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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knowledge (274) 전주국제영화제 ‘이런 사람은 피해야 할 10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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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4면

‘세계 대안영화와 독립영화의 산실’을 표방하는 전주국제영화제가 12회를 맞았습니다. 2000년 출범한 전주영화제는 국내 영화제 중 부산국제영화제 다음가는 영화제로 자리를 굳힌 전주의 대표적인 문화상품입니다. 28일~5월 6일 열리는 이번 영화제에선 38개국 190편이 상영됩니다. 작품 선정을 맡은 유운성·조지훈·맹수진 프로그래머로부터 10편을 추천받았습니다. ‘이런 사람이라면 피해야 할 영화’라는 컨셉트로 평소와 조금 색다르게 선정을 부탁했습니다. 지난 11년에 걸쳐 전주영화제가 발굴한 영화와 영화인도 꼽아봤습니다.

기선민 기자

영화 ‘산정호수의 맛’


1. 금연을 시작한 사람이라면-‘스무 개비의 담배’(미국)

전 세계 곳곳에서 20명의 사람이 담배 한 개비씩을 피운다. 이들은 각자 담배를 피우는 시간 동안 아무 대사도 없이 몸짓과 표정만으로 관객에게 자신을 드러낸다. 흡연을 권장하는 영화는 아니다. 다만 이 영화를 보고 나올 때 강한 흡연 욕구를 느낀 당신의 손엔 어쩔 수 없이 담배가 다시 들려있을지 모른다. 다큐멘터리 작가인 제임스 베닝 감독이 제시하는 일종의 게임 같은 영화다.

2. 금주를 시작한 사람이라면-‘술이 깨면 집에 가자’(일본)

알코올 중독으로 이혼당하고 아이들과도 떨어져 살아야 하는 주인공. 건강이 악화돼 끝내 입원하게 된 그는 입원생활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교류, 가족들의 사랑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찾는다. 연기파 배우 아사노 다다노부의 실감나는 음주 연기에 절로 한잔 생각이 난다. 일본의 보도 카메라맨 가모시다 유타카의 자전적 소설이 원작. 히가시 요이치 감독.

3. TV 음식소개 프로를 유난히 즐겨보는 사람이라면-‘트루맛쇼’(한국)

“나는 TV에 나오는 맛집이 왜 맛이 없는지 알고 있다”는 도발적 내레이션으로 시작되는 영화. 맛집 프로그램들의 실상을 파헤치려 직접 식당을 차리고 실제로 출연을 섭외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오늘도 새로운 맛집, 새로운 메뉴를 알아내기 위해 TV 채널을 돌리고 인터넷 블로그를 검색하는 사람이라면 이 영화에 눈을 질끈 감길. ‘모르는 게 약’이다. 김재환 감독.  

4. 2시간 이상 극장에 앉아있기 힘든 사람이라면-‘카라마이’(중국), ‘카를로스’(프랑스·독일), ‘리스본의 미스터리’(포르투갈), ‘소단큘라 포에버’(핀란드)

신체 특성상 화장실을 자주 가야 한다거나 러닝타임 2시간이 넘어간 영화는 ‘반지의 제왕’ 이후 안 봤다는 사람들에겐 권하고 싶지 않은 네 작품. 어린아이들이 공연하던 극장에서 일어난 1994년의 대화재를 소재로 한 ‘카라마이’의 상영 시간은 6시간에서 딱 4분 모자란다. 냉전시대 유명한 킬러 카를로스 자칼의 일대기 ‘카를로스’는 5시간30분, 핀란드 작은 마을에서 열리는 영화제에서 만난 감독들의 대화를 담은 ‘소단큘라 포에버’는 4시간30분, 인간의 욕망과 삶의 비밀을 다룬 수작 ‘리스본의 미스터리’(사진)는 4시간26분이다. 꼭 도전해야겠다면 화장실을 먼저 다녀오고 음료수는 마시지 않는 게 좋겠다.

