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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18개 악단의 서울 나들이,눈과 귀가 행복한 화음의 향연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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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3호 05면

예술의전당은 매년 전국 20여 개 오케스트라를 모아 교향악 축제를 연다. 18개 악단이 참여하는 2011 교향악 축제가 1일 시작했다. 19세기의 산물인 교향악이 21세기 대한민국의 방방곡곡까지 스며 있다는 사실은 새삼 감개무량하다. 초반 7개 악단의 연주를 듣고 느낌을 적어 본다.
축제는 서울시립교향악단의 무대로 시작했다. 정명훈의 지휘를 교향악 축제에서 처음 만나는 기회에 객석은 매진사례를 이뤘다. 서현석이 지휘하는 강남심포니와 브루흐의 바이올린 협주곡을 협연한 클라라 주미 강은 아직 20대 초반이지만 노련한 음악성으로 청중의 호흡과 맥박을 주도했다. 쇼스타코비치의 교향곡 5번도 이 악단이 예전에 베토벤의 음반으로 보여준 탁월한 앙상블이 결코 우연이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2011교향악 축제, 20일까지 예술의전당

경상북도도립교향악단을 지휘한 박성완은 늘 음악을 완벽히 외워 악보를 보지 않고 연주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슈트라우스의 ‘돈 주앙’은 물론이고 현대곡인 슈니트케의 협주곡까지도 전적으로 기억에 의존해 지휘했다. 또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온갖 풍경을 해학적으로 압축한 스트라빈스키의 ‘페트루슈카’를 열정과 진지함ㆍ성실함으로 멋지게 소화했다.

국악관현악단의 지휘자로 잘 알려진 임평용은 성남시향의 새 음악감독으로, 이 젊은 악단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이날 협연자 권혁주는 진지하고 능수능란한 쇼스타코비치의 바이올린 협주곡 1번을 통해 전체 앙상블을 한 단계 끌어올릴 정도의 리더십을 보였다. 임평용이 특히 주목하는 작곡가 글라주노프의 교향곡 7번은 한국 초연이었다. 전통에 충실한 글라주노프의 음악은 마치 스승 림스키코르사코프와 드보르자크를 결합한 것으로 들렸다.

유종이 지휘하는 포항시립교향악단의 프로그램도 흥미진진했다. 멕시코 작곡가 아르투로 마르케스의 ‘단손 2번’부터 예사롭지 않았고, 바이올리니스트 이성주가 협연한 쇼송의 ‘시곡’과 생상스의 ‘서주와 론도 카프리치오소’도 이국적인 분위기에 잘 맞았다. 마누엘 데 파야의 ‘삼각모자’에서 메조소프라노 이아경은 주술사와 같은 신기(神氣) 어린 목소리로 청중을 안달루시아로 이끌었다. 발레 정경이 상세히 자막으로 소개되었고, 무대 위의 연주를 즐기는 포항시향 단원들과 더불어 객석도 어느새 정숙한 방앗간 부인을 유혹하다 망신을 당하는 지방관의 모습에 빠져들었다.

곽승이 지휘하는 대구시립교향악단(사진)이 연주한 프로코피예프의 ‘알렉산데르 넵스키’는 전반부의 하이라이트였다. 대구시향은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의 동명 영화를 위한 이 음악을 연주하며, 악장 사이사이 영상과 함께 줄거리를 소개하는 친절함을 잊지 않았다. 흔치 않은 대작을 위해 대구시립합창단과 포항시립합창단이 연합한 것도 흐뭇했다. 짧지만 확실한 존재감을 보인 메조소프라노 이은주도 앞으로 더욱 주목할 만했다. 대부분의 청중이 이 음악을 처음 접하는 것이었지만, 깊은 인상을 받았음에는 두말할 필요가 없었다.

코리안 심포니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3번을 협연한 강충모는 공부하는 사람에게 두려움 없다는 사실을 다시금 보여 주었다. 혼신을 다해 결승점을 통과한 그에게 갈채가 끊이질 않았다. 지휘자 성기선은 프로코피예프의 교향곡 5번에서 탁월한 독해력을 유감없이 보여 주었다. 대구시향의 연주와 더불어 프로코피예프가 말러의 뒤를 이을 상품임을 예감할 수 있는 호연이었다.
한 해 한 번 서울 나들이를 위해 지방악단들이 들이는 공은 앙코르까지 세심하게 미친다. 강남과 성남악단이 연주한 북한 작곡가 최성환의 ‘아리랑 환상곡’은 앙코르가 아닌 본 프로그램에 넣었어야 할 곡이었다. 포항은 ‘아멜리아의 유언’을, 대구는 바흐의 ‘G선상의 아리아’를 세계 지진 희생자를 추모해 앙코르했다.

이렇게 참신한 기획과 성심을 다한 연주야말로 교향악축제 23년의 원동력이다. 지난해 영국 맨체스터에서는 할레 오케스트라와 BBC 필하모닉이 말러의 교향곡 전곡을 번갈아 연주하는 기획을 가졌고, 8번 ‘천인 교향곡’은 두 악단이 연합으로 무대에 섰다. 교향악 축제가 이를 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다른 나라 지진 못지않게 내 이웃의 화음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진정한 음악 축제의 의미이기 때문이다. 아직도 남은 악단이 축제 무대에 서기를 기다리고 있다. 축제는 20일까지 계속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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