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첫날을 위한 시

중앙일보

입력

우리는 첫째로 우리 아이들을 잘 길러내야겠다.
백두산이나 한나산 보다도
이왕이면 에베레스트 산 만큼 센,
그래서 이 세계에 실력을 발휘하는
그런 사람들이 되게해야겠다.

해와 달이 밤낮으로 그 빛을 다하듯이
언제나 목숨의 빛을 제대로 나타내는
그런 여무진 사람들이 되게해야겠다.

하로를 천년같이 넉넉히 살며
천년을 하로처럼 꾸준히 사는
그런 끈기를 길러내야겠다.

지금의 열세를 다 무시해 버리고,
우리들이 동방의 어둔 밤의 횃불이었던
단군시절의 그 찬란했던 영광을 회복해내라.

이 끝없이 살아야하는 영원(永遠)
속에서
구세주 예수님이나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아 사시었던
그 영생(永生)
의 길에
언제나 앞장서 살도록 해라.

미당 서정주

"해 다 저물었는데 왜 또 왔는가. 내일 낮에 와요. "

미당 서정주(85)
시인의 건강이 심상치 않다는 말이 나돌아 지난해 봄부터 계속 안부 전화를 걸었다.

해로(偕老)
하는 부인은 전화를 받으면 '선생님 주무시고 계세요' 란 한 마디만 하고 다음 물음에 들어가기도 전에 전화를 끊곤 했다. 전화론 안되겠다 싶어 서울 남현동 예술인 마을 집으로 찾아가면 밤에 왔다며 내일 낮에 오라고 문도 안열어 줬다.

다음날 가면 또 내일 오라고…. 천년시를 받고 싶었다. 천년, 억겁의 영원을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반만년 조선 최고의 시인 미당에게서. 혹자는 무어라 해도 겨울 언 하늘을 봄바다 돛단배 가듯하는 꾸밈없는 영원의 가락을 독자들과 함께 듣고 싶었다. 올 봄부터 해서 그렇게 어렵게 받아낸 천년시다.

편집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