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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 철수, 2조 앞으로” 수시 교대하며 이틀간 밤샘 사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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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호 04면

방사능 유출 사고가 발생한 일본 후쿠시마 제1 원자력 발전소의 상황을 위성으로 촬영한 모습이 공개됐다. 원자로가 들어 있던 건물들이 고압 폭발로 인해 부서져 골조를 드러낸 모습이 선명하게 보인다. 민간 상업위성 서비스인 디지털 글로브가 18일 촬영한 사진이다. [AFP=연합뉴스]

“1조 긴급 철수! 2조 앞으로!”
방사능을 차단하는 방호복과 방호마스크, 그리고 어깨에 방사선량 계측기를 걸어 멘 279명의 특임조. 이들은 18일과 19일 이틀 동안 밤을 꼬박 새웠다. 일본 후쿠시마(福島) 제1 원전의 사활을 건 ‘전력확보 작전’에 투입된 인력이다.“일본을 위해 나를 희생하겠다”며 자원한 직원 중 부인과 자식이 없는 사람이 우선적으로 선발됐다. 피폭량이 80mSv(1mSv는 1회 X선 촬영 때 노출되는 피폭량)가 넘으면 이들의 어깨에 멘 방사선량 계측기에서 요란한 경보가 울렸다. 한 사람이 한 차례 작업에 나설 수 있는 한계가 여기까지다. 경보가 울리자마자 바로 대기조가 투입됐다. 이틀 철야작업 동안 20명의 팀이 한 조가 됐다. 전선 케이블을 까는 차량의 운전자, 차량에서 무거운 송전선을 바닥으로 끌어내리는 사람, 송전선을 까는 길에 놓여 있는 각종 장애물을 제거하는 이…. 저마다 임무는 다양했다.

동일본 대지진 279명 특임조가 목숨 걸고 펼친 전력확보 작전

이들의 막판 혈투는 치열했다. 원전 건물에 근접할수록 방사선량의 수치가 극도로 높아진 것이다. 원전 건물 주변에선 최대 400mSv가 측정된 곳도 있었다. 일반적으로 100mSv를 피폭하면 암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그런데 그보다 네 배나 높은 피폭량이었다. 작업 효율을 높이기 위해 작업자의 피폭 한도도 100mSv에서 250mSv로 올렸다. 목숨을 건 작업이었던 셈이다.옆에선 일본 자위대와 도쿄소방청이 살수작업을 벌였다. 그러나 살수 작업은 임시방편이다. 원자로 혹은 핵폐기 연료봉 수조가 가열돼 방사능이 누출되는 것을 저지하기 위한 일종의 시간 벌기 차원이다. 결국은 안정적으로 냉각 시스템을 가동, 원전에서의 방사능 누출을 차단하고 상황을 모니터링하려면 전기가 필수적이다. 그런데 원래 있던 원전 내 전력은 지진과 쓰나미로 모두 끊긴 상태였다.

살수 작업으로 시간 벌기
40년 전 후쿠시마 제1 원전을 지을 때 사용했던 도호쿠(東北)전력의 고압 송전선이 원전 부지 인근에 남아있던 게 천행이었다. 이들은 도호쿠 전력의 송전선에서부터 가설 케이블을 깔았다.
도호쿠 전력의 변압시설에서 원전 2호기까지의 직선 거리는 불과 400m. 그러나 문제가 생겼다. 직선 거리상의 길에는 쓰나미에 실려 온 온갖 쓰레기, 그리고 원전 건물이 수소폭발로 일부 파괴되면서 흩어진 콘크리트 더미들이 곳곳에 널려있다. 이들을 일일이 제거하는 건 시간적으로 무리였다. 결국 인근 산 쪽으로 도는 V자형 루트를 택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보니 총 길이는 1480m로 크게 늘었다. 500m의 거대한 케이블 3개, 총 1.5㎞분이 동원됐다. 시간이 긴박한 만큼 철탑도 세우지 않고 그냥 케이블을 바닥에 까는 방법을 택했다. 도호쿠전력 고압선의 6만6000V를 원전 부지 내의 변압시설과 원전 2호기의 변압기를 거치며 480V까지 떨어뜨리는 작업도 동시에 진행했다.

V자형으로 우회해 전선을 깐다고 했지만 1480m 정도의 길이는 보통대로 하면 반나절이면 끝나는 작업이었다. 게다가 최고의 전문가들이 하는 일이었다. 하지만 상황은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2호기는 현재 살수차를 통해 물을 뿜어대고 있는 3호기와 바로 인접해 있다. 3호기에 뿌린 물이 바람 등으로 주변으로 퍼질 경우가 문제였다. 방사능을 잔뜩 묻은 물이 전기공급 작업을 하고 있는 직원들에게 날아와 묻게 될 가능성이 컸다. 게다가 누전의 위험도 있었다. 따라서 살수와 전기선을 까는 작업은 동시에 진행이 불가능했다. 이틀간의 작업 동안 279명의 작업자 중 피폭 수준이 한계에 달한 이들도 다수 발생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 없었다.