5. 아직도 주식으로 돈 벌 수 있다고 믿는 개미투자자라면-‘인사이드 잡’(미국)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초래한 미국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주식시장이 제시하는 장밋빛 미래를 아직도 순진하게 믿고 요동치는 주식 그래프에 인생 그래프를 맡긴 사람이라면 이보다 더 암울한 영화는 없을 듯. ‘본’ 시리즈의 맷 데이먼이 인상적인 내레이션을 선보인다. 올해 아카데미 최우수다큐멘터리상 수상작이다. 찰스 퍼거슨 감독.

6. 지금 사랑을 시작한 사람이라면-‘씨민과 나데르, 별거’(이란)

한때는 깊이 사랑했을 부부의 싸움, 그리고 별거가 걷잡을 수 없이 커지면서 윤리와 종교적 신념, 성(性)과 계급갈등 같은 사회문제로 번진다. 부인 씨민은 딸을 위해 이민을 가고 싶어하지만 남편 나데르는 알츠하이머에 걸린 아버지 때문에 이란에 남길 원한다. 씨민은 이혼신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친정으로 가버린다. 올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 수상작.

7. 싱글남, 싱글녀라면-‘독신남’(중국)

베이징에서 멀리 떨어진 한 시골 마을, 노총각 할아버지 네 명이 젊은 시절을 회상한다. 사랑을 꿈꾸던 그때와 외롭기 짝이 없는 지금은 너무나 대조적이다. 하오제 감독은 자신의 고향을 무대로 시골에서 펼쳐지는 노년의 삶을 유머러스하고 정감 있게 담아낸다. 시골 할아버지들의 현재가 당신의 미래와 겹쳐지는 순간, 당신의 눈엔 눈물이 고일 것이다.

8. 위험한 사랑을 꿈꾸는 사람이라면-‘미성년’(한국), ‘산정호수의 맛’(한국)

‘똥파리’ 양익준 감독의 ‘미성년’은 잘 알지도 못하는 여고생 때문에 인생 완전히 꼬인 남자의 멜로드라마다. ‘지금 이대로가 좋아요’ 부지영 감독의 ‘산정호수의 맛’은 짝사랑하던 남자와 같이 왔었던 여행지를 다시 찾은 한 중년여성의 청승맞은 여행기다. 짜릿한 일탈 대신 시련과 씁쓸함으로 가득한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지금 내 옆의 그 사람에게 감사하게 될 것이다.

9. 무신론자라면-‘신의 아들’(필리핀·덴마크)

‘신은 없다’라고 자신 있게 말하던 사람들도 ‘신의 아들’을 본다면 다소 혼란을 느낄지 모른다. 픽션과 다큐의 경계를 넘나들며 능청스럽게 지금 당신이 믿고 있는 것을 다시 한번 의심하게 만드는 영화니까. 금발의 소인(小人)이 사람들의 병을 고치고 신의 명령을 전파하며 자신을 신의 아들이라고 주장한다. 믿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카븐 드 라 크루즈, 마이클 노어 공동감독.

10. 가족과 함께 온 관객이라면-‘고백’(한국), ‘가족X’(일본)

잔인하거나 선정적이지도 않은데 가족과, 특히 부모님과 같이 본다면 왠지 불편할 영화. 유지영 감독의 ‘고백’(사진)은 독실한 기독교 신자 박씨가 초등학생 아들 친구로부터 낯뜨거운 고백을 받게 되는 내용. 아들 친구의 고백, 진담일까 농담일까. 요시다 고키의 ‘가족X’에는 세상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는 가장, 비정규직 아들, 정체성을 잃어가는 아내 등 해체돼 가는 가족이 나온다.

