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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달의 책] 4월의 주제 ‘디지털 시대, 생각하는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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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디지털은 편합니다. 빠르죠. 정확하기도 합니다. 그러니 스마트폰 등 디지털 기기 덕에 세상은 눈부시게 바뀝니다. 하지만 우리는 효율을 얻은 대신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잃고 땀의 가치를 잊어가는 것 아닐까요? 느림과 깊이가 불편하거나 나쁘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아날로그의 가치와 향기를 다룬 세 권의 책에서 확인해보길 권합니다.

똑똑한 스마트 기기들, 내 뇌에 뭔 짓을 한 거지?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니콜라스 카 지음
최지향 옮김
청림출판, 361쪽
1만5000원

요즘 들어 부쩍 집중력이 떨어지는 것도 같고, 혹시 건망증인가 싶었던 분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누구 말대로 치매 초기가 아니라면, 주범은 똑똑해진 손 안의 휴대기기와, 차 안의 내비게이션 그리고 인터넷일 수도 있다. ‘혹시나’ 싶었던 사람들에게 ‘역시’라고 확인해주는 게 이 책이다.

 실제로 얼마 전 영국의 신경과학자팀이 런던의 택시기사 16명의 뇌를 스캔했다. 기사들은 뒤쪽 해마, 즉 공간 지각을 담당하는 부위가 보통 사람들에 비해 훨씬 넓었다. 운전경력이 많을수록 그랬다. 복잡한 시내 정보를 저장해둬야 하니까 신경세포가 증가한 탓인데, 당시 실험을 진행했던 과학자팀은 신신당부한다. “우리는 사람들이 내비게이션을 사용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유는 자명하다. 뇌와 컴퓨터의 정보처리방식이 너무 닮았기 때문에, 하나가 커지면 나머지는 쭈그러든다.(307쪽)

 그동안 대세로 자리 잡은 트위터, 페이스북, 구글과 아이패드가 우리들에게 무슨 일을 한 거지? 결과는 생각 이상으로 크다는 게 이 책의 진단이다. 스마트 기기들은 우리의 사고능력과 지적 호기심을 빼앗은데 이어 뇌구조까지 물리적으로 헤집어 놓은 셈이다. 더 이상 정보를 머리에 넣어두지 않아도 되는 세상에서 링크와 하이퍼텍스트로 이어지는 정보를 따라간 결과다.

 저자는 경영컨설턴트로, 이코노미스트가 뽑은 글로벌 CEO 132인에 뽑히기도 했다. 이런 책이 인문적 깊이가 있으면 금상첨화이겠지만, 다행히도 ‘약간은’ 그런 쪽이다. 원서 첫 출간 때 “마셜 맥루한이 쓴 『미디어의 이해』의 인터넷 판”이라는 호평을 받기도 했을 정도다.

 스마트 기기 애용자들의 눈에 이 책의 저자는 “인터넷 시대의 무지몽매한 러다이트(기계파괴주의자)”로 비춰질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신념은 분명하다. 문자의 발전이 우리의 쓰기와 읽기 방식 그리고 ‘깊이 생각하기’에 영향을 줬고, 그 결과 추상적 사고능력까지 안겨줬다. 때문에 책이야말로 가장 완벽한 형태의 지식 전달체계이자 문명의 선물이다. 반면 인터넷은 우리를 망각에 익숙해지도록 유도한다.(281쪽)

 인터넷이 포털 등 정보의 도서관에 바로 접속할 기회를 준 것은 분명하지만, ‘찾아보는 정보’와 ‘기억하는 지식’은 질적으로 다르다. 이 과정에서 잃어버리는 것은 스스로 깊이 아는 능력, 우리 사고에서 독창적 지식이 피어오르게 하는 능력이다. 때문에 스마트 기기에게 기억과 정보를 계속 아웃소싱할 경우 종국에는 문화와 문명이 시들어간다는 게 이 책의 최종적 진단이다.

 때문에 이 책의 중요한 예측이 책이란 미디어의 운명이다. 19세기 초 신문이 대량보급될 때 일부는 신문이 세상의 모든 책을 대신할 것이라고 예견했다. 에디슨의 축음기가 나왔을 때도 그랬다. 앞으론 소리로 정보를 듣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했지만, 책은 살아남았다. 그리고 인터넷 시대가 왔다. 책은 다시 벼랑 끝에 몰린 듯하다. 하지만 인간의 사고능력의 질은 예전 같지 않다. 문명의 앞길이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의 울림이 큰 이유다.

조우석(문화평론가)

노동하는 우리는 알고 보면 모두 ‘장인’

장인
리처드 세넷 지음
김홍식 옮김
21세기북스, 495쪽
2만5000원

장인(匠人)하면 언뜻 고색창연한 느낌이 떠오른다. 손재주는 좋지만 고집스럽고, 시대에 뒤진…. 2010년 스피노자 상을 받은 뉴욕대와 런던정경대 교수인 지은이의 시각은 다르다. 장인은 ‘일 자체를 위해 일을 잘해내려는 욕망으로 사는 사람’이란 것이다. 이에 따르면 노동의 댓가로 먹고 사는 현대인은 모두 ‘잠재적 장인’이다.

