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표로 본 IMF 2년 성적표] 경제정책 변화과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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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통화기금(IMF)위기' . 잊고 싶은 두 해였다.
많은 기업이 쓰러지고 헤아릴 수 없는 근로자들이 거리로 내몰리는 악몽에 시달렸고, 정부정책에 관한 IMF의 시어머니 짓을 감수해야 했다.

그 위기를 벗어났다는 지금, 어떤 노력으로 위기를 벗어났는지, 그 성과가 과거 같은 경험을 한 나라들에 비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지를 차분한 마음으로 돌아볼 수 있는 시점이 됐다.
한국경제가 지난 두해 걸어온 길을 70년부터 95년까지 세계 각국이 겪었던 76번의 위기극복과 비교한다.

사상 초유의 위기가 전개되면서 한국의 경제정책은 전통적인 단계를 밟아왔다.
초기에는 '위기진정' , 다음에는 '구조조정 및 개혁' , 그리고 '경기부양' 으로, 경제여건과 정책효과에 따라 초점을 옮겨왔다.

초기의 긴축은 IMF로부터 긴급 금융지원을 받기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
IMF가 경제위기를 맞은 나라들에 요구하는 '쓴 약' 은 "긴축을 해야 돈을 덜 쓸 것이고, 고금리를 해야 외국에서 자본이 들어올 것이고, 그래야 환율이 안정될 것" 이라는 경제정책관에 바탕을 두고 있기 때문이다.

긴축정책은 대외지원 확보와 구조개혁에 대한 약속 등 신뢰회복 노력으로 보완됐다.

약효를 보이지 않았던 IMF 긴급 지원은 '크리스마스 선물' 격인 선진국 지원약속으로 이어지면서, 2천원대로 치솟았던 달러환율이 고개를 숙이기 시작했다.

환율은 98년 1월말 외채상환 연장협상의 성공적 타결로 1천6백원대로, 3월말 국채의 해외발행으로 1천4백원대로 내려왔다.

위기진정 노력이 진행되는 동안 신(新)정부는 금융.기업.노동.공공부문 등 IMF와 합의한 구조개혁을 어떤 순서로 실시할 것인가에 고심했다(정리해고 등 노동개혁과제는 신정부가 들어서기 전에 이미 대강이 마련됐다).
환율이 어느 정도 진정되자 정부는 은행의 구조조정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98년 6월말에 5개 은행을 퇴출시켰는데도 금융경색이 풀리지 않자 9월말 은행권 전체에 대해 64조원의 공적자금 투입을 통한 구조개혁 방안을 마련했다.

재벌개혁의 밑그림은 98년 2월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와 재벌총수간에 '5대 개혁과제' 에 대한 합의를 시작으로 마련됐다.
그 중 일부는 가을 초 빅딜(대기업간 사업교환) 형식으로 드러났다.

재벌개혁이 본격화한 것은 은행 구조조정 방안이 마련된 후부터였다.
금융경색이 풀리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정부도 위기극복에 대해 자신감이 생겼다.

98년 가을 IMF에 대한 끈질긴 설득, 국내외 경제전문가들의 끊임없는 비판에 IMF도 손을 들었다.
저금리와 경기부양이 필요하다는 식으로 입장을 바꾸게 된 것이다.

그 효과는 98년말부터 나타났다.
경기가 바닥을 쳤다.
위기탈출에 대한 국내외의 신뢰회복은 외자유입과 주가반등으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올해 초부터 경제성장률이 플러스로 돌아섰다.
주가폭등으로 봄에는 '거품경제' 얘기가 나올 정도였으나, 7월 이후엔 대우 부도문제 처리로 주가가 주춤거렸다.
대우와 투신사 부실처리에 관해 어느 정도 가닥을 잡아가고 있는 지금은 성장률이 10%를 넘어서 경기진정을 얘기하는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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