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문창극 칼럼

고난의 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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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문창극
대기자

외국인들이 속속 일본을 떠난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반면 일본인들은 쓰나미가 휩쓸고 간 집터로 다시 돌아와 밥을 지어 먹고 있는 장면이 방영되었다. 이들은 무엇 때문에 폐허 더미로 다시 돌아왔을까. 또다시 쓰나미가 덮칠지도 모르는 위험한 곳이지만 그곳이 바로 자기의 땅이었기 때문이다. 외국인은 그 땅을 버리고 떠날 수 있기 때문에 외국인이다. 떠날 수 없는 사람은 그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땅은 그만큼 소중한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공동체의 출발은 땅에서 비롯된다. 국토는 나라 공동체의 바탕이다. 그러므로 한 뼘의 국토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지진이 나고 쓰나미가 덮쳐도, 일본 열도가 가라앉는다 해도 일본인은 그곳을 떠날 수 없었다. 그것은 주어진 환경이다.

 우리는 일본에 왜 이런 재난이 닥쳤는지 이유를 모른다. 일본이 지진대에 자리를 잡았기 때문이라는 어설픈 과학지식밖에는 없다. 누구도 ‘규모 9’라는 엄청난 사태가 오리라 예상하지 못했다. 쓰나미를 막기 위해 쌓아놓은 해변의 방파제도 소용이 없었다. 과학과 이성의 무력함을 절감했다. 과학이 발달할수록 오히려 환경은 더 절대적인 존재로 다가오고 있다. 그렇다고 환경에 휘둘려 산다면 환경은 우리에게 신적 존재가 되어 버린다. 인간은 자연의 힘에 의해 한순간에 수십만 명이 죽을 수밖에 없는 하찮은 존재이지만, 반면 한 사람의 힘으로 수십만 명을 구할 수도 있는 위대한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은 우리에게 신의 존재가 아니고 극복의 대상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쓰나미라는 자연의 힘, 핵분열이라는 우주적인 힘 앞에 인간이 얼마나 무력한지 잘 보았던 만큼 우리는 언제나 겸손해야 한다.

 인간이 환경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은 공동체로부터 나온다. 한 사람보다는 한 마을, 한 마을보다는 한 지역, 지역보다는 나라, 나라보다는 인류, 이렇게 더 큰 공동체를 이루었을 때 자연의 힘을 능가할 수 있는 것이다. 일본이 다시 살아날 수 있느냐 없느냐는 그 공동체의 힘에 달려 있다. 그런 공동체의 힘은 어디에서 나올까? 옛 철인들은 공동체를 위해 가장 바람직한 덕으로 신뢰·용기, 그리고 책임감을 꼽았다. 그로부터 공동체의 힘이 나온다고 보았다. 일본인은 재난 앞에서 이러한 덕을 충분히 보여 주었다. 그들의 질서는 신뢰로부터 나왔다. 나부터 살고자 하는 데서 무질서는 태어난다. 서로가 서로를 믿고 함께 살자는 데서 질서가 생겨난다. 원자력발전소의 50인 결사대를 비롯해 스스로 현장을 찾아온 59세의 타 지역 발전소 직원은 우리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누가 시키지도, 부르지도 않았는데도 그들은 목숨의 위협을 무릅쓰고 그곳에 간 것이다. 용기의 절정이다. 진열대가 쓰러지는 것을 막기 위해 피신하지 않고 온몸으로 버티며 진열대를 붙들고 있는 수퍼마켓 점원으로부터, 대피방송을 하다가 자신은 쓰나미에 쓸려 죽은 동사무소 여직원까지 곳곳에서 자기 책임을 다하려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나는 이를 더 압축해 공동체를 지켜 주는 힘은 희생과 희망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른 사람을 위해, 공동체를 위해 희생을 택하는 것만큼 우리를 감동시키는 것은 없다. 한주호 준위의 죽음, 석해균 선장의 희생정신이 그래서 칭송을 받는 것이다. 안중근과 윤봉길의 희생 때문에 한국인이라는 공동체는 긍지를 갖는 것이다. 그런 희생이 모여 민족의 정기가 되는 것이다. 특히 지도자의 희생일수록 그 힘은 더 커진다. 노블레스 오블리주가 바로 그것이다.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가 먼저 현장으로 뛰어가 진두지휘했더라면 그 감동은 더 컸을 것이다. 희생으로부터 오는 감동이 우리에게 힘을 준다.

 개인이나 공동체나 희망의 끈을 놓는 순간 무너진다. 아무리 환경이 어렵다 해도 그 환경에 굴복하지 않는 힘과 의지는 희망에서 나온다. 누구나 미래가 있다는 확신만 있으면 결코 쓰러지지 않는다. 재난 속에서 일본 국민은 훌륭한 자질을 가진 민족으로 세계인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들은 스스로 다시 일어날 것이다. 우리가 일본을 물질적으로 도와주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들에게 희망이 있다는 점을 격려해 주는 것이 더 소중하다.

 역사는 우리에게 기쁨보다 슬픔에서 더 단합된 힘이 나온다는 사실을 가르치고 있다. 슬픔이 사람들을 더 단단히 묶어주기 때문이다. 슬픔은 우리에게 의무를 심어주고 집단적 노력을 가르치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난이 힘인 것이다. 6·25전쟁이라는 고난이 우리를 단단히 묶어 오늘의 우리를 만들어 주었듯이, 일본 역시 오늘의 고난이 그들을 더 단단히 묶어 내일의 더 큰 일본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문창극 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