전주영화제가 발굴한 영화, 영화인
‘블랙스완’ 아로노프스키 감독 2000년 데뷔작 한국서 첫선

작년 출품 ‘레인보우’ 도쿄영화제 대상

영화제는 단순히 영화를 상영하는 자리가 아니다. 영화와 영화인을 발굴하는 역할도 중요하다. 어떤 영화인의 어떤 영화를 초청하느냐는, 관객몰이는 물론 영화제의 위상을 결정하는 중요한 문제다. 라스 폰 트리에, 빔 벤더스, 데이비드 크로넨버그, 거스 밴 산트 등 이른바 거장으로 불리는 감독들은 60년 넘는 역사의 칸영화제가 발굴하고 키운 스타들이다. 10년 후, 20년 후 전주영화제가 키운 스타는 누가 될까. 전주영화제가 아니었으면 관객과 만나지 못했을 영화와 영화인을 소개한다.

2000년 세계 무대에서 주목받는 아시아의 도전적인 작품이 ‘아시아 인디영화 포럼’에서 소개됐다. ‘오늘 흐림’(야마시타 노부히로), ‘샤오샨의 귀가’(지아장커), ‘마/더’(스와 노부히로)등이다. 봉준호 감독의 데뷔작 ‘플란더스의 개’, 류승완 감독의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 ‘블랙 스완’의 대런 아로노프스키(사진)의 데뷔작 ‘파이’도 전주에서 한국관객과 처음 만났다.

2001년 개막작 ‘와이키키 브라더스’는 주류에 편입되지 못한 변두리 인생을 통해 사회의 모순을 드러내 호평을 받았다. 지난해 칸영화제 황금종려상 수상자인 아핏차퐁 위라세타쿤의 ‘정오의 낯선 물체’는 전주영화제의 국제적 인지도를 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2002년 미제로 남아있던 김대중 납치사건을 다룬 사카모토 준지의 ‘KT’가 개막작으로 선정돼 화제를 뿌렸다. 노년의 성과 사랑을 가감 없이 그린 박진표 감독의 ‘죽어도 좋아’도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조명을 받았다.

2003년 국가인권위원회가 제작한 인권영화 ‘여섯 개의 시선’이 예매 하루 만에 매진되는 열기를 보였다. 박찬욱·임순례·박광수·여균동·박진표·정재은 등 이름난 감독이 각자의 스타일로 우리 사회에 만연한 인권문제를 조명했다. 이후 연례적인 프로젝트가 됐다.

2004년 아시아 최초로 기획된 ‘쿠바영화특별전’이 인기를 끌었다. 토마스 구티에레스의 ‘저개발의 기억’, 페르난도 페레스의 ‘스위트 하바나’, 움베르토 솔라스의 ‘루시아’ 등 17편으로 구성된 이 특별전은 전국 순회상영, EBS 방영을 거치며 쿠바영화 붐을 이끌었다.

2005년 마누엘 디 올리베이라(‘제5제국’), 장 뤼크 고다르(‘영화사-선택된 순간들’), 올리버 스톤(‘피델 카스트로를 찾아서’), 잉마르 베리만(‘사라방드’) 등 ‘교과서’라 불릴 만한 쟁쟁한 영화인이 라인업에 포함됐다.

2006년 김영남 감독의 데뷔작인 ‘내 청춘에게 고함’이 폐막작으로 상영됐다. 같은 해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이 작품은 넷팩상과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했다.

2007년 한국의 젊은 독립영화 감독들을 발굴하려는 디지털 단편 프로젝트 ‘숏숏숏’이 시작됐다. 김종관·손원평·함경록 감독 3명이 독특한 영화언어로 완성한 세 편은 로테르담 영화제 등에 초청받았다.

2008년 노영석 감독의 ‘낮술’이 최고상인 JJ스타상을 받았고 이후 극장개봉에서 관객 1만 명을 넘는 바람을 일으켰다. 김동주 감독의 ‘빗자루, 금붕어 되다’, 이승준 감독의 ‘신의 아이들’ 등 독립영화를 발굴했다.

2009년 신동일 감독의 ‘반두비’, 이서 감독의 ‘사람을 찾습니다’가 호평을 받았다.

2010년 신수원 감독의 ‘레인보우’, 박동현 감독의 ‘기무: 기이한 춤’ 등 독립영화가 역시 눈길을 끌었다. ‘레인보우’는 도쿄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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