 세넷 교수는 도대체 왜 우리가 장인이 되기는커녕 자기 일의 의미조차 모르게 되었는지를 성찰했다. 1부 장인에서는 작업장과 도구, 의식을 중심으로 흙으로 도자기를 빚던 도공에서 리눅스 프로그래머까지 역사상 장인의 변천을 폭넓게 살핀다. 2부 실기에서는 손과 기능의 숙달과정을, 3부 장인의식에서는 동기와 재능을 파고든다.

 그의 결론은 크게 세 가지. 손과 머리는 하나로 만드는 일이 곧 생각의 과정이며, 장인의 일하는 방식은 곧 행동하면서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라 한다. 또 인간은 스스로 자신을 만드는 자기 창조자이며, 기술은 ‘화려한 해악’이자 ‘수줍은 일꾼’이란 두 얼굴을 가졌다는 것이다. 이를 설명하면서 지은이는 정치학자 한나 아렌트의 아니말 라보란스(Animal laborance)와 호모 파베르(Homo faber)란 개념을 빌려온다. 전자는 매일 고된 일을 되풀이해야 하는 ‘일하는 동물’이고 후자는 공동의 삶을 만드는 인간인데, “어떻게?”란 질문만 던지는 아니말 라보란스와 달리 “왜?”라는 의문을 품어야 호모 파베르의 삶이 가능하다는 풀이다.

 책은 물질문화를 다루는 3부작 중의 첫 권이다. 읽어내기는 쉽지 않다. 역사와 과학 등 다방면에 걸친 사례가 실려 딱딱함을 덜어주는데도 그렇다. 하지만 그리스 신화의 ‘불과 대장간의 신’ 헤파이스토스는 발은 절룩거릴지라도 자기 일을 자랑스러워했다. 그처럼 우리 자신에게서 가장 존엄스런 모습을 찾아보기 위해 씨름해 볼 만하다.

김성희 객원기자

예술가의 손 편지, 이 얼마나 따뜻한가

편지로 읽는
슬픔과 기쁨
강인숙, 마음산책
248쪽, 1만6000원

“당신과의 23년 세월. 세월이 쌓일수록 당신을 아내로 얻었음을 하늘에 감사하게 되오. 당신도 나를 남편으로 얻었음이 나와 같기를 바라는데. 그렇지 않을까봐 두렵소. 오늘 아침나절에 놀라움이 깃든 음성으로 머리칼을 헤쳐 보였을 때 나는 우리의 삶 23년을 순간적으로 떠올렸고, 부끄러운 듯 숨어있는 흰 머리카락들마저 대견하고 사랑스러웠소.”

 이토록 애틋한 사내의 고백 앞에 어떤 여인인들 가슴이 뛰지 않을까. 26년 전 작가 조정래가 아내인 시인 김초혜에게 보낸 편지글이다. 힘있는 문체로 독자들을 들었다 놨다 하는 조 작가도 아내에게만은 한없이 여리고 따뜻하다. “사랑하는 여보 초혜!”로 시작해 “죽는 날까지 당신을 사랑할 당신의 남편 정래”로 맺는 편지에서 문단 최고의 애처가로 소문난 조 작가의 행복한 일상이 엿보인다.

 책은 49명의 예술가들이 직접 쓴 편지를 모았다. 이해를 돕기 위해 편지마다 발신인과 수신인에 얽힌 사연, 편지가 오고간 당시의 상황도 곁들였다. 시인 김남조가 제자인 시인 신달자에게 40여 년 전 보낸 편지는 다정하다. 김 시인은 출산한 지 얼마 안된 제자에게 “어린애로 인해 받은 여인의 위로는 예로부터 무한량이다시피 되어왔으니까 힘내라”는 따뜻한 안부 인사를 전한다. 얼마전 작고한 작가 박완서가 이해인 수녀에게 보낸 편지에는 감사의 마음이 담겨있다. 수녀님의 작품을 통해 “마치 걸음마를 배우듯이 가장 미소한 것의 아름다움에서 기쁨을 느끼는 법을 배웠습니다”라고 되뇌 인다.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가 어린시절 이어령 전 문화부 장관에게 “이 장관님 미국에 오시면 꼭 우리집에 놀러오세요”라고 적어보낸 편지는 천진난만하다. 이처럼 작품이 아닌 내밀한 편지글을 통해 접하는 예술가들의 목소리는 새롭다. 엮은 이의 말처럼 ‘수신자 혼자서만 읽는 호사스런 문학’인 편지를 나눠 읽는데서 색다른 기쁨이 느껴진다.

이에스더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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