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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인터뷰] 트위터 팔로어 66만 명 이외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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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강원도 화천군 상서면 다목리 ‘감성마을’에는 아직 잔설(殘雪)이 많이 남아 있었다. 작가 이외수(65)씨의 집 주위도 눈밭이었다. “지난겨울엔 눈 많이 오라고 기도까지 했어요. 산속에 폭 갇혀 있는 게 좋아서. 그런데 겨우 70㎝밖에 안 오더라고요.” 부인 전영자(59)씨가 웃으며 말했다. 마당 한쪽 널찍한 개 우리에서 삽살개 ‘무강’과 진돗개 ‘감마’가 서로 장난치고 있었다. 이외수는 ‘소통의 달인’으로 불린다. 기자는 얼마 전 트위터를 시작하자마자 이외수씨를 팔로(follow)했다. 순번을 보니 64만6200번째 팔로어였다. 그런데 지금 이외수를 팔로하는 사람은 66만 명을 훌쩍 넘겼다.

65세에 66만 명 트위터 팔로어를 기록 중인 이외수 작가. 그는 동일본 대지진에 대해 “전 세계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내야 한다”고 말했다. [안성식 기자]

-일본에 대재앙이 덮쳤습니다. 엄청난 비극인데요.

 “바로 이웃나라인데, 정말 안타깝네요. 비극 속에서 발휘되고 있는 일본인들의 성숙한 시민의식에 존경을 표합니다. 충격적인 재난을 맞이했는데도 정말 침착하고 질서정연하더군요. 우리나라를 포함해 전 세계에서 도움의 손길을 보냈으면 합니다.”

-일본 국민은 대단한 반면에 정치는 오랫동안 헤매고 있지 않나요.

 “(웃으며) 어느 나라든 정치에는 기대를 거의 안 하죠. 국민이 훌륭했지 정치가 훌륭했던 적은 아주 드물지 않습니까. 정치보다는 국민이 힘이죠.”

-대지진이 발생하자마자 트위터에 글을 올리셨던데요.

 “11일 지진 발생 직후 트위터에 우리 영사콜센터 비상연락 전화번호(02-3210-0404)를 리트윗해 올렸어요. ‘모두 별고 없기를 비는 마음으로 알티(리트윗)에 동참합시다’고 호소했습니다. 일본에 우리 교민이나 여행객도 많이 계시니까요. 아무쪼록 일본 국민이 합심해서 엄청난 재난을 잘 극복하길 바랍니다.”

일본 지진과 관련, 이외수씨가 올린 트위터 글.

젊은 시절의 이외수씨.

-화천에선 요즘 루어낚시 대회가 열리고 있죠?

 “네. 20일까지 엽니다. 구제역으로 산천어 축제가 취소되는 바람에 가난한 군에서 예산만 40억원이 날아갔고, 간접피해까지 1200억원 손해랍니다. 혹시 이웃나라에 대재앙이 닥쳤는데 한가하게 낚시냐고 하실지 모르겠는데, 이 행사도 구제역이라는 엄청난 재난을 수습하고 치유하려는 몸부림입니다. 얼마 전엔 트위터를 통해 ‘구제역에 멍든 화천군의 찐빵과 감자떡을 사달라’고 호소했어요. 트위터로만 찐빵 7000상자를 팔았어요.”

-환갑·진갑 다 지내고 전성기를 맞이했는데요. ‘아이돌’에 빗대어 ‘노인돌’로 불린다면서요. 그 많은 사람과 소통하는 비결이 뭡니까.

 “내가 애정의 영역이 좀 넓지 않나 생각합니다. 나 이외의 것들에 대해 애정을 갖고 살아왔어요. 사람들도 그걸 느껴요. 다들 점점 더 외로워하는 것 같습니다. 언어로 대화한다고 다 소통인 건 아니잖아요. 마음이 통하고 변화가 공유돼야 소통이죠.”

-트위터로 가장 많이 받는 질문은.

 “도대체 언제 자느냐는 거. 한밤중에도, 새벽에도 트위터로 ‘출첵(출석체크)’을 하니깐…. 예전에 하도 춥게 자버릇해서 깼다 잤다 하는 조각잠에 익숙해요. 다섯 번 정도로 나눠 자는데, 다 합치면 한 세 시간쯤 잡니다.”

-예전 PC통신 시절 시작했으니 인터넷으로 소통한 지 오래 되셨죠? 트위터는 작가에게도 도움이 됩니까.

 “ 습작 공간으로 아주 유용해요. 140자 이내니까 뼈를 싹 발라내야 합니다. 화가는 소묘를 계속해야 감각이 안 떨어지 잖아요. 작가도 마찬가집니다. 게다가 실시간으로 세상 흐름을 파악할 수 있어요.”

-어떤 글이 특히 반응이 좋습니까.

 “잠언(箴言)적인 글, 그리고 젊은이들에게 지침이 되는 것들입니다. 예를 들면 ‘어떤 경우에도 희망을 가져라. 희망은 임자가 따로 없다. 당신이 품는 순간 임자다’ 같은 글이죠.”

-정치인들을 가끔 비판하시니까 진보 성향으로 비치기도 합니다.

 “저는 정당 중심 사고를 하지 않습니다. 인물 중심이에요. 정치적 입지가 깔린 주의·주장엔 신경도 안 써요. 정치가 미성숙한 탓에 국민만 시달려 왔는데, 제발 정치의 혜택 좀 보고 죽었으면 좋겠어요. 그런 희망을 피력하면 작가가 아니라는 둥, 빨간색·흰색, 보수·진보라는 둥….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조언하는 걸로 읽어줬으면 해요. 좌파? 웃기네요. 제 선친이 화랑무공훈장 받으셨고, 나도 예비역 육군병장이고, 두 아들이 다 군에 다녀왔는데.(웃음)”

-요즘 자주 되새기는 말이 있습니까.

 “‘착하게 살자’예요. 삶을 지혜롭게 사는 최고의 경구이자 모든 좋은 것을 다 불러오는 주문입니다. 착하게 살면 사람이 못 도와도 하늘은 도와줍니다. 예술을 하는 사람으로서 멋지게 살려고 합니다. 예술 하면 굶어죽는다는 말에 대해 ‘천만에’라며 멋지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요.”

 인터뷰는 지난 6일 화천 감성마을에서 이뤄졌다. 몇 차례 전화 인터뷰를 추가했다. ‘착하게 사는 노인돌’이 뿜어내는 정열과 생기가 젊은 아이돌 못지않았다. 보기 좋았다.

글=노재현 논설위원·문화전문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이외수=1946년 경남 함양 출생. 65년 춘천교대(당시 2년제)에 입학해 8년간 다녔으나 결국 중퇴. 72년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견습 어린이들’ 당선. 75년 중편소설 ‘훈장’으로 ‘세대’지 신인문학상 수상. ‘들개’ ‘칼’ ‘괴물’ ‘장외인간’ ‘하악하악’ 등 작품·산문집 다수. 부인 전영자(59)씨는 1972년 미스 강원 선발대회 당선자(미스 춘천MBC) 출신.

스마트폰으로 QR코드 찍으세요
이외수 인터뷰 동영상이 뜹니다

지난 6일 이외수씨와의 인터뷰를 아이폰4로 찍었습니다. 스마트폰에서 QR(Quick Response·빠른 응답)코드 리더기를 작동시킨 뒤 화면 중앙 사각형 창에 왼쪽에 있는 QR코드를 맞추면 동영상이 뜹니다. 일본 대지진 관련 일문일답은 전화 인터뷰로 추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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