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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리포트] 쓰레기로 뒤집어 본 경제…연 450조원 세계시장의 재발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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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우리가 배출하는 생활폐기물은 하루 5만900t(2009년 환경부 통계 기준). 국민 1인당 1.02kg꼴이다. 공장이나 건설 현장이 아닌 가정과 식당·사무실 등에서 쏟아내는 것만도 이만큼이나 된다. 쓰레기는 경제활동의 결과물이다. 발생량과 내용물을 보면 우리 경제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자원 전쟁 시대를 맞아 쓰레기 재활용의 필요성은 갈수록 커지고 있다. 신문·캔처럼 분리 수거하는 재활용품(하루 1만5500t) 얘기가 아니다. 종량제 봉투에 담아 버리는 쓰레기(2만1700t)나 음식물쓰레기(1만3700t)도 재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내 쓰레기 재활용 사업은 아직 체계화가 덜 된 상태다. 당장 쏟아지는 쓰레기를 처리하는 데 급급하다 보니 재활용의 질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그런 가운데 쓰레기로 연료나 사료·퇴비를 만드는 시도가 곳곳에서 결실을 보고 있다. 환경부의 박미자 자원순환정책과장은 “세계 재활용 관련 산업 규모가 450여조원인 만큼 기업들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차진용 산업선임기자

◆쓰레기가 고급 연료 된다=최근 인천시 백석동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내 가연성폐기물자원화공장. 9500여㎡ 부지에 4층 건물 높이로 지어진 공장에 들어서자 오징어 굽는 냄새가 풍겨온다. 3층 높이에 설치된 제어실 창문에서 보니 종량제 봉투에 담겼던 쓰레기가 컨베이어 벨트를 타고 자동 분류돼 종이·비닐류 등 가연성 물질만 건조장치로 들어가는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쓰레기가 고형 연료(RDF: Refuse Derived Fuel)로 재탄생하는 현장이다.

 이처럼 쓰레기를 에너지원으로 재활용하는 사업이 곳곳에서 추진되고 있다. 매일 종량제 봉투에 담겨 버려지는 쓰레기 2만1700t 중 가연성 쓰레기가 1만8000t가량 되기 때문이다. 이런 가연성 쓰레기를 선별해 파쇄한 뒤 건조, 압축하면 코르크 형태의 RDF가 만들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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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는 지난해 4월 262억원을 들여 하루 처리용량 200t 규모의 RDF 설비를 완공하고 가동 중이다. 이곳에서 쓰레기 200t이 매일 70t가량의 RDF로 탈바꿈한다. 이는 당초 예상 생산량(100t)엔 못 미치는 것이다. 쓰레기의 수분 비율(함수율)이 예상치의 두 배가 넘는 45~50%여서 생산성이 떨어지는 탓이다. 그래도 생산한 RDF의 열량은 ㎏당 4800칼로리 이상으로 무연탄과 엇비슷하다는 게 공장 책임자의 설명이다. 생산된 RDF는 전량 전주페이퍼(옛 전주제지)에 t당 2만5000원에 판다. RDF 생산 과정에 들어가는 비용은 t당 4만2000원. ‘밑지고 장사한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관리공사의 최병철 이사는 “쓰레기의 t당 소각 처리비용이 7만~8만원이기 때문에 RDF 생산단가가 결코 비싼 게 아니다”고 강조했다. 그는 “소각 처리 과정에서 얻는 에너지보다 RDF로 얻는 에너지가 두 배 이상 많기 때문에 재활용 측면에서도 유리하다”고 설명했다.

 관리공사는 2016년까지 RDF 처리 용량을 2200t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렇게 되면 매립지로 반입되는 종량제 쓰레기(6000~7000t)의 3분의 1은 RDF 원료로 쓰이게 된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 외에도 강원도 원주가 하루 80t 처리 용량의 RDF 처리 공장을 운영하고 있다. 부산·대구·대전·포항·나주 등의 지자체도 이 설비 건설을 추진 중이다.

