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흉기·도구·아바타 …로봇세상 모습은 사람 하기 나름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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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1호 06면

미래사회에서 인간과 로봇은 어떤 관계를 맺게 될까. 로봇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 크게 네 가지의 시나리오를 상상해 볼 수 있다.

인간과 로봇의 관계를 말해줄 네 가지 시나리오

#시나리오1 로봇 기술의 진보가 인류의 미래를 위협할 것이라는 예측이다. 사람의 능력을 훨씬 뛰어넘는 로봇들이 등장해 인류를 노예로 삼거나 멸종시킬지도 모른다는 암울한 이야기는 ‘터미네이터’와 같은 할리우드 영화, 그리고 SF소설 등을 통해 끊임없이 복제되고 있다. 서구 문명은 양대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자신들이 개발한 과학기술에 의한 대량살상을 경험했기 때문에 로봇에 대한 경계심도 그만큼 뿌리가 깊다. 아이작 아시모프가 1950년 ‘아이, 로봇’이라는 SF소설에서 발표한 로봇 3원칙도 기계로봇을 인류의 경쟁자 또는 적으로 간주하는 서구인들의 강박관념, 로봇 공포증(Robophobia)을 대변한다. 로봇 3원칙은 인간을 보호해야 한다는 윤리적 명제를 사람이 아닌 기계에 적용시킨 최초의 사례로서 역사적 가치가 크다. 하지만 아프가니스탄에 투입된 미군의 무인기가 정찰용을 넘어 효율적인 공격무기로 진화하는 사례처럼 로봇 3원칙만으로 로봇 기술의 모든 잠재적 위험요소를 통제하기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후쿠시마 원전의 방사능 유출 사건처럼 로봇 자동화에 대한 사회적 의존도가 높아질수록 해킹 또는 오작동으로 인한 피해도 커질 것이다. 따라서 시민들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한 정책적 준비가 필요하다.

#시나리오2 로봇이 일종의 자유의지를 가진 새로운 종(種)으로 발전하면서 인간과 공존할 것이란 전망이다. 현재 스마트폰 환경에서 길 찾기, 통역, 정보검색 등에 쓰이는 각종 애플리케이션들이 향후 수십 년 뒤에는 어떤 형태로 진화할지 상상해보자. 평범한 사람보다 훨씬 더 신뢰할 만한 일종의 ‘가상 인격체’로 바뀔 가능성이 크다. 사용자를 잘 이해하고 미묘한 정서 교감까지 할 수 있는 맞춤형 애플리케이션은 스마트폰·홀로그램·자동차·로봇 등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24시간 동안 당신의 파트너 역할을 충실히 해낼 것이다. 인공지능에 축적된 개별 소비자의 판단과 경험은 반드시 프라이버시, 지적재산권의 명분으로 법적 보호를 받게 된다. 이처럼 특화된 인공지능은 주인이 사망한 뒤에도 함부로 변경하거나 삭제하기 곤란하다. 따라서 일정 기간 접속권을 보장받아 남은 자녀를 살피거나 고인의 유지를 받드는 법적 대리인의 역할을 수행할지도 모른다. 이 단계에 이르면 로봇도 미래사회의 새로운 구성요소로서 적절한 법적 지위를 부여받을 수 있다. 하와이 미래학연구소의 짐 데이터 교수는 “인간의 지성을 어떤 측면에서 정의해도 결국 로봇, 인공지능은 기능적으로 사람과 유사한 수준에 도달할 것”이라고 전망한다. 로봇이 굳이 인간과 비슷한 권리가 필요하진 않겠지만 사회적 역할이 커짐에 따라 기존 인간 중심의 세계관을 일부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2007년 우리 정부가 초안을 공개했던 로봇윤리헌장도 감성·이성을 갖출 미래 로봇과 인간 간의 평화로운 공존을 추구하고 있다. 하지만 종족 내 분쟁도 해결하지 못하는 인류가 새로운 종의 출현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미지수다.

#시나리오3 로봇이 아무리 발전해도 결국 도구에 불과하다는 보수적 시각에 기초한다. 로봇에 무슨 자의식과 감성이 생기겠는가. 기계란 안전하게 만들어 편리하게 쓰면 된다. 인간은 로봇보다 우월하므로 공상소설의 허황한 이야기에 걱정할 필요가 없다. 로봇을 미래성장동력으로 간주하는 정부·기업 측의 시각과 일치한다. 그들은 힘든 노동이 필요 없는 자동화의 낙원을 꿈꾼다. 로봇을 도구로만 간주하는 시각은 의외로 휴머니즘 또는 종교적 가치와 코드가 잘 맞는다. 우리 사회에서 로봇의 법적 권리를 운운하면 ‘사람도 어렵게 사는 판에 기계가 무슨 권리냐’면서 진보 성향의 인권단체 또는 보수 종교계가 반발할 것이다. 로봇 기술은 잠재력에 비해 현재까지 발전속도가 그다지 빠르지 않다. 향후 10년 내외의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면 큰 변화가 없을 것이라는 보수적 관점이 타당할 수 있다.

#시나리오4 네트워크 기술의 발달로 인간과 로봇의 경계가 모호해지는 것이다. 영화 ‘아바타’에서 다리가 불편한 주인공 제이크는 외계 판도라 종족의 신체(아바타)와 접속을 통해 큰 자유를 맛본다. 결국 제이크는 판도라의 삶에 동화되어 인간이 아닌 외계 종족의 몸으로 옮겨간다. 누군가의 존재감을 원격지에 투사하고 움직이는 아바타 역할은 ET 같은 외계 생명체가 아니라 평범한 로봇으로 충분히 대체할 수 있다. 로봇이 힘든 노동을 대신하는 자동화 기계가 아니라 또 다른 삶의 주체로 바뀌는 것이다. 사람의 말과 외모, 신체동작을 실시간으로 재현하는 아바타 로봇은 기계가 아니라 접속자의 인격에 준하는 대우를 받게 된다. 예를 들어 대통령이 접속한 아바타 로봇이 어떤 장소를 돌아다닐 때 기계장치라고 소홀히 대했다간 의전상 큰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대통령이 인간의 몸으로 왔는지 로봇신체를 빌려서 왔는지는 별로 중요치 않다. 이렇게 새로운 차원의 신체성을 구현하는 아바타 로봇의 확산은 미래사회에서 통신 개념을 바꿔 놓을 전망이다. 페이스북·트위터처럼 정보만 공유하는 소셜네트워크는 어느 순간 물리적 이동을 대체하는 소셜트래픽으로 바뀌어 있을 가능성도 있다.

인간과 로봇의 관계에 대한 네 가지 미래 시나리오는 모두 나름대로 타당성과 가치를 갖고 있다. 결국은 우리가 어느 시점에 어떤 선택을 하느냐에 따라 미래 로봇 세상의 모습은 크게 달라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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