업은 유지하되, 시간을 끌면서 주민들의 불만을 달래보려는 계산이 깔려 있다. 한마디로 엉거주춤한 절충안이다. 그 밑에는 뉴타운 지구를 공식 해제하면 부동산 값이 폭락해 주민들의 저항에 직면할 것이라는 두려움이 깔려 있다. 그렇다고 사업속도를 높이려면 사업성이 떨어진 부분만큼 주민들이 부담해야 할 몫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 한마디로 뉴타운 사업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진 것이다.

 뉴타운은 부동산 개발로 한몫 잡으려는 허황된 기대심리와 정치인들의 무책임한 선동이 야합한 실패작이다. 행정당국도 무분별하게 뉴타운 지정을 남발한 게 사실이다. 그렇다고 뉴타운 사업을 이대로 접을 수는 없다. 도심 주거환경 개선은 포기할 수 없는 목표이기 때문이다. 노후 불량주거지를 그대로 놓아두거나 마구잡이 개발을 방치해서도 안 된다. 장기적으로 한계에 부딪힐 도심 주택공급에 숨통을 틔우려면 뉴타운 말고는 다른 대안이 없다. 고통이 따르더라도 뉴타운 사업의 근본적인 수술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일단 옥석 가리기부터 시작해야 한다. 여러 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개발에 착수하면 사업이 제대로 진행될 리 없다. 가장 시급한 뉴타운 지역부터 공공부문의 지원을 강화하고 주민들과의 고통분담을 통해 사업을 정상궤도에 올려놓아야 한다. 시급성이 떨어지는 지역은 과감하게 뉴타운 지구에서 해제해야 할 것이다. 어차피 맞을 매라면 먼저 맞는 게 좋다. 지금처럼 대규모 뉴타운에 지나치게 집착할 필요도 없다. 과감하게 건축 규제를 풀어 기존의 소규모 주택단지를 손쉽게 확장하거나 개축하는 길을 열어줘야 한다. 뉴타운 혼선은 결국 정치권과 정부가 최종 책임을 져야 할 사안이다. 주민들과 가슴을 터놓고 만나 뉴타운 사업을 시급히 재정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