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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동요의 수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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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성선설의 주창자 맹자는 ‘동심(童心)’을 핵심 덕목으로 쳤다. 태어날 때 인간은 본디 선하므로 커서도 흰 눈 같은 동심을 지킬 수만 있다면 세상이 화평해질 걸로 믿었다. “대인이란 자신의 어릴 적 마음을 잃지 않는 자(大人者 不失其赤子之心者也)”라고 설파한 것도 그래서다.

 서양판 성선설 신봉자는 ‘사회계약설’로 유명한 장 자크 루소다. 저서 『에밀』에서 “조물주의 손을 떠날 때는 모든 것이 선하나 인간의 손에 들어오면 다 나빠진다”고 했다. 그러니 선한 동심이 어른들에 의해 오염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는 게 그의 철학이었다.

 한국에서 무엇보다 동심을 소중히 여긴 이로는 소파 방정환과 아동문학가 윤석중이 있었다. 올해가 탄생 100주년인 윤석중은 호를 ‘석동(石童), 즉 ‘돌아이’라고 지을 정도로 아이들 사랑이 지극했다. 그는 특히 동심을 가꾸는 방법으로 동요를 중시했다. 1924년 『윤석중동요집』을 발간한다. 한국의 첫 동요집이다. 그는 동요 작사에 평생을 바쳤는데 ‘퐁당퐁당’ ‘낮에 나온 반달’ 등 주옥 같은 동요 800여 곡의 노랫말이 그의 손에서 나왔다.

 한국의 동요는 크게 두 가지다. ‘새야새야 파랑새야’ ‘두껍아, 두껍아’ 등 작자 미상의 전래동요와 일제시대 이후 서양음악 형식에 따라 만들어진 창작동요가 그것이다.

 1924년 ‘반달’을 시작으로 선보인 창작동요는 30년대 말까지 부흥기를 맞는다. 홍난파 등 선각자들이 ‘봉선화’ 같은 창작동요를 통해 민족의식을 고취시키려 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40년 이후 주옥 같은 동요들이 일제에 의해 금지곡으로 묶이기도 했다. 한국의 동요가 외국보다 훨씬 많고 예술성도 높다는 평을 듣는 데엔 이런 배경이 작용했다.

 이처럼 빛나는 역사의 동요가 요즘 수난이다. 1983년 출범 이후 28년간 한국 동요의 산실이었던 MBC 창작동요제를 최근 방송국 측이 없애기로 했다고 한다. 이 행사는 14곡의 입상곡이 초·중·고 교과서에 실릴 정도로 유서 깊은 대회였다. 지난해엔 EBS 고운노래발표회가 사라졌다. MBC 게시판엔 창작동요제를 살려 달라는 애절한 호소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아이돌 그룹을 키운답시고 어린 초등생들을 데려다 엉덩이를 흔들고 괴성을 지르도록 맹훈련시키는 세상이긴 하다. 하나 아무리 상업주의가 판친다지만 순결한 동심을 지켜주고 아이들의 고운 꿈을 키워주는 게 어른들의 의무 아닌가.

남정호 국제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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