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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악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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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9.0의 강진 2011년 3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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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mare in Japan

후쿠시마(福島)현 이와키시
일본의 악몽

땅이 2분 이상 흔들렸다. 건물에 금이 가고 마천루가 좌우로 흔들렸다. 그 다음 쓰나미가 덮쳤다.

오랜 지진의 역사에서 일본이 겪은 가장 강한 지진 중 하나였다. 대양저가 들썩거리며 일본의 태평양 연안에 물벽이 솟구쳤다. 범람한 바닷물이 동네를 쓸어갔고 이와키 같은 도시에선 화재를 일으켰다. 해안선의 넓은 부분이 완파됐다.

뉴스위크 일본판의 요코다 다카시 편집장이 이번 지진 직후에 말했듯이 ‘쓰나미’가 일본어에서 유래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일본 열도는 지각판 네 개가 합쳐지는 곳에 위치하며 다른 어떤 나라보다 지진 활동을 더 많이 겪는다. 일본은 건물의 내진 설계와 첨단 경보시스템 등으로 평소 최악의 지진에 대비한다고 자랑하지만 규모 9.0의 강진 앞에서는 완전히 무방비 상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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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9.0의 강진 2011년 3월 11일

일본 정부도 흔들렸다

우르릉거리며 바닥이 흔들리고 샹들리에가 시계추처럼 좌우로 진동하던 순간 간 나오토(菅直人) 일본 총리는 도쿄의 국회의사당에 앉아 있었다. 간 총리는 지진이 끝날 때까지 의자 손잡이를 붙들며 버텼고 다른 각료들은 인근의 테이블 아래로 피했다. 나중에 간 총리는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국민에게 침착하게 행동해주길 촉구하면서 정부가 신속히 조치를 취하겠다는 성명을 발표했다. 도쿄 시민 수백 명이 정전으로 고통을 겪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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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이 무너지는 순간 도호쿠(東北)지역 센다이(仙臺)

이번 지진의 진원지에서 가장 가까운 도시로 피해가 가장 큰 센다이에서는 한 서점의 천장이 바스러져 손님들 머리 위로 쏟아져 내렸다. 부근의 배들이 뭍으로 내동댕이쳐졌고, 시신과 잔해, 자동차들이 뒤엉켜 쌓였다. 공항도 물에 잠겼다. 일본 전역에 도움이 필요하지만 국제 구호기관들은 인구 약 100만 명인 센다이에 특히 구호 노력을 집중한다. 수만 명이 임시 피난소로 대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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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모 9.0의 강진 2011년 3월 11일

What the Waters Left Behind

이와테현 리쿠젠타카타(陸前高田)
쓰나미가 남긴 것

다음 날 동이 트자 처참히 파괴된 삶터가 생생하게 드러났다. 날이 밝으면서 구호대원들이 생존자 수색에 다시 나섰고 가족들은 소식이 끊어진 식구의 안부를 애타게 기다렸다. 태평양 연안의 도시 리쿠젠타카타에선 비통한 표정의 한 여성이 아이를 업고 잔해 속을 걸었다. 하지만 집이 서 있던 곳엔 잔해와 진흙 뻘만 남았다.

일본의 다른 곳에선 관리들이 더 큰 피해를 막으려고 발버둥쳤다. 일본은 전력의 3분의 1을 원전에서 얻는다. 지진 피해로 원전 두 곳에 이상이 생겨 냉각시스템을 수리하는 동안 방사능 노출 위험으로 인근 지역에 대피령이 내려졌다.

이번 지진과 쓰나미의 여파는 오래 지속될 뿐더러 일본에 국한되지도 않을 전망이다. 일본의 주요 공장이 잠시만 가동을 중단해도 첨단 부품에 의존하는 세계의 기업들이 피해를 입는다. 이 재난에서 회복하려면 일본인들은 그 유명한 위기극복 능력을 총동원해야 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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