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딩 가진 봉급자, 건보료 더 내게 만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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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고액의 임대소득이나 금융소득이 있는 직장인에게 건강보험료를 추가로 물리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지금은 월급에만 보험료를 부과하지만 다른 소득에도 보험료를 물리겠다는 것이다.

 미국을 방문 중인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은 31일 한국 특파원들과 간담회에서 “사업소득이나 임대소득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직장가입자로 돼 상대적으로 적은 보험료를 내는 문제를 개선하고, 자녀들의 피부양자로 올라 있는 고액 재산가들에게도 보험료를 부과하겠다”고 말했다. 진 장관은 “이는 공정사회 컨셉트(개념)에 맞다”며 “이런 식으로 건강보험 수입을 확충하고 국민이 부담을 느끼지 않도록 보험료를 서서히 올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직장인의 임대·이자·배당·사업 소득의 어느 선까지 보험료를 매길지 방침을 정해 5월 중 세부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우리나라 건강보험료 부과 방식은 기형적 구조를 갖고 있다. 직장인이냐 자영업자냐에 따라 잣대가 다르다. 1977년 의료보험이 시작할 때부터 그랬다. 직장인은 근로소득의 5.64%(절반은 회사 부담)를 낸다. 자영업자는 종합소득·재산·자동차를 근거로 건강보험료가 부과된다.

 양쪽의 잣대가 다르다 보니 형평성 시비가 끊이지 않았다. 2000년 직장과 지역 건보를 통합하면서 이런 갈등이 심화됐고 수차례 개선하려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번에 30년 이상 된 해묵은 과제에 칼을 대려는 것이다.

 직장인은 부동산을 임대하거나 주식을 투자해 아무리 소득을 많이 올려도 자기 월급에 비례해 보험료를 낸다. 이런 규정을 직장인이 활용하거나 악용하는 자영업자가 줄을 잇는다.

 서울 강남구 역삼동 빌딩 소유자 D씨는 연간 임대와 사업 등으로 1억6000만원의 종합소득을 올린다. 그런데 자기 빌딩에 세든 업체에 자신과 가족이 취업한 것처럼 꾸며 매달 15만원 정도만 보험료를 냈다. 원래대로라면 월 200만원 이상 보험료를 내야 한다. 거짓으로 직장인인 것처럼 꾸며 보험료를 덜 낸 것이다.

 월 2000만원의 임대료 수입을 올리는 사람이 자기 빌딩(20억원 상당)의 관리회사 직원이나 대표로 등재해 합법적으로 보험료를 덜 내기도 한다. 관리회사에서 매달 100만원 정도 월급을 받는다고 가정하면 매달 2만9000원의 보험료만 낸다. 빌딩 임대수익에 따른 보험료(34만원)는 안 내도 된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근로소득 외 임대·금융·사업소득이나 기타소득(원고료 등)을 올리는 직장인은 147만 명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월급 외 다른 소득이 있는 모든 직장인에게 보험료를 물릴 수는 없다”며 “‘무늬만 직장인’인 임대소득자나 고액의 금융소득을 올리는 사람이 우선 검토 대상”이라고 말했다. 직장인이 작은 호프집이나 분식점을 운영하거나 원고료 수입을 올릴 때는 부과 대상에서 제외된다.

신성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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