전기를 우선적으로 끌고 오는 곳을 2호기로 선택한 데는 이유가 있었다. 2호기는 건물 외벽이 무너지지 않았다. 따라서 소방차나 특수차량을 사용해 외벽을 통해 내부에 물을 뿜어댈 수 없다. 또한 원자로를 덮고 있는 격납용기의 일부인 압력억제실이 2호기의 경우 손상된 상태다.

시급하게 냉각을 해야 하는 상황이다. 반면 도쿄전력의 자체 조사결과 2호기 내부의 펌프 중 상당수가 “쓸 만한 것으로 보인다”는 결론을 얻었다고 한다. 따라서 먼저 2호기에 전기를 공급해 급한 불을 끄고, 2호기와 분전반(分電盤)을 통해 세트로 연결돼 있는 1호기에도 전기를 공급하기로 했다. 1, 2호기가 하나의 전기계통으로 이어져 있듯 3호기와 4호기, 그리고 5호기와 6호기가 한 묶음으로 돼 있다. 현재 가장 위험이 지적되는 3호기의 경우 일단 살수차량을 통한 냉각으로 어느 정도 시간을 번 뒤 2호기에 전기가 공급되면 바로 20일 중 별도의 송전선을 통해 전기를 끌어오는 작업에 착수할 계획이다.

이틀간의 피말리는 작업 끝에 이들은 19일 오후 외부 전력을 가설 케이블을 통해 원전 2호기 건물까지 끌어오는 데 성공했다. 에다노 유키오(枝野幸男) 관방장관은 “이들의 헌신적인 노력 덕분”이라고 말했다. 이르면 20일 중 끌어 온 전기를 실제 원전 내에서 연결하는 작업이 시작될 전망이다.2호기에 전선이 연결됨에 따라 최악으로 치닫는 듯했던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전환점을 마련했다. 실제 전기가 통하면 1분에 100여t의 냉각수를 원자로와 폐연료봉 저장수조에 쏟아부어 확실한 냉각효과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전력 복구 뒤 남은 과제는
하지만 전기가 통한다고 해도 첩첩산중인 것은 마찬가지다. 전기가 연결돼 냉각 펌프가 제대로 가동돼 준다면 모르지만 냉각시스템이 이미 고장나 있다고 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물을 끌어 올리는 10개가량의 펌프 하나하나를 다 점검해야 하고, 혹시 문제가 있을 경우 대체 펌프로 바꾸는 작업도 해야 한다. 또 펌프 그 자체를 냉각시키는 펌프를 가동할 필요도 있다. 전기가 들어왔다고 해도 바로 냉각시스템이 원활하게 가동되는 게 아닌 것이다.

게다가 전기가 통한다고 해도 냉각하는 기기에 고장이 있으면 원자로로부터 열을 빼앗을 수 없다. 냉각수를 저장하고 있는 탱크가 아예 부서져 있으면 새롭게 바닷물을 펌프로 끌어 올려야 할 필요도 있다. 원전설계에 정통한 이시이 마사노리(石井正則) 전 이시카와지마하리마(石川島播磨) 중공업 기술고문은 “전기를 어떻게 끌어 오는가도 중요하지만 여러 전기계통 장비의 점검을 이제부터 진행해야 한다”며 “따라서 사태가 호전되려면 앞으로도 상당한 시간이 소요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침수에 의한 문제점도 제기된다. 일 자위대 헬기에서 찍은 사진을 보면 쓰나미에 밀려 흘러들어온 대형선박이 거꾸로 처박힌 채 원전 건물의 바로 옆에서 뒹굴고 있는 것이 보인다. 대량의 바닷물이 원전 건물로 흘러 들어갔을 가능성을 뒷받침한다. 긴키(近畿)대 원자력연구소 스기야마 와타루(杉山亘) 교수는 “1호기 혹은 2호기의 건물 내에 대량의 바닷물이 들어가 1층 부분에 있던 전기 장치들이 침수됐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 경우 전선 등에 염분이 부착돼 있을 가능성이 커 전기를 흘려 보내는 순간 스파크가 발생해 화재를 일으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따라서 펌프로 배수를 한 뒤 전선 등 전기 계통 장치들을 깨끗이 씻어내지 않으면 안 된다.
섣불리 전기를 공급하는 순간 폭발이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는 주장도 있다. 이시이 전 기술고문은 “2호기 건물 내에 수소가 꽉 차 있을 공산이 있다”며 “수소폭발을 피하기 위해선 우선적으로 환기 시설을 가동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도쿄전력 원자력설비관리부의 고바야시 데루아키(小林照明) 과장은 “물론 전기 공급 작업이 손쉽게 잘 진행될 가능성도 있지만 자칫 잘못하다간 돌이킬 수 없는 끔직한 일이 있을 수 있다”며 “만일의 가능성까지 따져가며 최선이 아니면 차선의 방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도쿄전력 관계자는 “이제까지도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일들이 연이어 일어났기 때문에 앞으로도 직접 해 보지 않으면 어떻게 될지 예측할 수 없다는 게 솔직한 심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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