 이와 함께 음식물쓰레기나 음폐수에서 바이오가스를 뽑아내는 사업에도 부산 생곡자원화시설(하루 음식물쓰레기 처리 용량 200t) 등 40여 곳이 참여 중이다. 수도권매립지관리공사의 경우 하루 500t의 음폐수를 처리할 수 있는 바이오가스화 시설을 이르면 올해 말 준공할 계획이다. 

 ◆사료로 만들 땐 영양소 유지가 경쟁력=환경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음식물 재활용률은 97%에 달한다. 하지만 이는 전국 260여 개 사료·퇴비화업체(지자체 포함)가 수거하는 물량을 기준으로 산정한 것이어서 실제 재활용률은 훨씬 떨어진다는 게 업계의 진단이다.

 음식물쓰레기 재활용의 최대 걸림돌은 염분이다. KAIST 양지원(생명화학공학과) 교수는 “한국 음식의 염분 농도는 2~3%, 높게는 4~5%까지 된다”며 “염분 농도가 0.5% 이상 되면 미생물이 못 살기 때문에 자연 처리가 어렵고, 직접 사료나 퇴비로 만들기도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러다 보니 사료로 만들려면 음식물쓰레기를 압착해 음폐수(음식물쓰레기 폐수)를 빼낸 뒤 깨끗한 물로 씻어내 염도를 낮춰야 한다. 또 다른 종류의 쓰레기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게다가 사료화 업체 대부분은 기술력이 떨어져 가공품을 사료 공장이나 수요 농가에 사료 부재료로 무상 공급하는 실정이다. 퇴비화 업체도 마찬가지 신세여서 돈을 받고 퇴비를 공급하는 업체는 10%도 안 된다. 이런 가운데 몇몇 사료·퇴비화 업체는 독자적인 기술개발로 상품화에 성공해 눈길을 끌고 있다.

 부산 기장에서 음식물쓰레기 사료화 공장을 가동 중인 엔바이오컨스는 옥수수를 섞어 급속 건조하는 방식으로 염분 문제를 해결했다. 염도를 낮추는 세척 과정이 없어 음폐수 발생량도 크게 줄였다. 여러 단계를 걸쳐 이물질을 제거한 음식물쓰레기를 0.5㎝ 이하로 잘게 썬 뒤 옥수수를 절반가량 섞어 특수 설계된 건조기에서 급속 건조하면 사료가 완성된다. 생산품은 돼지 농가에 일반 사료보다 30%가량 싼 ㎏당 400원에 공급하고 있다. 이 회사의 성일종 사장은 “음식물쓰레기의 영양소가 파괴되지 않도록 급속 건조하는 게 노하우”라고 설명했다. 그는 “음식물쓰레기 수거에 관심을 갖도록 호칭부터 ‘남는 음식물 자원’으로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퇴비화 업체 중에선 조원산업이 두각을 보이고 있다. 이 업체는 경기도 포천 지역에서 수거한 쓰레기를 1~6개월 발효시킨 뒤 염분을 줄이기 위해 생석회·톱밥 등을 섞어 건조시켜 퇴비로 탈바꿈시킨다. 생산품은 ‘조원바이오소일’이란 브랜드로 농협에 한 포(20㎏)당 2900원에 납품하고 있다. 이 회사 추동윤 부장은 “음식물 자체에 영양분이 많기 때문에 분뇨로 만든 퇴비보다 훨씬 효능 좋은 제품이 된다”며 “경기도는 물론 전남 농가에서까지 우리 제품을 쓰고 있다”고 말했다.

◆RDF(Refuse Derived Fuel)=생활쓰레기 중 종이·목재·비닐류 등 가연성물질만 걸러내 건조, 성형하는 과정을 거쳐 만든다. 코르크 형태로 화력발전소 등의 보조연료로 사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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